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축적의 원리

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그런 기도와 말씀의 습관 속에서 레에마가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특별히 습관이 중요한 이유는 습관을 통해서 “축적”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 가운데 임계점의 법칙이 있다. 90도까지도 물이 제대로 끓지 않다가 100도를 치는 순간 물이라고 하는 액체가 끓어 수증기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영상 5도까지도 물이 얼지 않고 있다가 0도를 치는 순간 액체가 변하여 고체가 되기 시작한다. 영적인 원리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활자체”(로고스)가 나의 심령에 꽂히는 “활력체”(레에마)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내 영혼에 쌓이고 쌓이는 “기도와 말씀의 축적”이 필요하다.

우리의 시퍼렇게 살아있는 자아와 고집과 죄성이 오랜 시간 기도와 말씀에 의해서 만져지고 만져지고 또 만져질 때, 어느 순간 하나님의 “활자체”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활력체”가 되어 내 심령에 “성령의 파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령의 파동을 경험한 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그와 같은 파동을 일으키는, 그와 같은 파동을 전달하고 전염시키는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제구 시(오후 3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습관적으로 오전 9시와 오후 12시, 그리고 오후 3시에 항상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와 같은 습관을 따라 베드로와 요한은 그 날도 변함없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다. 그 때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한 앉은뱅이가 성전 문에서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뭐라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구걸을 시도했다.

그 순간 베드로가 그 앉은뱅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는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는데, 그 순간 그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에 힘이 들어가 서서 걷고 뛰기 시작하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가운데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치유의 역사는 베드로와 요한의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고, 나의 예수님은 하실 수 없는 일일까?

이 순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 그 비결이 무엇이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하며 묵상해 보았다. 그리고 정답을 찾았다. 베드로의 마음에 하나님의 레에마가 임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은과 금을 구하며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는 순간, 오늘 그에게 치유가 임하게 될 것이라는 성령의 감동이, 성령의 파동이 베드로의 심령 안에 일어났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성령의 감동을 의지하여 실천에 옮김으로서 그 앉은뱅이의 심령 안에 레에마의 말씀을 심은 것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날지어다.” 그리고 그 때 이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에 레에마의 힘이 들어가면서 그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제 안에도 이 레에마의 말씀을 주시옵소서. 이 레에마의 말씀이 나의 심령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레에마의 말씀으로 나의 질병이 나음을 얻게 하시고, 나의 태의 문이 열리게 하옵시고, 나를 묶고 있는 모든 정신적인 결박과 묶임들이 끊어지게 도와 주시고, 광야에 길이 나며 사막에 샘이 터지는 믿음의 표적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와 말씀의 습관을 일으키기 위해서 꼭 기억하시고 실천해야 하는 팁을 한 가지 가르쳐 드리겠다. 아주 단순한 원리에요. 습관을 키우려면요 이렇게만 하시면 되요. “하기 싫을 때, 그 때가 꼭 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된다. 참 쉽죠?

정말 하기 싫을 때, 그 때 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와 말씀의 삶을 통해서 레에마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기도와 말씀의 자리를 건너 뛰고 싶을 때 바로 그 때가 꼭 기도와 말씀의 자리로 나가야 할 때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만 한다.

18세기 대 부흥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은 존 웨슬리다. 존 웨슬리는 35세에 회심한 후 88 세에 죽기까지 약 53 년간 영국 전역을 말 타고 다니면 서 4만편 이상의 설교를 통해 영국 부흥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존 웨슬리는 35세 인 1738년 5월 24일자 일기에 자신의 회심 순간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게이트 가에 있는 어느 교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9 시 15 분 전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는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때 웨슬리의 마음에 내키는 대로 교회 예배의 자리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웨슬리, 지금의 감리교, 지금의 영국은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 사탄 마귀가 우리에게 레에마의 말씀이 임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레에마가 임하기로 작정된 그 시간, 그 자리에 여러분이 가기를 원할까요? 가지 않고 다른 곳에 가 있기를 원할까요?

그래서 그날 따라 유난히 기도와 말씀의 자리에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거나, 도무지 오늘은 예배의 자리에 갈 수 없을 만큼 정신없이 터지는 일들, 과제들 때문에 기도와 말씀의 자리를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사탄 마귀의 방해 공작이 들어오고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악물고 기도와 말씀의 자리로 달려 나가야 한다. 마음에 내키는 대로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기 싫을 때 가지 않는 그런 수준으로 “기도와 말씀의 자리”를 대우해 준다면, 우리는 절대 레에마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이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