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2. 인간의 철저한 부패

그러므로 우리의 거듭남 곧 ‘중생’은 ‘새로운 탄생’이자 ‘새로운 시대’ 혹은 ‘새로운 나라’에로의 진입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이 성령의 은혜와 역사에 의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 새로운 인생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왜 이런 새로운 탄생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갈 수 있느냐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왜 거듭나야 하는가?”로 정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거듭남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다시 인간론으로 돌아가서 인간이 얼마나 철저하게 부패되고 타락한 존재인가에 대한 선이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사람이 전혀 부패된 일이 없다면 중생 혹은 영적 생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가 가다가 멈춰 선 것은 차가 고장났기 때문입니다. 이때 정비사가 차를 고쳐주어야만 합니다. 고장나지도 않은 차를 고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이 고장 났기 때문에 새롭게 고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고장이 난 것인 하면 완전히 망가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고장난 것을 수리할 수 없을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특별한 사역이 없어도 인간 스스로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다고 한다면 굳이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인간을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들이 알아서 천국으로 찾아 오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구원을 스스로 획득할만한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주님은 요 6: 65에서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노력한다고 하나님에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진리입니다.

왜 인간 스스로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누누이 강조하다시피 인간은 정말로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다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상태에 대한 존 파이퍼 목사님의 견해를 기초로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입니다.

죽음은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을 뚜렷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2) 사탄의 영에 속한 자, 곧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accord with)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탄의 종으로서 사탄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탄 즉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없는 자요 거짓의 아비”라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하였습니다(요 8:44).

디모데는 사탄에게 속박된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4~26)

한편,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문제의 근원은 부모에게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 나의 행동이나 환경이나 조건 등이 아니라 나의 본성이 나의 가장 깊고도 불순한 문제의 근원입니다. 나는 처음엔 좋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나중에 나쁜 짓을 해서 나쁜 본성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본성을 두고 이렇게 간파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아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엡 2:2~3)

3)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던 자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영적 빛이 비칠 때 저항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는 어둠에 갇힌 자는 갑자기 찾아 드는 햇빛에 눈을 뜨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19~21)

4) 복음을 거부하던 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장 3절에서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지각은 어둡고 돌처럼 단단하고 거역하는 마음이 거세기 때문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누가 이것을 이해하리요”(렘 17:9)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4:18)

5) 육신에 속한 자였습니다.

성경에서 육신은 죄악을 실행하는 도구이자 주체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또 육신은 영적 생명(조에)을 잃어버리고 단지 육적 생명(비오스)만을 가지고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해 활동합니다. 그래서 육신은 하나님의 일을 대적합니다. 육신의 일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니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7~8)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겐 선한 것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행을 한다며 성금을 내고 장학금을 기부하고 기부를 하고 이웃을 돕는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이러한 육신의 선행을 선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행동은 그것이 인간이 보기엔 선행이라 해도 여전히 하나님이 정하신 선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패한 음식을 이웃에게 아무리 많이 나누어준다 해도 그것은 선행이 아니라 부패한 음식을 통해 이웃에게 해를 끼칠 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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