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가장 좋아하는 성구는 시편 23편이고 찬송가는 455장이다.

찬송가 455장의 배후에 이런 사연이 있다.

1887년 펜실베니아 어느 추운 겨울 교육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30대 여교사 에드워드 히윗(Eliza E. Hewitt)은 한 불량 소년을 전도하다 소년이 던진 지붕 스레이트에 맞아 7개월 동안 입원하여 척추 치료를 받는다.

병상에 누워 꼼짝 못하고 대소변까지 받아 내는 생활에 심신은 쇠약하고 신앙이 약화되었다.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매사에 짜증나며 자신을 가해한 소년에 대한 증오와 미움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박석규 은퇴목사   ©기독일보

그러던 어느 봄날, 병실을 청소하는 흑인 여자 청소부가 찬송을 부르며 바닥을 닦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히윗은 화가 났다.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 찬송을 부르는거야... ' 청소부가 듣고 웃으며 대답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쁨은 어떤 형편과 환경에서도 찬송 할 수 있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히윗은 갑자기 感電(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 히윗은 이제까지 불평, 짜증, 원망으로 보내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회개하며 애통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그래서 눈물로 써내려간 찬송시가 찬송가 455장이다.

변화 되었다. 영안이 열였다.. 신령한 세계가 보인다. 히윗 여사가 그랬다. 그러자 병상 생활이 기쁨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가해 소년을 용서하고 사랑 할 마음도 생겼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척추가 치료 되었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공립학교 교편을 잡았다. 70까지 살면서 평일에는 공립학교 교사로 주일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후반전 인생을 멋있게 살았다.

그러면서 많은 찬송시를 썼다. 우리 찬송가에 455장 외에 5곡이 더 수록되어있다. 352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362장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483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48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506장 '예수 더 알기 원함은' 모두 애창되는 찬송가다.

기독교의 위대성은 변화다. 변화의 역사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리더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지금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그들이 사도행전 29장을 쓰면서 우리를 감동시킬 찬송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455장은 언제 불러도 은혜스럽고 기쁨이 넘친다 변화된 아름다운 여인 에드워드 히윗이 쓴 가사에 교원이던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운 신앙심 깊은 펜실베니아 사람 웰리암 커크패트릭(William J. Kirkpatrick)이 작곡하여 영감을 더해 준다.

가사를 보자.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그 다음 나오는 가사는 말 할 것도 없이 '딴 근심 있으랴!' 다. 히윗은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다른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멘'이다. 진실로, 진실로, 다시 진실로 주안에 있다면 '근심' 따위는 이제 없다. 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기 때문이다.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고 그 안에서 살게 하셨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어찌 딴 근심이 있을 수 있으랴!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뻐하라! 기쁨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이요, 특권이다. 그래서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라 계속하여 간증하며 고백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다. 세상에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근심케 하는 일이 일어 난다. 우리가 주님 밖에 있을 때는 두려움과 한숨 쉴 일을 당하면 고할 대상이 없어 두려워 떨었다. 그러나 우리 형편을 알고 계시고 알아주시고 해결하여 주실 전지전능하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경험한 사람은 그분께 아뢰고 호소하여 해결 받는다. 기도가 최상의 무기다, 기도가 최대의 작전이다, 그분께 기도하라, 기도가 방법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이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니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믿음은 체험이다. 교리나 이론, 논리가 아니라, 받은 증거다, 자기가 실제로 경험한 사실의 간증이다. 그 체험을 455장의 작시자 에드워드 히윗은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미 주안에서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었다.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었다. 그래서 심금을 울리며 감동을 주고 있는 은혜스런 찬송 아니던가....

신앙은 과거가 아니다, 미래도 아니다. 현재에서 역사하는 삶인 것이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 하시네.

기독교 2천년 역사는 어떤면에서 찬송의 역사다. 교회는 수없는 박해 속에 지내 왔으나 어느 한 순간도 찬송이 끊긴적이 없다. 외부의 박해가 크면 클수록 찬송은 더욱 드높아졌다. 기쁠 때 찬송을 불렀고, 힘들고, 외로워도 찬송을 불렀다. 찬송은 성장하는 신앙생활과 언제나 정비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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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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