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4.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림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한편, 속죄론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두 단어는 ‘속죄’와 ‘화해’입니다. 속죄라는 뜻의 영어 단어 expiation의 접두어 ex는 ‘~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expiation은 성경에서 ‘죄값을 지불하여 죄책을 없애는 것’을 뜻합니다. 곧 잘못에 대해 벌금을 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속죄는 대가, 벌금, 속전, 희생제물 등을 지불하여 상대방의 요구를 충족시키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달리 화해를 뜻하는 propitation은 벌금을 물어야 할 피해 당사자와 관련된 용어입니다. 접두어 pro는 ‘~을 위해’ 혹은 ‘~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의 속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분노가 누그러뜨려져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화해를 이루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정리하면 ‘속죄’나 ‘화해’ 모두 하나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곧 속죄 사역은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일부 현대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린다는 개념이 하나님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개념을 반대하기도 합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달래거나 하나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린다는 것은 이교적 사상이라 비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서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는가?”라는 주제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받은 바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 즉 ‘장래의 노하심’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를 거두셨다는 것입니다. 43주차 본문을 다시 리바이벌합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5. 결어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라면 사람들이 당신에게 만일 악한 말로 위협하고 대적하고 비방하고 심지어 당신이 평안하게 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면 당신의 분노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내 집 앞에 남의 차가 주차해도 화를 내는 당신입니다. 상대방의 작은 실수에도 눈을 부릅뜨고 험악하게 대하는 당신입니다. 도로상에서 상대방 차가 끼어들어도 화를 내는 당신이 당신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사람에게 분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의 세상에서 무수한 인간들의 범죄와 악행들은 하나님을 진노케 만들었습니다. 이 진노를 무엇으로 누그러뜨리고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한 것입니까?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 힘을 합하여 찬송한다고 누그러뜨리는 것입니까? 모든 입으로 잘못했다고 시인하면 되는 일입니까? 세상의 모든 인간이 가진 돈을 다 모아 드린다면 하나님이 진노하심을 푸시는 것입니까? 오직 하나의 방법,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본 그리스도의 대속이요 속죄요 희생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속전이자 사탄에 대한 영원한 승리였으며, 하나님과의 화해를 회복한 영원한 안식의 사건이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믿어야 합니다. 아울러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오직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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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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