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통일부 장·차관을 교체했다. 특히 새 통일부 장관 후보로 대북 강경론자로 불리는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지명한 건 북한에 끌려다니던 과거의 통일부를 완전히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통일부는 ‘북한 지원부’가 아니다”라는 말로 통일부의 역할 변화를 주문했다. ‘북한 지원부’란 말은 이전 정부에서 통일부가 ‘남북 평화 이벤트’를 위해 북한의 입맛에 맞춰주던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부는 통일 관련 정책 개발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이 주 업무임에도 이를 등한시해 본연의 기능과 역할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북한 지원부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정작 통일에는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한 결과에 대한 국민적 질책과 무관하지 않다.

통일부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정책 개발이라는 본연의 업무가 아닌 ‘평화 이벤트’에 주력하게 된 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 정부는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대북지원에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었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4억5천만 달러를 송금하고, 금강산 관광에 현금 지불, 개성공단 추진 등으로 북한에 들어간 막대한 돈이 핵무기 개발이 아닌 배곯는 북한 주민을 위해 단 한 푼이라도 쓰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난 문 정부 역시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 선언 등 남북 평화 이벤트에 주력했다. 통일부와 청와대가 이일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북한이 이런 이벤트에 순수하게 응했을 리 없다. 그 대가 역시 미국과 유엔의 제재를 푸는 것과 대규모 경제지원 약속이었을 것이다. 북한이 문 대통령을 향해 ‘소대가리’라고 하는데도 잠잠할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아무 약속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응분의 굴욕쯤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까.

통일부가 통일 정책 연구와 개발이라는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분야가 있다. 바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관련 업무다. 그런 점에서 지난 문 정부의 통일부는 퇴행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대표적인 게 ‘대북전단지금지법’이다. 이 법이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리게 된 건 김여정이 대북전단지 살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통일부가 바로 관련 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한 데서 비롯됐다.

대북 전단지만큼 북한 주민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도 흔치 않다. 대북 인권단체들이 띄워 보내는 풍선엔 전단지 뿐 아니라 달러, 성경 등도 포함돼 있어 북한 주민에겐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단비와 같은 존재다. 그런 기능을 하는 대북전단지를 북한 정권이 요구한다고 법을 급조해 원천 봉쇄하는 데 앞장선 통일부의 책임은 단지 북한 정권을 도운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이 아닌 억압하는 데 협력했다는 건 더 큰 귀책사유다.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는 통일부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선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이 불가피하다. 윤 대통령이 지시한 변화 역시 북한 비핵화와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야말로 이벤트 부서가 아닌 통일을 준비하는 전문 부처로서 위상과 명예를 동시에 회복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이런 현실에서 윤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한 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공산 독재체제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전략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아는 이론가이자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데 방점이 있다.

김 장관 후보자는 민주화 항쟁 시기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개월간 옥살이를 하는 등 좌파 학생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에 ‘도서출판 녹두’와 서점을 운영하며 공산주의 철학과 사상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좌파 사상에서 돌아서게 된 데는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 종주국의 붕괴를 보며 숱한 번민의 시간을 보낸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공개되지 않았던 소련의 비밀문서 등의 연구를 하면서 김일성 등 그의 인생을 지배해온 좌파 이념과 결별했다. 그 후 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자유민주주의에 있음을 설파하며 좌파진영에 맞서 왔다.

그런 그를 좌파진영이 가만둘 리 없다. 민주당은 그의 ‘흡수통일론’을 문제 삼아 인사청문회에서 낙마를 벼르고 있다. 진보 시민단체와 언론들까지 ‘남북대결주의자’ ‘극우 성향의 대북 강경론자’ 등으로 몰아세우며 이 대열에 합류하는 분위기다.

이들의 이념 공세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과거 통일부가 ‘평화’를 내세우며 교류협력을 목적으로 벌인 각종 사업이 북한을 어떻게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있는 그대로 보길 바란다. 과거 정부에서 북한으로 보낸 돈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쓰였으니 내 꾀에 내가 속은 꼴이 아닌가.

진보든 보수든 진영 논리보다 중요한 게 나라의 안위다. 힘없는 평화는 허상일 뿐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이 잘 말해준다. 통일부가 그런 허상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한 결과가 바로 ‘무용론(無用論)’이다. 이는 변화와 개혁 없이는 더 기다려줄 국민도, 남은 시간도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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