새 정부 들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군불 때기로 의심되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성평등가족부’ 확대 개편을 시급한 정책 과제로 설정하며 ‘차별금지법’ 찬성론자를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부터가 그 신호탄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교계의 반발 수위도 한층 높아지는 모습이다.

700개 단체 연합체인 ‘성평등가족부반대대책위원회’는 지난 3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성평등가족부’ 개편 추진 중단과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촉구했다. 같은 날 17개광역시도악법대응본부와 한국교회다음세대지킴이연합, 서울시기독교총연합회도 국회 소통관에서 ‘성평등가족부’ 신설 철회와 원 장관 후보자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은 “성평등가족부 설치가 행정조직 법정주의의 헌법적 한계를 넘어선 위헌적 발상”이라며 “헌법이 채택한 남녀 성별 이분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체의 시도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계가 어떤 사안을 놓고 이처럼 한꺼번에 반대 의사를 분출한 걸 의례적인 일로 치부하긴 어렵다. 단지 부처의 명칭 병경에 따른 불확실성을 트집 잡거나 인사청문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불만 표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내포돼 있다. 교계는 새 정부가 시급한 국정 과제로 현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려는 것을 제도권 밖에 머물던 ‘포괄적 차별금지법’ 문제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띄우려는 미리 계산된 의도로 판단하고 있다.

교계는 원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18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언급한 사실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아직 장관이 되지 않은 신분으로 ‘차별금지법’에 적극 찬성하는 견해를 밝힐 정도면 이미 이걸 완수할 사명을 띠고 장관 후보에 발탁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거다.

원 후보자의 이날 발언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진보 진영에서 주장했던 담론으로 그쳐선 안 될 우리 사회 필수적인 과제임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견해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자신의 평소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로 인해 빚어질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경솔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

‘차별금지법’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지연되는 가장 큰 원인은 ‘차별’에 대한 정의의 모호성에 있다. 그런데도 원 후보자가 여전히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명분만을 되뇌고 있는 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차별금지법’ 찬성론자들은 보수 기독교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며 온갖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 모두가 원하는 데 기독교만이 반대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독교계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건 차별, 즉 혐오를 정당화하자는 게 아니다. 이 법안에 포함된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포함한 광범위한 항목이 동성애에 대한 종교적 또는 개인적 신념에 따른 비판적 의견까지 '혐오 표현'으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힘의 강제성이 인간 본연의 권리를 침해하는 걸 용납할 수 없는 거다.

성경에 동성애는 분명히 죄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면 처벌하는 게 차별금지법이다. 처벌이 두려워 말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그걸 차별 없는 세상이라고 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차별금지법은 몇 번을 생각하고, 생각해도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종교도, 신념도,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까지 심각하게 훼손하는 법이라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서구 여러 나라에서 동성혼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거나,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법적 제재를 받은 사례가 잘 말해준다.

‘역차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예컨대 성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라며 다수의 국민을 차별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그냥 사회적 약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테두리 안에서 상대적으로 다수의 기회를 박탈하는 방법으로 누군가를 보호하겠다는 논리는 대다수 국민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만든다.

교계가 정부의 ‘성평등가족부’ 개편과 그 수장으로 지명된 인물을 불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법이 정한 남녀 양성평등 사회를 허물고 이에 반대하는 국민을 ‘차별금지’라는 명목으로 강제하겠다면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없이 무조건 법안 제정을 밀어붙이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원 장관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찬성 발언은 새 정부 첫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강선우 후보자가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인 것과도 확연히 대비되는 점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성평등가족부’ 명칭을 변경에 60% 이상이 반대하는 결과가 나왔다. 자녀사랑학부모전국연합이 여론조사공정(주)에 의뢰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성평등가족부’ 명칭 변경에 찬성한 응답은 29.7%에 불과해 ‘여성가족부’ 폐지 찬성(33.9%) 의견보다도 적었다.

그런데도 이재명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밀어붙이며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민변 출신 변호사까지 장관 후보로 내세웠다. 교계는 이걸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국민통합 정신과는 거리가 먼 ‘마이웨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새 정부가 주창하는 ‘국민주권 정부’의 실체가 이런 게 아니라면 왜 기독교가 이처럼 강하게 반대하는지 한 번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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