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옮겨붙은 불 끄다 목숨 위험할 뻔”
“성도들 대부분 노년층, 사례비는 받지 못해”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
“구호물품보다 불탄 집 복구 위한 지원 우선”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한 성묘객의 실화로 시작된 산불이 24일 오후 안동으로 확산해 일주일간 청송, 영양, 영덕을 덮쳐 4만 5천ha 이상의 면적을 태웠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교회 피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근 방문한 안동시 일직면 소재 일직교회. 이곳은 지난 2007년 작고한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출석하던 교회로 익히 알려져 있다. 산불이 피해 간 교회로 가는 길목 주변엔 불에 새까맣게 탄 가옥과 축사 잔해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곳곳엔 매캐한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일직교회 담임 이창식 목사는 불탄 건물을 가리키며 “일직교회에 스스로 출석한 지 7개월 된 새신자의 가게”라고 했다. 그러면서 “초신자인 그가 이런 고난을 입은 모습을 보며 저는 마음이 아픈데도, 오히려 그는 낙심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 상태”라고 했다. 일직교회 성도 5가정의 집과 농기구 등이 불탔다고 한다.
이 목사의 사택 또한 전소됐다. 사택 반경 50m 떨어진 일대 산은 불에 까맣게 탄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이 목사는 “산불이 강풍을 타고 불덩이처럼 하늘에서 쏟아졌고 연기로 자욱했다”며 “집에서 물건을 가져 나올 틈도 없이 옷만 입고 재빨리 대피했다”고 전했다.
20년 동안 100만 원대 사례비를 받으며 작은 시골교회인 일직교회를 섬겨온 이 목사는 올해 목회 정년을 맞았다. 이를 앞두고 지난해 말 성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이창식 목사에게 마련해준 집은 산불로 잿더미가 됐다. 일직교회의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미가입 상태인 예장 통합총회 연금을 이 목사는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그럼에도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며 “성도들도 낙심하지 않는데 내가 왜 낙심하는가”라고 했다.
일직교회에서 차로 8분 거리에 자리한 하국곡교회는 다행히 산불 피해가 없었다. 산불 피해 당시 교회 반경 100m 떨어진 일대 산에서 발화한 불덩이가 강풍을 타고 날아들어 교회로 쏟아졌다고 한다. 하국곡교회 담임 전병오 목사는 밤새 교회로 옮긴 불을 껐다고 했다.
전 목사는 “교회에서 옮겨붙은 불을 끄다 목숨이 위험할 뻔한 상황이었다”며 “불을 끄고 아침에 정신을 차려보니 입었던 옷이 ‘불총’을 맞은 것처럼 까맣게 타버렸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불타버리면 안 될 것 같아 교회 근처로 지나가는 119 구급대원의 대피 요청에도 계속 불길을 진화했다”고 했다.
사택이 불타는 상황에서도 정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가 우선”이라며 교회로 먼저 달려가 불을 껐다고 한다. 전 목사의 사택은 전부 소실된 상황이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준 땅을 팔아 지은 사택과 더불어 인근에서 키웠던 염소와 양봉은 화마에 의해 사라졌다. 하국곡교회의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했던 부업이었다고 한다. 정 목사는 “성도들의 삶도 힘든데 내가 도움을 받을 환경이 아니었다”며 “내가 오히려 성도들을 도와줘야지”라고 했다.
하국곡교회 성도 6가정의 집과 농기구 등이 전소됐고 이 중 90대 남성은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황이다. “이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던 정 목사는 “시편 84편에 따라 하나님께 가까이하면 복을 주신다”며 “그 말씀을 붙들고 산불 피해로 잃어버린 것을 다시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바란다”고 했다.
안동시 일직면 소재 원동교회는 산불 피해가 없었지만 장택환 담임목사의 사택은 전소됐다. 장 목사는 “10년 전 원동교회로 부임했을 당시 창고처럼 허술했던 교회를 개인적으로 4천만 원을 대출받아 개축하는 데 썼다”며 “사택은 불탔지만 교회는 산불 피해가 없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원동교회 14가정의 집과 농기구 등이 전소됐다고 한다. 그는 “성도들 대부분이 노년층이라 사례비는 받지 못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섬겨왔다”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받지 않으려 목회해 왔다”고 했다.
목회자들은 정부와 한국교회에 산불피해 복구를 위한 조속한 지원을 호소했다. 일직교회 이창식 목사는 “우유, 빵, 담요, 도시락 등 지자체와 한국교회 NGO단체들의 구호 물품이 풍족해 오히려 재고가 남는 상황”이라며 “이재민들에게 구호물품보단 불탄 집을 복구하기 위한 현금지원이 우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하국곡교회 정병오 목사와 안동교회 장택환 목사도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대규모 모금을 통한 재정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 밖에 안동·의성지역은 하화교회(담임 김진웅 목사)·사랑의교회(담임 김선희 목사)·금곡교회(담임 김삼철 목사)·임하교회(담임 남두섭 목사)·안동제일교회(담임 백종석 목사)·영남북부교회(담임 이영기 목사) 등의 교회와 사택 피해가 접수됐다. 청송지역은 성지교회(담임 김대근 전도사)·덕천교회(담임 임영득 목사) 등, 영덕지역은 빛과소금교회(담임 최병진 목사)·영덕중앙교회(담임 조황재 목사)·영덕석동교회(담임 박경원 목사)·매정교회(담임 김계주 목사)·충성교회(담임 장용모 목사)·오천교회(담임 임명자 목사) 등의 교회와 사택 피해가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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