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아르헨티나 의사들의 시위

이명진 소장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

지난 2018년 7월 31일 아르헨티나 ‘생명을 위한 의사’ 소속 의사 1천여 명이 “나는 의사이지, 살인자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낙태시술반대 피켓시위를 벌였다. 대한민국에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가 낙태를 찬성하는 것과 많이 대조적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 낙태죄를 묻는 2019년 형법269조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은 산부인과 개원의였다.

2018년 8월 8일 아르헨티나 의회는 15시간 이상의 긴 토론 끝에 임신 14주 이내 임산부가 자유롭게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을 최종 부결시켰다. 주변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낙태 이슈를 피해가려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과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아르헨티나 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의원들의 수준 차이를 느낀다.

부실한 의과대학 생명존중 교육

의과대학생들은 임상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흰 가운착복식(White coat ceremony)을 한다. 의과대학 학생들이 일반 학생의 신분에서 예비 전문직의 신분으로 바뀌는 뜻깊은 행사다. 이때 예비의사로서 꼭 명심하고 지켜야 할 전문직 윤리와 가치를 담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실은 1948년 만들어진 제네바 선언을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사용하고 있다.) 학생들은 흰 가운 착복식과 함께 선서한 내용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선서 문구 중에서도 특별히 살펴볼 문구가 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 번째로 생각하겠노라”라는 문구다. 히포크라테스 원전에도 “나는 여성에게 낙태약을 주지 않겠다.”고 되어 있다. 선서에 담겨 있는 생명을 존중하는 프로라이프 정신은 의사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선서에 담겨있는 생명존중 사상이 구체적으로 의과대학 교육과정안에 충실하게 담겨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나 난다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 역시 제대로 된 생명존중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충실한 생명존중 교육을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의과대학에서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의사가 되면 환자의 건강권에만 집중하고 정작 실존의 가치인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주장을 펼 수 있다. 아르헨티나 의사들처럼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를 거부한다고 분명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건강만 있고 생명은 외면한 의과대학 교육의 문제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누가 우리의 생명을 지켜 줄 것인가?

방어능력이 없는 약자가 생명을 위협받거나 죽임을 당할 때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전쟁 중에 죽임을 당한 어린아이나 학대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생명을 볼 때 안타깝고 어떻게든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부는 외적의 침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위험한 환경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며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안에 어떠한 생명존중 정책도 발견할 수 없다. 2019년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아직까지 낙태죄에 대한 개정안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새 정부는 생명을 지켜줄 최후의 법적 보호막인 낙태죄 개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미래의 국민인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생명이 없이는 건강도 행복도 추구할 수 없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의사를 양성하는 의과대학에서도 생명존중 사상이 두텁게 자리 잡은 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의사단체와 여러 보건단체 역시 생명존중 정책이 조속히 펼쳐지도록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여가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바르고 용기있는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생명이 경시되는 시대에 저항하며 우리의 생명을 우리가 지켜가야 한다.

이명진(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명이비인후과 원장)

* 이 글은 <의학신문>에 실렸던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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