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두 차례에 걸쳐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영장 집행에 윤 대통령이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충돌사태를 우려해 응한 결과인데 국정 최고 책임자 본인 의사에 반하는 구인(拘引)이란 점에서 충격이 크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여부를 떠나 수사권한이 없는 공수처의 두 차례에 걸친 체포영장 청구와 집행으로 대통령이 구인된 초유의 사건은 앞으로 공수처가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할 사안이다. 수사권 없는 기관이 신청한 영장, 군사 보호시설에 진입할 수 없는 영장, 48시간짜리 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미증유의 혼란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공수처에 대통령을 체포할 법적 권한을 준적이 없다. ‘내란죄’ 판단은 헌재의 몫이고 현직 대통령의 직권남용에 대해선 처음부터 공수처가 수사할 해당사항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한 공수처의 수사와 영장 집행이 모두 불법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자신으로 인해 만에 하나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구인에 순순히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15일 오전 서울 한남동 관저를 떠나기 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공수처와 경찰이 소방 장비를 동원해 경호 보안구역을 침입하는 것을 보고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출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과 유혈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으나 대통령이 수사를 받는 시간에 서울 과천 공수처 주변에서 시위하던 60대 시민이 분신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오늘의 혼란과 비극적인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로울 수 없다. 비상계엄 선포로 국가적인 혼란을 초래한 건 위정자로서 국민을 배신한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라와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긴 책임을 회피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와 위헌 판단이 헌법재판소에 넘겨진 이후 민주당 등 정치권이 자행한 행태가 오늘의 사태와 연결된 건 너무나 자명하다. 무려 29명의 국무위원과 기관장,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하고, 국가 미래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는 등 국정 발목잡기에 혈안이 된 야당이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행이 된 국무총리까지 내란 동조 혐의로 탄핵한 건 목적이 국정 안정이 아닌 정권 찬탈에 있을 것이란 의심이 들게 했다.

탄핵소추 이후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여당인 국민의 힘도 비상계엄 책임론을 둘러싸고 내홍에 시달리며 무기력증에 빠지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탄핵소추 가결 직후 20%대까지 떨어졌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6%까지 치솟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국민의 힘 지지율이 탄핵을 주도한 더불어 민주당과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는 조사 결과를 무슨 말로도 설명할 수 있을까.

혹자는 흩어졌던 보수가 다시 결집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정확한 분석이라 할 수 없다. 위기 앞에서 보수가 결집한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하향곡선을 그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건 민주당의 폭주에 지지층마저 등을 돌린데 따른 반사이익이라 해야 논리적으로 들어맞는다.

최근 민주당은 헌재의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내란죄’를 뺐다. 심판 인용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안을 제외했다는 설명이지만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그동안 대통령을 ‘내란수괴’라 불렀던 민주당의 이런 표변을 보며 많은 국민이 이재명 대표가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 조기대선에 출마하기 위한 꼼수로 여기지 않겠는가.

민주당의 몇몇 의원들이 최근 ‘민주파출소’라는 이름의 인터넷 신고센터를 만들었다. 카카오톡과 SNS 등에 가짜뉴스를 퍼 나르는 모든 사람을 조사해 법적 처벌을 하겠다는 식인데 국회의원이 무슨 권한으로 개인의 신상정보를 들춰내 검열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이걸 놓고 북한의 ‘5호담당제’처럼 우리 사회를 감시와 신고 테두리에 가두고 공포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법적 권한에 속한다. 그런 대통령을 탄핵소추 할 권한 또한 입법부에 있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저질렀는지 위헌적인지 하는 잘잘못을 따지는 건 앞으로 헌재가 심리를 통해 판단할 문제다. 그것이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법치인 것이다. 그런 절차에 앞서 정치적인 단죄를 해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욕심과 조급증이 아무 권한도 없는 공수처를 도구로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혼란에 빠뜨리고 있지 않은가.

탄핵정국 속에서 최근 여론은 요동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무 권한 없는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을 구인해 수사하는 모습에 환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신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절망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장면이 누군가에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지 반대로 역풍을 몰고 오게 될지는 머지않아 결과가 드러날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공수처장이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통령을 체포하도록 사주한 이들과 이들의 도구가 된 공수처는 훗날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이런 정치적 역기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나라와 사회의 앞날이다.

오늘의 국정 혼란과 불미스러운 대통령 구인 사태는 대통령이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을 부인할 수 없으나 그 과정에서 야당과 공수처가 보인 폭압에 가까운 행태는 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과 함께 국격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법치 훼손을 방치하면 누가 권력을 손에 쥐어도 다시 끌려 내리는 불행과 혼란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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