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이번 학기 일반대학원 예배설교학 과목 중에 ‘인문고전과 설교학’이란 제목의 수업이 있었다. 13주 동안 내가 정해준 ‘인문고전 저서’ 가운데 13권을 매주 월요일마다 한 권씩 차례로 읽고 정리해서 두 사람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를 들어, ‘레 미제라블’이란 책을 맡았으면 먼저 그 책을 여러 번 읽고 난 후에 그 속에서 설교에 활용할 모든 내용들을 추려서 강의안으로 만들고 프린트해와서 나눠주고 발표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똑같은 책을 두 사람이 읽고 그런 식으로 앞에 나와서 발표한 후 질의응답도 받는 시간이다. 마지막 강의에서 발표할 책은 『결국엔 사랑』이란 책이었다. 손양원 목사님이 그렇게나 아끼고 사랑하셨던 막내딸 손동연 사모님이 집필하신 책이다. 이 책은 그분의 언니 되시는 손동희 권사님이 오래전에 쓰셔서 대박 난 책과는 다른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손양원 목사님의 부인인 정양순 사모님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발표할 예정인데, 발표 후에는 식사도 같이 하고 차도 마시면서 한 학기의 마무리를 정겹게 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깜짝쇼’를 하기로 했다. 바로 발표할 책인 『결국엔 사랑』의 저자인 손 목사님 막내 따님의 아들을 수업에 참여시켜서 발표를 다 듣게 한 후 앞으로 불러내어 인사시키고 함께 식사와 교제의 자리에 동참시킬 계획 말이다.

그동안 손양원 목사님 사모님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는데, 그 막내 따님이 저술한 책에는 손 목사님 사모님에 관한 감동적인 스토리가 많이 나온다. 손 목사님과 함께 신앙 생활하시던 당시 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순교하신 손 목사님과 두 아들의 믿음을 합친 것보다 사모님 한 분의 믿음이 더 컸다고 한다. 책 속에 소개된 사모님의 모습은 마치 투사와 같은 강직하고 보수적인 이미지 그대로이다.

손 목사님에게선 다소 인간적인 모습이 비춰지지만, 사모님은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여전사 이미지가 강하게 풍겨진다. 『결국엔 사랑』에 대한 두 사람의 발표 후에 깜짝쇼를 준비했음을 밝히면서 맨 뒤에 앉아서 수업을 경청하고 있던 김동화 전도사를 앞으로 불러내어 소개했다. 모두가 난리가 났다. 우리가 그토록 존경하는 손양원 목사님의 손자와 직접 대면해서 만날 수 있으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기 전, 그동안 손양원 목사님 가족과 관련해서 궁금했던 내용들이나, 오늘 발표한 책 내용 중 질문할 내용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발표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질문을 제기했다. ‘어째서 순교자의 후손들이 속한 교단은 쇠퇴하고, 일본천황에게 절을 한 이들의 후손들이 몸 담고 있는 교단은 부흥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똑똑한 질문이다. 매국노의 후손들은 물려받은 땅이 많고 잘 먹고 잘 살지만, 애국자나 순교자의 후손들은 너무 가난해서 끼니도 못 때우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다. 학생들의 의문이나 질문사항은 다 교수의 소관이다.

내가 만일 하나님이라면 순교자의 후손들은 모두 다 부자가 되게 하고, 배도자의 후손들은 다 망하게 했을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을 본다.

우선 기억해야 할 사실 하나는, 숫자가 많아야 만이 진정한 부흥이라고 말할 순 없다는 점이다. 교인 수가 많은 것을 가지고 무조건 신앙의 순결성을 지킨 상급으로 해석하려 해선 안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순교는 순교자 자신이 한 것이지 그 후손들이 한 것은 아니란 점이다. 자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순교한 일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자랑하거나 뻐기는 이들이 있다.

존경받을 만한 선조들의 후손이란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런 일이거늘, 마치 자기네가 순교한 것처럼 일본천황에게 절한 분들의 후손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이들도 보았다.

그런 점에서도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은 존경할 만한 분이시다. 남편 손양원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입으셨던 피 묻은 옷을 추억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가족들이 말렸지만, 우상이 되면 안 된다면서 무척산 기도원에서 불태워버리셨다. 그걸 남겨두었더라면 손 목사님 기념관에 보관될 최고 가치가 있는 유품이 되었을 거란 점에선 아쉬움이 크지만 말이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평소 궁금했던 점들을 손 목사님 손자에게 많이들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거기서 순교자의 후손들을 존중히 여기고 잘 대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 학기엔 손양원 목사님의 막내 따님인 손동연 사모님을 모시고 식사하면서 교제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아주 행복한 시간을 가진 것 같다. 교실 안에서의 수업도 좋지만, 야외나 카페에서 대화하면서 교제하는 일도 필요함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순교자와 그 유족들이 당했던 모진 아픔과 상처들에 대해서 들으면서, 그분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도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의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신앙을 우리도 이어받아, 불신자들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차별화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다가면 좋겠다고 굳게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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