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되면서 한·미 정상 간의 회담 성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 이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전화 통화에서 이 대통령을 미국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에 앞서 G7 정상회의에 이 대통령이 참석하게 된 만큼 두 정상 간의 첫 만남이 캐나다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의 G7 정상회의 참석은 캐나다 총리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비록 옵서버(참관국) 자격이나 대통령에 취임한 지 2주도 안 돼 미국 등 주요국 정상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회라는 점에서 사실상 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셈이다.
이 대통령의 G7 정상회의 참석과 관련한 최대 관심사는 한·미 정상 간의 만남 성사 여부에 쏠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 전화 통화에서 미국으로 공식 초청 의사를 밝혔고, 앞서 이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하게 됨으로써 두 정상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성사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다만 두 정상의 만남 자체가 ‘한미동맹’의 든든한 관계 유지, 또는 격상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두 정상이 일찍 만나 거센 파고가 예상되는 안보와 통상 방면에 먹구름을 거둬내는 전기가 마련되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분위기가 그렇지 못한 쪽으로 흐르는 게 문제다.
불안한 조짐은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직후에 나타났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화 통화에서 이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축하하며 방미를 요청했고, 이 대통령이 이에 화답해 한미가 특별한 동맹으로서 자주 만나 협의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고 상세히 밝혔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은 대조적으로 이런 내용에 대해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밝힌 바로는 한·미 정상 간의 통화 내용은 지극히 통상적인 수준이다. 숨기거나 감출 만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통화 내용을 공개하거나 일절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미국과 주요 우방국 정상 간의 통화는 대부분 당선 직후 1~2일 내 이뤄지는 게 관례다. 그렇지만 이 대통령과의 통화는 좀 더 늦어졌다. 그 배경에 대해 언론 등에서 구구한 해석이 나오지만, 통화 시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대화 내용일 것이다. 우리는 대화 요지를 비교적 소상히 밝혔는데 미국이 그 흔한 대변인 브리핑조차 없었다는 건 두 나라 사이에 전과 다른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이 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내용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이유를 직접 밝히지 않는 한 그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 대선과정에서 백악관으로부터 이런 분위기가 일찌감치 감지되었던 만큼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에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유독 강조했다. ‘한미동맹’은 격상시키고, 한중관계는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바꿔 말하면 ‘한미동맹’에 올인한 윤석열 정부와 달리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중 어느 쪽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건데 이것이 외교적으로 통할 지에 대해선 긍정보다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 노선에 당장 부딪히게 될 문제가 미국의 반발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 정부에 바라는 건 미·중 양쪽에 “쎄쎄”하는 게 아닌 ‘양자택일’이기 때문이다.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지난달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의 도움을 받고, 경제적으로 중국과 손잡는 시대를 끝내겠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6.3 대선 직후 미국 백악관에서 나온 성명을 보면 이런 기류가 더욱 선명해진다. “한미동맹은 철통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을 우려하고 있고 여기에 반대한다”. 한국의 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에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을 우려하고 반대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건 매우 이례적이다. 기존 양국 관계를 고려할 때 이례적이다 못해 심상치 않다는 판단이 든다.
미국이 이 대통령 당선 축하 메시지에 중국 문제를 언급한 건 한국 새 정부의 대중국 접근에 신경이 곤두서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철통같은 ‘한·미동맹’ 관계라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와 관련해 최근 미국이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주한미군 스트라이크 부대를 순환 배치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건 미군의 한국 주둔 목적을 북한의 남침 도발 억제용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대비용으로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미국내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감축 수준이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보도도 눈에 띈다. 미국 정부는 이를 부인하는 입장이나 자칫 북한이 오판해 군사행동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양국 간에 감지되는 미묘한 기류의 변화는 ‘한미동맹’을 격상시키는 동시에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재명 식(式) 실용주의 외교 노선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즉 미국으로부터는 안보 이득을, 중국으로부터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구상인데 이게 말처럼 간단치가 않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지난 70년간 한국과 미국 사이를 이어준 든든한 동맹의 밧줄이 끊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미국 앞에서 양다리 걸치기 전략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잃는 최악의 패착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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