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보 목사
김희보 목사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사망과 부활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유죄선고를 따라 받아야 마땅한 극악한 형벌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선포이다. 정죄함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소외되는 버려짐인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그러한 정죄함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자크 리비에르와 클로델의 왕복(往復) 서간집(書簡集)>(1907-14)이다. 이 서간집(書簡集)이 형성된 결위에 관하여 리비에르의 아내 이자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크 리비에르가 1년 전부터 열렬히 찬미하고 있던 폴 클로델에게 그의 고민의 치료를, 중대한 문제의 해답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다시금 찾아내게 하고, 자기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는 목적으로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 때에 그는 스무 살이었다.”

프랑스의 극작가이며 시인이며 외교관이기도 한 클로델(Paul Claudel,1868-1954)은 이 서간집에서 자기가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하는 전말(顚末)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말의 유물주의 사상에 숨이 막혀 절망하고 있던 클로델은, 랭보의 시집 <지옥의 계절>을 읽고 어떤 계시를 받게 되었다.

“불행한 젊은이(클로델)는 188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축하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노트르담 성당에 갔다. 당시 나는 시를 쓰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차월 높은 딜레탄티즘에 의하여 바라보는 가톨릭의 의식에서 데카당한 시의 제작에 적당한 자극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 때 내일생을 지배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은 열리고 나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그 이후 모든 책도 온갖 논리도 인생의 온갖 파탄도 내 신앙을 뒤흔들기는커녕 내 신앙에 접촉할 수도 없을 만큼 집착력을 가지고 나는 믿었다……”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이상한 순간에 뒤이은 몇 분 간의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가 절망에 빠진 가련한 젊은이의 미음에 이르러 드디어 이 것을 열기 위하여 사용된 오직 한 줄기의 번갯불과 오직 한 자루의 칼이 된 다음 몇 가지 요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ㅡ그러나 만일 그것이사실이라면? ㅡ그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존재한다. 그는 누구인가? 나와 같은 인격적인 존재이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나를 부르고 있다.’ 내게 감격의 눈물과 흐느낌이 솟구쳐 올랐다.”

리비에르는 클로델에게 “항시 다음 두 가지가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즉, 허무주의의 현실성과 내 절망을 통한 만족입니다” 하고 하소연한다. 클로델은 부드럽게 속삭인다. “나의 사랑하는아들이여, 나의 형제가 되어라. 너를 부르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

이 왕복서신은 클로델이 1915년 1월 5일에 1913년에 리비에르에게 보낸 것으로 끝맺어져 있다. “그대가 한 일(세례받은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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