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야고보서 1:18)
교회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이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리더십을 인정했다. 이제 그는 전 세계 기독 공동체,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스도’, ‘십자가’, ‘구원’ 등의 용어는 얼씬도 하지 않는데, 인간의 죄 문제를 가장 깊숙하게 파헤친 작품이 모리아크(Francois Mauriac, 1885-1970)의 소설 <테레즈데케이루>(Therese Desqueyroux, 1927)이다.
재판소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테레즈는 마차를 타기 위하여 진흙탕 길 위를 걷고 있었다. 테레즈의 비극, 그것은 진흙탕 투성이인 육체 속에 휘말려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이야기이다.
테레즈는 황량한 랑드 지방에서 태어났다. 미인은 아니었으나 고독한 테레즈는 그 지방 명문(名門) 집 아들 베르나르와 결혼하였다.
테레즈는 신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남편에 대해서 곧 고독감을 느꼈다. 자세한 이유는 테레즈 자신도 알지 못한다.
신혼여행 때 미술관에서 그림만 얼이 빠진 듯 보던 남편, 밤이면 부부생활의 의무를 끝내기가 바쁘게 코를 골며 잠들어버리는 남편ㅡ너무 멋이 없는 사나이에 대한 환멸일는지도 모른다.
베르나르는 가벼운 심장병 때문에 극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테레즈는 어느 날 베르나르가 1회분의 약을 복용하고, 건망증 때문에 다시 복용하는 것을 보았으나 모르는 체하였다. 테레즈는 남편이 죽기를 꼭 바란 것은 아니었다. 삶에 지친 나머지 그저 아무 말 없이 있은 것이다.
그러나 베르나르에게 사정이 생겨 테레즈 자신이 약을 처방해 오며, 복용하면 서서히 죽는 독약을 섞었다. 마음 속에서 “꼭 한 번만…… 꼭 한 번만” 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저지른 행위였다. 그한 번의 행위 이후에는 베르나르의 착실한 아내가 되리라 하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테레즈의 행위는 곧 발각되고 말았다. 그러나 남편 베르나르는 이혼하려 하지 않았다. 테레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선 가톨릭 신도이기 때문이었고, 또한 가문(家門)의 명예를 존중하여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혼하는 대신 베르나르와 별거 생활을 하게 된 테레즈는 랑두 황야(荒野)의 외딴 집에서 감시를 받으며 살게 되었다.
테레즈는 숲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이 없어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면서, 줄담배를 피우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으며 살았다.
모든 곡식의 첫 소산물이 하나님께 바쳐지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선택되어서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첫 열매가 된다. 혹자는 야고보가 ‘우리’를 사용한 것이 보편적인 인류 전체를 의미한다고 하나(Hort), 중생한 자들이나 당시 초대 교회의 성도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Moo).
모리아크는 <테레즈데케루>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작가는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인간성을 분명하게 나타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작품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악의 저편에 기독교의 확신하는 바 ‘빛’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그 ‘빛’의 증인이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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