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만일 우리가 아직 광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어떠했을까. 일본이 남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했거나 휴전으로 종결됐다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역사의 흐름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일본 군국주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히틀러의 몰락과 일본 군부의 붕괴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유와 주권을 되찾지 못했을 것이다.
광복은 결코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다. 동학 농민군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봉기했고, 일본군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국내 의병들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재결집했다. 나라가 망한 뒤에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광복군을 창설해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다 해방을 맞았다. 이는 3·1운동 정신이 광복으로 이어진 결실이었고, 역사가 우리에게 내린 당연한 귀결이었다.
해방 후 80년의 역사는 격동 그 자체였다. 좌우 이념의 대립과 질서 혼란 속에 6·25 전쟁이 발발했고, 남북 형제가 총부리를 겨누었다. 분단 국가는 정쟁과 독재, 군사 쿠데타를 겪었으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초토화된 나라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으나, 민주주의는 미뤄졌다. 그러나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수많은 피의 대가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내는 기적을 이뤘다. 이는 세계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성취였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열매는 모두 광복의 정신에 빚진 결과다. 이제 80주년을 넘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장려해야 할 유산은 문화 강국의 꿈이다. 김구 선생은 이미 “문화의 힘”을 강조하며, 군사·경제의 강대국보다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를 지향했다. 한글의 우수성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으며, 자유와 평등, 정의와 민주주의, 주권을 지키려는 광복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자산이다.
반면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는 국론 분열이다. 극단적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병들게 한다. 정치인의 책임이 크지만, 이는 사회 전반에 깊게 깔린 의식과도 연결된다. 서로 다른 입장이라도 토론과 타협을 통해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유교의 중용 정신과 중도층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반영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결코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처럼 승자는 패자를 존중하고, 패자는 자신을 보완해 다음을 준비하는 성숙한 경쟁이 필요하다.
필자의 조부는 진주를 대표하던 청년 지식인이자 유지였다. 그는 서울에서 구한 3·1 독립선언문을 숨겨 진주로 돌아와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선언문을 등사해 진주 전역에 배포했다. 1919년 3월 18일, 진주의 만세 함성은 도시에 울려 퍼졌다. 주모자들은 체포됐고, 조부는 3년여 옥고를 치른 뒤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77년 그는 독립유공자로 추서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광복 80주년의 이 날, 나는 하늘에서 조부를 비롯한 수많은 선조들이 “자랑스러운 나라다.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았다”고 미소 짓기를 바란다. 광복의 정신은 과거의 기념비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밝히는 등불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선조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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