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보 목사
김희보 목사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고린도후서 11:30)

여기서 말하는 약함이란 육체의 풍모나 신체적인 면에 있어서의 허약함, 세상적인 것을 가지지 못한 약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의 여정을 걸어야했던 것 등이라고 본다(11:23-27, 사 53:4). 그리고 이러한 연약함이 그에게 자랑거리라는 말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은 바울 자신이 인간적인 면에서 약하면 약할수록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기에 그 연약함이 그에게 자랑거리라는 의미이다.

사람은 한없이 약한 존재이다. 성직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聖職者(성직자)이기 때문에 “약한 갈대”일 수밖에 없는 에로스의 슬픔을 묘사한 작품이 지드(Andre Gide,1869-1951)의 소설 <전원교향악>(LeSymphonie Pastorale, 1919)이다.

알프스의 눈 덮인 두메산골의 목사인 주인공은 어느 날 한 노파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 집에는 맹인인 데다가 귀가 먼 할머니의 손녀가 있었다. 고아가 된 그 소녀를 데려다 키우는 것이 성직자인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목사의 집에서 가족처럼 생활하게 된 이름도 없는 그 소녀의 이름을 제르트뤼드라 지어주고, 목사는 그 영혼과 지식을 개발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고기덩어리나 마찬가지인 백치(白痴)의 소녀를 두고 목사의 가정에는 의견 충돌이 생겼다. 제르트뤼드는 나날이 성장하였다. 목사의 교육을 통하여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상상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인간 세상을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목사는 처음에 “이 소녀의 영혼에서 어두움을 쫓아낼 수 있게 허락하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요 9:41) 하는 성경 구절이 자꾸만 마음 속에 메아리로 들렸다. 목사와 맹인 소녀 사이에 애정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목사 부인 아메리는 그것이 불쾌하였다. 맏아들인 신학생 자크는 맹인 소녀를 사랑하여 결혼할 생각을 하였다.

목사의 정성으로 제르트뤼드는 수술을 받고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제르트뤼드가 눈을 뜨고 본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병원에서 퇴원하여 자연을 돌아보고 집에 돌아온 제르트뤼드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제르트뤼드가 본 것은 자기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그리고 또한 맹인일 때에 자기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걱정과 근심으로 일그러지고 얼룩진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제르트뤼드는 목사 부인 아메리의 질투 어린 표정을 보고서 목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사랑해야 할 상대는 목사가 아니라 그의 아들 자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르트뤼드는 목사에게, 자크의 권고에 따라 기독교 신앙을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실을 말하고, 고민에 찬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이 작품의 진짜 맹인은 제르트뤼드가 아니라 목사 자신이었다. 목사는 만일 제르트뤼드를 향한 감정이 죄악이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리라는 자기 합리화로, 목사는 정욕적인 욕망을 부정하려 한 것이다. 소설 끝 대목에서 목사는 아내 아메리 앞에 꿇어앉으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 하고 도움을 청한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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