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3. 하나님의 축복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이제 마음이 가난하고 연약하여 통곡한 요시야 왕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보상하십니까? 28절을 보면 선한 왕 요시야에게 주시는 상과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첫째, 너희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갈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둠에서 시작하여 빛 가운데 생을 마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빛 가운데서 시작하지만 어둠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성경에는 이 두 인생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롯과 소돔인들을 보세요. 노아와 세상 사람들의 차이를 보세요,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에게 반역한 고라 일당의 차이를 보세요. 롯과 소돔인들의 차이는? 롯은 구원을 받았지만 소돔인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땅 밑으로 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죽음을 ‘죽는다’고 말하지 않고 조상들에게 ‘돌아간다’고 말씀합니다. 낯선 땅을 지나는 순례자처럼 우리는 이 척박한 곳에서 고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돌아간 바로 그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은 조상들의 영혼에게로 가고 그의 몸은 조상들과 함께 무덤에 눕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거두시는 것입니다. 이 거두심은 그만큼 우리를 귀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가치한 것을 거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추수 때에 쭉정이는 불에 태워 없애시는 분이십니다. 알곡만 창고에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이기에 그리스도의 핏값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사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당한다 해도 반드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앞으로 나라와 백성에게 닥칠 재앙을 보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사실상 요시야는 편안한 가운데 죽지 못했습니다. 그는 바로의 군대를 막고자 출전했다가 전쟁터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적들의 손에 피를 흘리며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28절에서 평안히 돌아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비참한 죽음이 즐비합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사는 분들의 고통을 아십니까? 밤마다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돌연사가 질질 끄는 죽음보다 낫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이 여러 번 죽는 것보다 낫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죽어 장례를 치루고 집에 돌아왔는데 밤에 멀쩡히 살아서 집에 돌아왔다 합니다. 그리고 1년 뒤에 다시 죽었는데 이번에 아들이 어머니를 향해 이번에도 다시 살아나올까요 하고 묻자 할머니가 하시는 말이 이번엔 관을 거꾸로 묻어 나올 수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요시야는 한 번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요시야는 이 죽음으로 실로 평안을 맛보았습니다. 왜냐구요? 요시야가 죽은 후에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는 망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포로로 끌려가 죽임 당하거나 눈알이 뽑혀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졌고 대신 우상들이 들어섰습니다. 만일 그가 살아서 이 모든 재앙들을 보았다면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죽음보다 더 큰 악몽이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요시야의 죽음은 그를 평안히 천국으로 데려가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실천임과 동시에 역대하 35:21~22에서 보듯이 그가 이집트 왕 느고와 싸우러 가지 말아야 함에도 의분으로 전쟁을 벌인 과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도 자비와 고난이 동시에 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죽음을 통해 요시야의 어리석음을 징계하심과 동시에 그에게 겸손의 상을 베푸셨습니다.

4. 결어

1) 날마다 성화되고 있습니다.

성화의 은총은 우리가 거룩해지는 과정에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성화되고 있습니다. 다만 각자 그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생성되는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끝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끝이 없습니다. 목적지는 있지만 그것마저 우리의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성화의 목표를 향해 날마다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얼른 달려가야 합니다. 나의 마감이 빠르든 느리든 상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의 신비입니다.

3) 하나님을 닮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요시야는 한창 젊은 나이인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사람의 입장에선 너무 빨리 갔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오래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몇 살이냐고 묻지 말고 얼마나 하나님을 닮아가고 있느냐고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화의 축복임을 다시 한 번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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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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