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환 목사
김요환 목사

어느 시대나 구원론 논쟁은 늘 뜨거운 감자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구원론 논쟁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라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언급하기에 앞서서 한국교회 성도들이 많이 오해하는 지점에 대해 먼저 언급하겠습니다.

종종 오해하는 지점은 이 구원론 주제가 교단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론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교단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이해해선 안 됩니다. 구원의 진리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명확하게 일치되어야 하는 주제이며 여기서 달라지면 심각한 이단 논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일치된 구원론은 무엇일까요?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구원을 얻으며, 여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라 함은 그분의 십자가 대속 사역과 부활을 믿고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증언하는 구원은 무엇일까요? 구원은 죄와 어둠과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죽음 이후 천국에 입성하는 것은 물론 이 땅에 살면서 성도의 기쁨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것까지를 구원받은 자의 삶의 증표이자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간혹 보수적인 해석자들은 구원을 종국의 때 최후 심판에서 천국으로 확정되는 개념에만 한정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 반대로 진보적인 해석자들은 구원을 이 땅에서 경험하고 누려야 할 현세적 개념에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 것인데, 믿음은 어떻게 얻어질까요? 그리고 이 구원은 취소될 수 있는 것일까요?

먼저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행위와 의지적 결단에 따라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단적 가르침입니다.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 한다거나, 어떤 조건을 이뤄서 구원을 쟁취하겠다는 생각은 기독교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에 이 선물(예수 그리스도)을 받기만 하면 구원 얻게 됩니다. 따라서 믿음 역시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의 의지적 결단이나 행위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믿어지지 않더라고 믿음의 척도와 확신 여부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기에 그 자체로 구원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구원과 구원의 조건인 믿음이 전부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단독으로 이루어진 구원이 취소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구원은 결코 취소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물을 줬다가 뺏는 치졸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값없이 주시는 은총이며 이것은 영구적입니다.

이런 교리적 진술 앞에서 “나의 행동이 성경적이지 못하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한 번 구원이 정말 영원한 구원이라면 행위는 어떻게 되나요?”라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선물이고,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즉, 구원받았는데 죄에 인생을 맡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비록 넘어지더라도 끊임없이 죄와 싸우는 인생을 살게 되고, 그 인생의 과정을 성화를 통해 이뤄갑니다.

웨슬리는 이 구원의 여정에서 성화의 과정을 그리스도인의 완전 성화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성화의 여정을 걷지 못해서 파선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감리교회의 교리는 ‘구원의 취소를 말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웨슬리의 견해는 어디까지나 성화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지 ‘칭의(의롭다 칭하심)’ 사건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견인의 은혜는 칼빈주의 교리가 아니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칭의부터 성화까지 모든 구원의 과정은 전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기인합니다. 여기에 인간의 가능성은 단 1%도 없습니다. 신인협력적 교리를 통해 인간과 하나님의 협력을 주장하거나, 물에 빠진 자가 손을 뻗어서 구출해주는 자의 손을 잡는 최소한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식의 예화는 부적절합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은 물에서 손을 뻗을 기력조차 남아있지 못하는 익사 상태입니다. 이런 존재를 주권적인 손으로 끄집어내어 살리신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신앙의 주어를 ‘나’에 초점을 두니깐, 구원의 상태와 지속 여부에 자꾸 인간적 행위가 개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신앙의 주어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고, 오직 주님의 단독적 사역으로 구원은 완성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구원 받은 백성들이 나가서 구원의 진리를 외치고 아직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을 전도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이 성화의 여정을 걸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성화의 여정이 구원이 취소될까 봐 두려워서 행하는 것이 되면 안 되고, 구원의 감격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행하는 일이 돼야 합니다.

구원이 취소될까봐 두려워서 하는 신앙은 율법적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공포와 두려움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감격과 기쁨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아직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을 향한 애통하는 마음에 기인하여 선교와 전도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신앙의 원리와 구원의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신앙인들에게 올바로 정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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