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세계 여러 곳에 성지순례를 다녀왔지만 내 경험상 영국만 한 데가 없었다. ‘천국이 참 성지(聖地)인데 이 땅에 무슨 성지가 있느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다녀왔다’고 하면 예수님이 지금 천국에 계신데 거기가 어째서 성지냐고 따지는 이들도 꽤 있다. 하지만 너무 별나게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예수님이 사셨던 곳이고 성경이나 기독교와 관련된 곳이니 ‘성지’라고 표현하는 걸 가지고 너무 깐깐하게 말할 필요가 뭐 있나 싶다.

[2] 지금까지 영국을 세 번 다녀왔는데, 하도 은혜가 깊고 깨닫는 것이 많아서 내년 7월 초에 방문을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다시 가려고 한다. 그간 런던에서 두 번이나 설교세미나를 했는데, 참석자들 대부분이 각 지역에서 20~30년 이상 목회를 해온 현지 최고의 가이더들이라 그들의 안내를 받으면 더없이 감동이 크고 깊다. 물론 경험 많고 현지에 밝은 그들이지만 학자가 아니고 성경의 최고 전문가도 아니기에 내가 옆에서 살을 붙일 때가 많다.

[3] 영국을 방문하면서 절감하는 안타까움 하나는 과거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그들이 지금은 동남아보다 더 절실한 피선교국이 되었다는 점이다. 주일에 교회 출석률이 3%밖에 되질 않는다. 교회는 대부분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어 있고, 젊은이들은 교회에 오질 않고 영적으로 암울하기 짝이 없는 상태이다. 5년 뒤나 10년 뒤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씁쓸했다.

세계선교를 주도적으로 잘해오던 영국이 왜 그리 되어버렸을까?

[4] 내가 가서 보고 듣고 확인한 이유와 원인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과거 우수하고 신앙 좋은 영국의 인재들이 본국에 남아서 목회를 하지 않고 대부분 아시아의 선교사로 가버리다 보니 영국교회 자체는 빨리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견해가 있다. 일리 있는 얘기라 본다. 당시 선교사들은 모든 면에서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이 본국에서 목회를 했더라면 영국교회가 얼마나 부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긴 했다.

[5] 둘째는, 설교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국 설교자들의 설교는 적용에 강한 반면, 영국 설교자들의 설교는 적용 없이 본문 설명으로만 가득 찼기 때문에 더 빨리 쇠퇴했다고 한다. 적용을 무시하면 강해설교가 될 수 없다. 강해설교라면 반드시 적용이 필수적으로 발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청중들에게 적용하기 위해서 주어진 내용이다. 청중들이 자기 삶이나 신앙에 도움이 되고 유익한 구체적인 적용을 필요로 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다.

[6] 셋째는, 웨일즈 지역에 엄청나게 강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말씀 없이 기도와 찬양과 간증이 주가 되었기에 빨리 그 불길이 꺼져버렸다고 한다. 1904년 영국의 웨일즈 부흥운동의 주역은 에반 로버츠(Evan Roberts)이다. 나는 그가 기도하다가 부흥의 불길에 휩싸인 그 교회를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기도방에서 며칠간 기도하면 나도 불을 받을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이 변화된 후 말씀을 듣고 5개월 만에 10만 명이 주께 돌아왔다고 한다.

[7] 당시 부흥의 역사로 말미암아 범죄가 사라지니 경찰들과 판사들이 할 일이 없다고 교회에다 항의를 하는가 하면, 탄광에서 석탄을 실어나르는 마부들이 짐승들에게 더 이상 채찍하거나 욕을 하지 않아서 한동안 짐승들을 혼란 속에 빠뜨릴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 집회 시 녹음된 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제대로 들을 순 없었지만, 주로 찬양과 간증과 기도가 주를 이루었다.

[8] 거기에다 말씀이 강하게 첨가가 되었어야 부흥의 역사가 더 오래 영국을 지배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

웨일즈와 브리스톨 지역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흥분된다. 영국 웨일즈 부흥의 주역 에반 로버츠와 2차세계대전 승리의 향방을 가리게 했던 숨은 주역이자 중보기도의 대명사 리즈 하월즈와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가 활약했던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9] 또 웨일즈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선교사로 왔다가 대동강에서 순교 당한 토마스 선교사 부친이 사역했던 하노버 교회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살았던 사택이 여전히 거기 있고, 부모들의 무덤도 예배당 들어가는 입구에 마련되어 있다. 거기 10명도 채 남지 않은 영국 교인들을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를 만났을 땐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나이 또래 통합측의 유재연 목사와 사모님이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 그분들은 우리 선조들과 우리가 그들로부터 진 빚을 가기서 혼자 대신 갚아주고 있었다.

이처럼 가는 곳마다 받는 은혜와 감동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위대한 부흥사 조지 휫필드가 활약했던 곳과 요한 웨슬리와 동생 찰스 웨슬리가 영국을 바라보며 기도했던 높은 산이 거기에 있다. 비가 세차게 오던 주일 오후에 영국 목사와 함께 서너 시간이 걸려 두 형제가 기도했던 산에 올라가 영국을 품고 기도한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다.
[11] 무엇보다 나를 흥분시킨 장소는 대영박물관이었다. 거기엔 성경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시킬 소중한 자료와 물건들이 즐비하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이나 전쟁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이 적혀있는 물건들이 많은데, 성경보다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얼마나 나를 흥분시켰는지 모른다. 거기서 ‘나보니더스의 원통’과 ‘고레스의 원통’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던 경험은 지금도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10] 어느 때보다 더 영국과 웨일즈와 대영박물관이 내게 손짓하고 있다. 하루 빨리 영국을 와서 보라고 말이다. 속히 내년 7월이 와서 오랜만에 영국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 세상에 가볼 곳들이 너무도 많지만, 영국은 가히 은혜받고 감동받기에 최고의 나라임을 보증한다. 최고의 가이더들이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함께 영국을 방문하고 나면 다음 해에 또 거길 찾지 않으면 배길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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