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택 목사
장종택 목사 ©나주글로벌교회 영상 캡처

나주글로벌교회(담임 최철준 목사) 고난주간특별부흥회 첫날인 지난 14일 저녁 장종택 목사가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고린도후서13:5)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장종택 목사는 ‘은혜로다’, ‘다윗처럼’을 작곡한 찬양사역자이자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자>, <온유야, 아빠야>의 저자로 이날 부흥회에선 둘째 딸 온유가 ‘Anti-NMDA 수용체 뇌염’이라는 희귀병으로 죽음까지 갔다가 예수님을 부르며 살아난 간증을 나눴다.

장종택 목사는 “병원에 달려가니 응급처치실 침대를 십여 명의 의사, 간호사가 빙 둘러싸 있었다. 담당 교수님은 아이가 8분간의 긴 발작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죽음 안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저희 딸은 뇌염과 자가면역질환이 합쳐진 희귀병으로 강한 항체가 뇌를 공격해서 죽인 것이다. 담당교수님은 저와 아내를 불러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 현대의학으로는 살릴 수 없다. 둘째는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 긴 마라톤이 될 것이라며 오늘, 내일, 모레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결국 낙담되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딸아이의 몸에 드러나는 증상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발작이었다. 뇌가 죽으면 신경이 다 죽어서 감각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뇌가 죽었는데도 몸이 공격을 당하니까 몸이 못 견디고 발작을 했다. 몸에 꽂힌 링거들을 다 뽑아버려서 귀한 약들이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았다. 두 번째는 뇌가 죽어서 24시간 눈을 뜨고 있었다. 누구보다 눈을 많이 뜨고 있는데 시신경이 죽어서 아무것도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어 “중환자실에서 아내와 교대로 온유를 돌보며 아이의 발작과 고열과 싸워야 했다. 밤 11시쯤 되면 그 많던 중환자실 가족이 집으로 가도 꼭 4~5명이 남아 있었다. 혹시 집에 갔다가 죽음을 못 볼까 봐 기다리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저였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밤새 벽을 두드리면서 기도하는데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 같았다”고 했다.

그는 “기쁨으로 싸우려고 커튼을 열고 웃으면서 ‘온유야! 아빠야’ 말하는 순간 제 입은 웃는데 눈물이 튀어나갔다. 누워있는 딸아이는 제 딸이 아니었다. 머리엔 풀이 다 묻어서 얽히고 설키고, 20일간 눈을 뜨고 지내서 눈동자는 짙은 분홍색으로 변하고 몸은 뒤틀려 있었다. 밥을 먹지 못해 영양분이 없어서 피부가 까맣게 타들어 가고 피부는 쩍쩍 갈라져 있는 아이를 보며 입은 웃고 있는데 눈물은 총알처럼 터져나갔다”고 했다.

장 목사는 "딸아이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자식이 죽는 것을 보는 게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형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이라는 제 딸과 저만 있는 세상에서 그 어떤 사람의 말도 위로와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나를 진짜 공감할 수 있는 한 분의 이름이 생각났다. 바로 하나님이었다. 그걸 깨달으면서 ‘하나님 이렇게 아프셨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심장이 찢어진다는 것이 이런 거였습니까’라는 말이 제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아는 척 했던 사람이 저였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면서 이해하는 척 메시지를 전했던 사람이 저였다”고 했다.

이어 “이게 깨달아지니까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 나왔다. 그러면서 사람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음란한 사람이었고, 인색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유명해지고 싶은 목사였다. 큰 교회에서 월급 받으면서 돈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게 진짜 내 모습이었는데 아닌 척 살았던 것을 죽음 앞에서 보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 딸을 살리려면 내가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셔야 하는데,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신다는 시편 66편 18절 말씀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기도의 양은 많은데 삶은 똑같은 것이다. 죄를 좋아하고 죄를 누리면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들으시겠는가. 그때 제 딸을 살리려면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려면 제 죄를 회개했어야 했다. 끊임없이 죄악이 토해졌고 그때 내가 가짜 목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찬양의 고백, 교회 와서 하는 고백이 우리의 삶과 같을까. 우리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라는 찬양을 많이 불렀다. 그런데 예배당을 나가면 예수보다 세상 부귀를 위해 아등바등 살지 않았나. 시편 16편 2절에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가 복이라 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예수 믿으면 복 받을 거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 안에 주인이 예수가 아니라 돈, 세상 쾌락, 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되면 하늘의 복을 못 받는다. 저희 가정을 통해서 대신 도전받고 들통나시길 바란다. 주님 앞에서 들통이 나야 형통이 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하늘의 복을 안 주신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지만, 하늘의 복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주어진다. 하나님께선 누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신다. 믿는 척 흉내 내고 그리스도인 코스프레하면 그 복을 안 주신다. 들통나셔서 그 하늘의 형통을 누리시길 바란다”고 했다.

장 목사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왔던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했다. 그는 “혈장분리술로 항체를 뽑아내기 위해 아이의 사지를 침대에 묶고 마취도 없이 길고 굵은 주삿바늘을 쇄골에서 심장까지 찔러 피를 뽑았다. 얼마나 아픈지 뇌가 아픈 애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발작하면서 자기 뺨 안쪽을 씹어서 피가 터져 나왔다. 피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간호사가 뛰어와서 마우스피스로 못 씹게 고정했다. 수건을 빨아 피를 닦아내는데 아이의 앞니가 빠진 게 보였다. 억지로 꾹 참고 있던 게 딸아이의 피투성이 얼굴과 제 손가락 위에 있는 딸아이의 앞니를 본 순간 ‘하나님!’하는 터져 나왔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서 딸아이의 삶이 생각났다. 저는 미국에서 13년간 기도하고 받았던 영주권을 버리고 하나님나라 위해서 사역하겠다고 한국에 돌아왔었다. 한국에 오면 당신을 위해 멋들어지게 사용하실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사역은 고사하고 살아야 하니까 허드렛일을 했다. 금이 가고 욕조가 다 깨진 집에서 돈을 못 내서 가스가 끊기고 겨울에 단열이 안 돼서 곰팡이가 온 방에 피었다. 그때 태어난 게 온유였다.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이렇게 데려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이 확 올라왔다. 딸아이의 치아를 꼭 쥐고 이를 악물고 이런 하나님이면 믿지 않고 욥의 아내처럼 욕하고 저주하고 대적하리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그 와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 ‘너 이래도 나 신뢰하니?’ 그 한 문장이 제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때 저는 신뢰한다는 말을 못 했다. 4대째 예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주님 믿습니다’였다. 그런데 내가 배웠던 하나님과 앞에 있는 하나님이 달랐다. 사랑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라고 노래했는데, 제 앞에 있는 하나님은 군홧발로 나를 짓누르는 원수 같은 하나님, 나를 갈기갈기 찢으려는 맹수 같은 하나님이었다. 내가 배웠던 하나님과 실제 하나님이 다르니까 신뢰한다는 대답을 못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제자 훈련하고 성경공부해서 믿는 게 믿음이 아니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하셨다.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이 말씀이 도전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처절해서 한 번 더 하나님께 대적했다. 그런데 긍휼의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은혜를 베푸셨다. ‘이제 네가 했던 말에 책임을 져야지’라는 문장이 심장에 들어왔다. 우리가 교회 나와서 얼마나 많이 고백하고 기도하면서 서원했는가. 하나님은 다 기억하시는 것이다. 내가 작사·작곡 했던 노래에도 책임지지 않은 삶이 생각났다. 그날 그 순간 제가 깨어졌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딸아이의 치아를 가슴에 안고 엎드려서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회개했던 때가 있다고“고 했다.

그는 “온유가 ‘아빠, 당신의 모습이 무슨 모습인지 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내 생명을 담보로 있잖아, 아빠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 죽음의 터널을 지나면서 결국 제가 들통났다. 만약 제가 죽음에 있었으면 못 깨달았을 것이다. 나의 아킬레스건인 딸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시련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했다.

장 목사는 “병원에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온유의 동생인 막내가 소아우울증에 걸렸다. 1월 19일에 고대 병원에 아이를 살리러 갔는데, 한 달 반 뒤에 나온 결과가 온유는 포기하고 살릴 애를 살리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급한 대로 막내를 데리고 집에 가고, 저하고 딸만 병원에 남았다. 3월 20일 새벽 1시, 그날따라 온유가 발작이 너무 심했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밤이었다. 그날 의식이 죽어 있던 애가 손을 모으더니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그렇게 많이 불렀던 아빠, 엄마가 아니라 예수님을 부르면서 깨어났다. 수많은 사람의 중보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깨어났는데 온유는 면역력 제로에 지방, 단백질이 사라지고 근육이 없어져서 나무막대기처럼 굳어버렸다. 그동안 먹지 못해 목 근육도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예수라고 부르며 깨어난 8일 후에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부르자 세마포를 벗어서 저벅저벅 걸어 나오는 것 같았다. 온유가 웃으면서 걸어 나오니까 누구보다 이 아이의 병을 잘 아는 의사들이 다 같이 벌떡 일어났다. 간호사들이 믿는 분이 아니었는데, 뼈가 굳은 아이가 저벅저벅 걸어 나오니 입을 막고 울었다. 3월 20일에 예수라며 외치며 깨어났고, 28일에 걸었고, 31일에 퇴원했다”며 기적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예수님'을 부르며 깨어나, 8일 만에 다시 걷게 된 온유
'예수님'을 부르며 깨어나, 8일 만에 다시 걷게 된 온유 ©나주글로벌교회 영상 캡처

그는 “기도하면 다 낫는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물질적으로 가난할 수 있고, 저희처럼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고, 일이 안 될 때도 많다. 제가 말하는 건 예수 믿어서 잘 되기 위해서 예수를 수단과 방법으로 쓰는 게 아니라, 예수가 계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인생에 장애, 시련, 고통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진짜 예수 만난 사람은 그렇게 기도 안 한다. 진짜 예수를 믿으면 히브리서 11장 33절~38절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을 믿으면 상황과 환경이 바뀌는 것보다 영의 눈이 먼저 바뀐다. 세상은 현상 그대로 보지만 진짜 예수를 만난 사람은 현상 너머에 있는 소망을 본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께 일상을 달라고 기도했었다. 저는 이 일을 당한 다음에 별일 없다는 말을 절대 안 쓴다. 하나님이 아침마다 일하시는데 왜 별일이 없는지 저는 알게 됐다. 제가 딸아이 앞에서 ‘온유야 아빠야! 내가 네 앞에 있잖아, 너 눈뜨고 있잖아 숨 쉬고 있잖아!’ 그렇게 소리쳤었다. 그런데 그게 꼭 하나님 같았다. ‘내가 네 앞에 있는데 너 나 안 보이니?’ 눈은 뜨고 숨은 쉬지만, 영혼이 죽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별일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상이 은혜이기 바란다. 내가 예배당에 올 수 있는 것, 일할 수 있는 것, 자녀가 하루 종일 뛰어다닐 수 있는 것.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런데 내 욕심의 끝자락에 맞춰져야 하는 내 중심의 신앙, 끝없는 욕심이 있다. 계속 줬는데 은혜를 모르면 주겠는가. 기쁘게 받아들이면 더 해주고 싶다. 은혜가 은혜를 낳듯이 그 은혜를 누리시기 바란다”며 ‘은혜로다를 찬양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장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