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ㅣ<마기의 경배>ㅣ1504년ㅣ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유대나라 헤로데(Herodes, 헤롯)왕이 통치할 시기 아기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와 아기예수에게 경배한 것은 예수가 이방인으로부터 경배 받은 첫 번째 사건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제2장에서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 헤로데왕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그 때에 동방에서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 분의 별을 보고 그 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중략> (별을 따라가)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보배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공동번역)

필자는 고향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것은 교회에서 성탄절 축하예배를 준비하면서 동방박사 옷을 걸치고 밤늦도록 연극을 하던 장면이다

성경 첫머리에 나오는 동방박사 이야기는 행복한 어린 시절과 오버랩 되면서 많은 상상을 하였다. 어디서 온 누구일까? 축지법을 써서 날아 왔을까? 캄캄한 밤에 별을 따라서 말을 타고 달렸을까? 먼 길을 낙타를 타고 왔을까?

그 후 여러 성서화를 대하면서 동방박사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기에는 성경 기록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수수께끼를 푸는 심정으로 관련자료를 찾아보곤 하였다.

동방에서 온 이들은 누구인가?

희랍성경 원전에서는 마고이(Magoi)로 되어있다. 이를 킹 제임스 번역본에서는 오랫동안 현자(wise men)로 썼는데 이것이 원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 받아 왔다. 최근의 20세기 신약성서(TCNT)에서는 점성술사(Astrologers)로, 그리고 새 국제표준번역(NIV)에서는 원전에 따라 마기(Magi)로 표현하고 있다. Magi는 Magus(마법사)의 복수형이다.

우리 성경에서는 존 로스 번역본(1877)으로부터 계속 동방박사(東方博士)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박사는 박학다식한 사람이란 뜻의 중국어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동방박사를 동방 풍의 모자를 쓴 마기로 그렸다. 메시아를 '한 별'로 예언하였던 구약의 선지자 발람이 초기 마기집단의 창시자라는 전설이 있을 만큼 마기는 점성술에 능한 고대 메디아 및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승려였다고 하며 마법(Magic)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나 중세말기부터는 시편(72편10절)의 기록에 따라 그들을 왕(king)으로 보는 해석이 생겨나 수많은 신하와 동물이 함께 온 호화로운 왕의 행렬로 표현하고 있다.

사쎄타(Sassetta)의 <마기의 여로>에서는 독특한 의상과 사냥용 매를 들고 당나귀에 태운 원숭이 등 호화로운 왕의 행렬이다.

사쎄타(Sassetta)ㅣ<마기의 여로>ㅣ1435년경ㅣ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성경에서는 '박사들' 이라는 표현을 썼을 뿐 동방박사가 몇 명인지 쓰여 있지 않다.

예물이 셋이니 박사도 셋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리스의 유명한 교부인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년경)가 처음이다. 헤로데왕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놀란 것을 보면 더 많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또한 성경에는 그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할 뿐 어디서 온 누구인지는 언급이 없다.

그들은 각기 바벨로니아. 페르시아와 인도에서 왔다는 전설이 있지만 최근에는 고가품인 유향과 몰약의 주산지인 남부 아라비아 반도 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지역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보면 동방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태리의 라벤나에 있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교회와 스페인 카탈로니아지역의 모솔에 있는 산타마리아성당 제단화에는 박사들의 이름이 가스파르(Gaspar), 발타사르(Balthasar) 그리고 멜키오르(Melchior)였다고 밝히고 있다.

<동방박사 이름을 적어놓은 제단화 부분>ㅣ카탈로니아 모솔(Mosoll)의 산타마리아 성당ㅣ13세기

15세기 플랑드르 화가인 마뷔즈(Mabuse, 일명 Jan Gossaert)의 <왕들의 경배>를 보자.

유럽을 상징하는 중년의 가스파르가 무릎을 꿇고 황금을 바치고 있으며 그의 뒤에는 아시아의 젊은 왕 멜키오르가 값비싼 용기에 든 유향을 들고 터번을 쓴 사람을 비롯하여 많은 수행원들과 함께 서 있으며 좌측에는 아프리카의 흑인 발타사르가 몰약을 들고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왕의 차림으로 청년과 장년과 노년이라는 인생의 세 단계를 상징하게 된 것은 중세 초기 동방교회의 전통이다.

또한 그 당시 유럽이 알고 있던 세 대륙의 우의적 의미를 보태어 백인. 황인. 흑인으로 인종을 세분한 것은 12세기 스페인 채색필사본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으며 15세기 초부터는 일반화 되고 있다. 왕 중 왕인 예수께 이 세상 모든 대륙의 인류가 경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마기의 경배>에서도 젊은 흑인을 두드러지게 그리고 있다.

동방박사는 언제 도착하여 경배 드렸는가?

루가의 복음서 <제2장>에는 천사가 기쁜 소식을 양치기들에게 알려서 그들이 말구유의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서화에서는 일반적으로 동방박사가 경배하는 뒤 편에 목자들을 배치하여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성경에서는 목자들이나 동방박사가 모두 '아기'에게 경배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영어성경에서는 아기를 구별해 표시한다. 목자들이 포대기에 싸여 누워있는 아기께 경배할 때는 '유아(baby)라고 한다.(킹 제임스 번역본 및 NIV)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집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아기께 경배할 때는 킹 제임스 번역본에서는 '어린 아기(young child)'라고 하였으나, NIV와 놀리의 새 번역(NOR)에서는 동방박사는 몇 개월 후에 도착 하였다는 그간의 논의에 따라 '아이(child)'라고 번역하고 난외 주를 달았다.

말을 탔는지 낙타를 타고 왔는지 하던 어린 시절의 상상과 헤로데왕이 왜 두 살 이하 아기까지 범위를 넓게 잡아 유아학살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풀어진 셈이다.

마뷔즈(Mabuse)ㅣ<왕들의 경배>ㅣ1500-15ㅣ런던 국립미술관

마뷔즈는 지붕에 죽은 잡초가 보이는 무너진 건물과 퇴락한 기둥 앞 정원의 깨어진 타일 바닥 위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그리고 있다. 배경에 있는 폐허가 된 집의 모습은 율법을 상징하는 옛 역사는 허물어지고 예수님의 오심으로 새로운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건물 뒤쪽에는 소와 당나귀가 있고 아기 예수께 먼저 경배 드린 목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파란 하늘에는 비둘기의 모습으로 성령이 내려오는 가운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기록한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찬양하는 천군천사의 아름다운 모습이 경이롭다.

그러나 이 밤을 밝히는 가장 밝은 빛은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이며 이 별은 아기예수의 바로 위에 멈춰 서서 밝게 빛나고 있다.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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