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신약학회(회장 이민규 박사)가 3일 오전 서울 성동구 소재 청계열린교회(담임 이두상 목사)에서 ‘신약성서의 정치학-정세에 개입하는 성서해석’이라는 주제로 2025년 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차정식 박사(한일장신대)가 “신약성서의 ‘정치’ 이해를 위한 몇 가지 관점과 대안-1세기 신약성서와 21세기 한국 정치의 소통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 두 가지 대전제에 관해
차 박사는 “1세기 지중해 연안은 로마제국과 유대교가 각각의 신정통치 체제를 운영하던 시대였다”며 “당시 권력자들은 종교를 통해 정치권력을 정당화하고, 정치적 수단으로 종교 권위를 이용했다”고 했다.
이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정교분리의 원칙을 그 시대 정치와 종교의 관계적 상황을 이해하는 틀로 차용하는 것은 역으로 투사된 착오”라며 “이런 현실 가운데 정치적 이해관계는 종교적 이해관계와 종종 삼투하거나 상통하였다”고 했다.
특히 “그 접점 위에 누가복음의 빌라도와 헤롯은 예수를 죽이는 일에 의기투합하여 친구가 되었다”며 “정치적 이해관계가 종교적 이해관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종교·정치의 관계의 특성이 첫 번째 대전제”라고 했다.
이어 그는 두 번째 대전제로 예수와 바울의 정치적 입장이 미세한 차이가 있음을 말했다. 차 박사는 “예수는 민중 중심의 비폭력적 대중 정치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으며, 로마 통치나 이방 문화에 대해선 유대인 특유의 반이교적 정서를 간직한 채 거리를 두었다”며 “반면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적극 활용해 법과 질서를 선교의 도구로 삼았고, 때로는 공권력에 복종할 것을 교회에 권면한 실용적 접근을 취했다”고 했다.
더불어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오늘날 신앙인들이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정치는 인간의 욕망을 기반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종교 역시 이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 기술과 신앙 윤리를 ‘이웃 사랑’이라는 접점 위에서 성찰하고 실천하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 기독교인이 현실 정치에 대응할 때 필요한 세 가지 기준
차 박사는 기독교인이 현실 정치에 대응할 때 필요한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먼저, 정치적 이익이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는 윤리적 접점 위에 계발하고 슬기롭게 갈무리하는 지성이 요청된다”며 “둘째로 신앙인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가치 기준을 통해 공공의 의를 분별할 능력을 갖춰야 하고, 셋째로 정치적 실천은 거시적 정세보다도 일상의 다양한 관계와 공동체 안에서 ‘작은 정의’를 구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교회와 신학교, 교단, 대형교회와 미자립 교회 간의 자원 재분배 문제를 예로 들며 “이것은 신약성서의 예수와 바울이 꿈꾸며 공들여 필사적으로 실천한 하나님 나라의 목표였다”고 했다.
그는 “높은 산이 낮아지고 깊은 골짜기가 돋우어져 평탄케 되리라고 예언한 메시아의 정치와, 많이 거둔 자도 넘치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게 균등케 하리라고 신약성서 최초로 연보의 원칙을 제시한 바울의 정치경제적 기준이 그 대표적인 예”라며 “이런 삶의 자리에 배태된 신학적 의의가 이 시대 국가정치와 교회정치가 만나는 현장 속으로 성육신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러한 기본 원칙을 배제하고 따라가는 모든 정치 행위와 권력의 행사는 온갖 그럴듯한 변명과 핑계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위선적 자가당착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이날 분과별 발표도 진행됐다. 주제 발표에는 ▲김덕기 박사(대전신학대학교[은퇴])가 ‘바울 정치학의 모호성과 급진성: 앙가쥬망을 위한 고린도전서의 문화비평적 해석’ ▲설재록 박사(연세대)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감정의 문화정치’ ▲조규홍 목사(Unv. of Toronto)가 ‘부활 신학의 정치적 읽기: 나사로의 부활(요 11:1-45)을 중심으로’ 자유 발표에는 ▲이서영 박사(한신대)가 ‘트라우마를 통한 ‘예수의 탄식’(막 15:34) 이해’ ▲이상일 박사(총신대)가 ‘디모데후서 2:22의 ‘청년의 정욕’에 대한 인구학적인 재고’ ▲김서준 박사(계명대)가 ‘참된 신앙의 표지로서의 연보: 바울의 연보의 의미에 대한 한 연구’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김덕기 박사는 “성서의 종말론을 개인으로 좁히기보다는 문명의 위기로 대체하여 정치적 체제를 구성하거나 비판하는 정치체제가 중단되는 메시아 시간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1884~1976 독일 신학자)이 종교사의 원시영지주의 모티브와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매개로 바울의 인간학에 기초한 실존주의 종말론 이해를 구성한 해석학 패러다임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설재록 박사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분명 종족 간의 감정을 보여준다. 율법교사가 마지막 예수의 명령,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을, 만일 율법교사가 예수의 명령을 들을 때 사마리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을 향해 나아간다면, 이 율법교사는 예수가 풀고 싶었던 종족 간의 갈등을 풀 수 있는 희망이 되는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만연하였던 타 종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한 예수의 모습을 담은 본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조규홍 목사는 “신학은 항상 위기 가운데에서 답을 찾아왔다. 한국 사회가 정치적 위기에 봉착 하였다 할지라도 언제나 그랬듯 그리스도인들은 정세에 개입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개입은 결코 한쪽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폭력성을 띄어 선 안 된다”며 “그래서 우리는 부활신학적 정치개입을 지향해야 한다. 부활신학적 정치개입은 이 땅에 신의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해방하는 데 그 본질이 있으며 이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성서적 정치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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