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총신대 역사학 교수 김형석 목사
김형석 목사(전 총신대 역사학 교수,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사)대한민국역사문화연구원 원장)

19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대중의 역사인식은 김영삼과 달랐다.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1919년 임시정부로부터의 계승을 강조한 데 비해, 1945년 9월 건국준비위원회 목포지부에서 활동하였던 김대중은 1948년 8월 15일의 정부 수립이 곧 대한민국의 건국이라고 인식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건국50주년을 맞이한 1998년 8월 15일 ‘IMF 외환위기의 극복’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국민운동을 제창하면서 ‘제2의 건국’이라고 명명하였다. 김대중은 1998년 8월 15일 ‘대한민국 50년’ 경축사를 통해 “제2의 건국에 동참합시다.”라고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역대 대통령의 역사인식② 김대중의 제2의 건국운동
 ©김형석 교수 제공

"오늘은 광복 53주년 기념일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 이는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새로이 정립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며, 민족의 재도약을 이룩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동참하는 '제2의 건국'을 제창하는 일입니다. '제2의 건국'은 우리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그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입니다. '제2의 건국'으로 가는 길은 대한민국의 법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역대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방식과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오직 국민의 정부가 표방해 온 새로운 국정철학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지금부터 추구해야 할 국정의 방향입니다." - 김대중, 「대한민국 50년 경축사」(제2의 건국에 동참합시다) 중에서

역대 대통령의 역사인식② 김대중의 제2의 건국운동
 ©김형석 교수 제공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제2의 건국을 제창한 김대중의 역사인식은 그 전날에 열린 「대한민국 50년 - 우리들의 이야기 전」 개막식 말씀에 보다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오늘 돌아본 50년 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은 공산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반대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 그때 UN에서는 한국의 선거를 시찰하러 왔습니다. 시찰단은 전국을 돌아본 결과 국민의 압도적인 참여와 질서정연한 선거를 보고 어떠한 문제도 제기할 여지가 없었습니다....UN은 대한민국 수립의 과정이 모두 합법이고 국민의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보고함으로써 우리는 UN의 승인을 받고, 공산권을 빼놓고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 김대중, 「대한민국 50년- 우리들의 이야기 전 개막식 말씀」(1998.8.14) 중에서

한편 1998년 10월 2일 대통령직속자문기구로 출범한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는 창립선언문에 "건국 50년 동안 우리는 분단과 남북 대립의 질곡 속에서도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이후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는 과거의 적폐 청산과 21세기를 대비하기 위해 부정부패추방운동, 국민화합운동, 신지식인운동, 한마음공동체운동, 문화시민운동 등 '5대 운동'을 펼쳤다. '제2 건국'의 영문 명칭은 'Rebuilding Korea'이었으며, '범국민추진위원회'는 'National Commission'이었다. 그러나 '제2의 건국운동'은 '관 주도의 운동'이라는 비판과 선거용 조직이라는 논란이 계속되자 2003년 4월 자진해산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역대 대통령의 역사인식② 김대중의 제2의 건국운동
서울시청 앞에 걸린 제2의 건국 플랭카드 ©김형석 교수 제공

김대중에게 특기할만한 것은 그의 대일 역사인식이다. 1989년 1월 9일 평민당 총재시절 주한 일본대사관저에 마련된 히로히토 일왕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대통령 취임 후에는 일왕을 천황이라고 공개 천명하면서 '실리주의 외교'를 표방한 김대중의 외교론은 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열린 김대중-오부치 간의 한일정상회담에서 발표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극일론(克日論)이라는 역사인식으로 나타났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했다." -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국정신문>(1998.10.12) 중에서

역대 대통령의 역사인식② 김대중의 제2의 건국운동
김대중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 히로히토 일황을 조문하고 있다. @경향신문 ©김형석 교수 제공

이 같은 일본의 사죄 바탕 위에서 화해와 선린우호를 약속한 김대중의 외교적 입장에 대해서도 국익을 위한 '실리주의 외교'라는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국격을 저버린 '저자세 외교'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한다. 또 일부 비판자들은 '제2의 건국운동'에 대해서도 "제2건국이란 말은 기존하는 나라를 없애고 그 나라 명칭만 유지하면서 나라 전체의 내용적 면모를 고쳐 180도 다른 이념의 방향으로 국가를 다시 세우겠다는 의미"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김대중 정부에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 기간 동안 일본․중국과의 외교관계에 심각한 갈등이 없었던 것처럼, 역사문제에서도 특별히 갈등을 빚은 적은 없었다.

한편 김대중의 대일 인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21년 11월 11일 윤석열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으로부터 한일관계 개선을 시작하겠다"며 "김대중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 극복 등 여러 업적을 남겼지만, 그중에서 '한일 공동선언'은 외교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동선언에는 오부치의 '통렬한 반성과 사죄'와 김대중의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기 위해 서로 노력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두 나라 정치 지도자들만 결심한다면 김대중-오부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에서 주목해 볼 만한 내용이다.

김형석 교수(고신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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