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룻3:11)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잠31:10)

르무엘 왕의 잠언

최근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여성의 인권이 크게 신장되어서 남녀 간의 평등이 상당히 근접했고 일부 측면에선 오히려 여성이 앞섰습니다. 이전에는 남성 전용이었던 전문 직종과 위험한 업무에도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졌고 오히려 남성보다 더 큰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최근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에 여학생의 비율이 더 높아졌고 성적도 더 좋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남자들이 여성에게 밀려 역차별을 당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기 원하면 여자도 군대에 의무 입대해야 하고 아이를 아빠도 함께 키우므로 남성도 동일한 수준의 육아휴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여성 권리를 더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과 남성을 무조건 잠재적인 가해자로 몰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하는 페미니즘 논쟁이 뜨겁게 진행 중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기독교 신앙은 안티페미니즘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일부다처제, 이혼증서, 남성전용의 제사장제도와 기업 상속, 비천한 여성 신분 등등 남성중심의 관습과 계명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부 신자들마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독선적 강압적 가부장적인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룻기는 바로 이 이슈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룻의 삶을 그녀와 관련된 잠언 말씀과 비교해 여성이 맡은 역할과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자 합니다.

기독교인이 갖고 있는 성경은 룻기가 사사시대의 이야기이므로 역사서로 분류해 사사기 다음에 위치시켰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은 잠언 다음에 오도록 편집했는데 룻이 바로 잠언의 마지막 장이 말하는 이상적인 여인의 실제 모델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두 책은 공통적으로 여인은 현숙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잠언은 1:1에서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지금 살펴보려는 31장의 표제는 르무엘 왕의 잠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르무엘 왕은 이스라엘의 왕의 계보에 없기에 누구일지 여러 설이 있습니다. 히브리 전승은 사무엘하 12:25를 근거로 르무엘을 솔로몬 왕의 별칭이라고 해석합니다.

솔로몬은 알다시피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낳은 둘째 아들입니다. 두 사람의 간음으로 잉태된 첫 아이는 죽었고 솔로몬은 밧세바가 왕비가 된 후에 낳은 아들로 그들 사이에선 실질적으로 장남입니다. 솔로몬이 태어나자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삼12:25)는 계시를 주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왕과 왕비 사이가 된 후에 태어났으므로 하나님이 솔로몬을 왕자로 인정할 뿐 아니라 당신께서 사랑하는 왕으로 세우겠다는 예언이었습니다. 여디디아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는 뜻인데 솔로몬이 이 예언에 기초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된 자”라는 뜻으로 르무엘을 별칭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잠언 31장의 첫 구절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말씀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럼 솔로몬의 어미인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장차 왕비가 될 신부를 구할 때에 반드시 따져봐야 할 조건을 가르친 셈입니다. 역사상 최고로 지혜로웠던 솔로몬도 아내만은 현숙한 여인인지 잘 알아보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사이에 이미 널리 퍼져있었던 룻의 이야기를 밧세바도 알고 있었기에 룻을 본으로 삼아 솔로몬을 가르쳤고 그래서 현숙한 여인이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누가 되었던 잠언 31장이 말하는 이상적인 여성상과 룻 사이에 닮은 점이 많습니다. 미국의 존 맥아더 목사가 저작한 스터디바이블에 최소 여덟 가지 면에서 같다고 하면서 관련 성경구절들을 열거해놓았습니다. 그 리스트에 따라서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이상적인 여인의 표상인 룻

첫째 현숙한 여인은 열과 성을 다해 가족을 섬깁니다. 룻은 이삭을 줍다가 점심시간에도 집으로 가서 나오미를 돌봤고 보아스에게서 받은 식사를 남겨서 시어미와 나눠 먹었습니다.(2:18) 잠언도 10-12, 23절에서 현숙한 여인은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으므로 남편의 사업이 핍절하지 않고 성읍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을 정도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세대에서 성공한 남편과 자식의 뒤에는 반드시 아내와 어머니의 땀과 눈물이 쌓여있기 마련입니다.

둘째 자신의 일을 기꺼이 자원합니다. 룻은 베들레헴으로 이주해 온 이튿날부터 기꺼이 이삭을 주우러 나갔습니다.(2:2) 잠언의 여인도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13절)라고 설명합니다. 구했다는 것은 스스로 그 일을 찾아 나섰다는 뜻입니다.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직분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아는 여인이라면 자기 일을 미룰 수 없을 것이며 나아가 어떻게 해야 더 가족을 잘 섬길지 찾아 나설 것입니다.

셋째 자기 일을 아주 부지런히 행합니다. 룻은 첫날부터 아침부터 와서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저녁까지 계속해서 이삭을 주웠고(2:7) 그렇게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약 두 달을 지속했습니다.(2:23) 잠언의 여인도 종일 부지런히 밭과 포도원에서 손으로 일하며 밤에도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옷을 지었고 눈이 와도 자기 집사람들을 위해 염려했고 게을리 얻은 양식은 먹지도 않습니다.(14-27절) 우리 한 세대 위의 한국 어머니들만 해도 자식을 여러 명을 낳아 키우면서도 종일 허리를 굽혀서 온갖 집안일을 하느라 대부분 꼬부랑 허리가 되었지 않습니까?

넷째 매사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그분께 감사하는 말을 합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자기가 모압 여인인데도 왜 이런 큰 은혜를 베푸는지 물었습니다. 보아스가 너의 성품과 믿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인데 여호와가 보상해주기를 원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룻은 다시 내 주여 당신께 은혜를 입기 원한다고 화답했습니다.(2:10-13) 여호와의 은혜를 절감하고 그런 믿음의 바탕에서 보아스와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잠언도 현숙한 여인은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26절)라고 설명합니다. 가족은 물론 어려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심어주는 지혜와 사랑의 말로 소망을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격려를 듣는 남편이나, 칭찬을 듣는 자식은 밖에 나가서도 사람들 앞에 담대해지며 마찬가지로 다른 이를 위로할 줄 압니다.

다섯째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룻의 성품과 믿음은 베들레헴 사람들이 인정해줄 정도였습니다. 보아스도 그 점을 확인하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왔다”(2:12)고 축복해주었습니다. 잠언의 여인도 세상의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여기고 오직 여호와만 경외하며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기에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후일에 웃는다고 합니다.(25, 30절)

여섯째 옷차림을 비롯해 육신을 정결하게 유지합니다. 추수 첫날에 보아스가 이 소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는데(2:5) 룻이 비록 이삭을 주우러 왔어도 품위 있는 매무새로 여종들 중에서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잠언의 여인도 밤중에 열심히 옷을 지었고 자신도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었습니다.(22절) 사람은 자기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검소하고 깨끗한 사람은 외모도 검소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법입니다. 남들 앞에 자기 외모를 자랑하려거나 이성을 유혹하려는 욕심이 앞서지 않는 한 굳이 화려하게 사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풍기는 인상이 자신의 사람 됨됨이를 대변합니다. 예수님을 순전히 믿는 신자에게 주님의 생명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듯이 말입니다.

일곱째 남자들 앞에서 신중하고 사려 깊은 언행을 행합니다. 룻은 추수 마지막 날 자칫 헛소문이 나지 않도록 사람들 모르게 잔치가 끝나도록 숨어 있었습니다. 보아스에게 자신의 생각을 조신하게 전했고 보아스가 배려해준 대로 새벽에 조용히 돌아갔습니다.(3:6-13) 잠언의 현숙한 여인도 남편의 마음을 얻고 남편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선만 행하며 남편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만든다고 했습니다.(10,11,23) 한마디로 남편에게 순복하며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매사에 불평과 원망이 많고 부정적이라 성과를 얻지 못하는 자는 부부사이가 좋지 않거나 투정과 시기가 많은 아내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로 남들을 축복하거나 남들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 오벳을 낳자 이웃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룻이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라고 축복했습니다.(4:14) 룻이 나오미를 평소에 사랑했기에 이웃들로부터 칭찬을 들은 것입니다. 잠언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자식들이 감사하고 남편은 칭찬하며 모든 여자들보다 뛰어나서 손의 열매가 그에게 돌아가고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28-31절) 하나님께 받은 복을 주변에 나눠주니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과 이웃을 섬기니까 반드시 그 사랑의 열매가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도덕적 정숙과는 다르다

현숙한 여인에 관한 룻기와 잠언의 공통되는 여덟 가지 덕목의 설명을 듣고 나니까 언뜻 주위에 쉽게 볼 수 있는 분이자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와 모습과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는 속담은 자식에게만 해당되며 남편과의 문제는 별개입니다. 또 부지런하지 않거나, 말이 조금 거칠거나, 옷차림이 단정치 않은 여자들도 많습니다.

반면에 룻은 이웃은 열심히 섬기면서 자신에 대해선 엄격하지 못하다는 식의 평가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 여덟 덕목 모두가 룻의 몸에 붙은 성품과 기질이 되어서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은 모습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의 선은 상대적 일시적인데다 이해타산을 쫒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에게만 우선적 집중적으로 시행되고 자기 의를 높이고 자랑하려는 교만까지 개입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 가운데 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한탄했습니다.(렘17:9) 예수님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15:19,20)라고 선언했습니다.

그에 반해 룻이 가진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언도 일반적인 삶의 지혜나 도덕적 계명을 모은 격언집이 결코 아닙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서두에 전제했습니다.(잠1:7) 그런 지식이 있어야만 그 이후에 가르칠 훈계를 제대로 지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잠언 31장도 저자가 누가 되었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룻도 현숙함이 몸에 붙을 수 있었던 이유 내지 근거는 전적으로 베들레헴으로 나오미를 따라오게 이끈 믿음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므로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죽음으로 어머니와 헤어지지 않는 한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 벌을 받을 것이라고 즉, 생명을 걸고 평생토록 어머니를 섬기겠다고 약속했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생명을 걸고서 평생토록 하는 일이 아니면 본인의 평소 자질로 몸에 들어붙지 못합니다.

당연히 남편 보아스에게도 죽음으로 헤어지지 않는 한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섬겼을 것입니다. 단순히 이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으로 온전히 존경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섬겨서 성읍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남녀 차별은 아예 없다

놀랍게도 이전에 언급했지만 성경은 보아스도 현숙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룻2:1) 여기서 유력한의 히브리어 ‘기보르’와 룻기와 잠언의 현숙한의 히브리어 ‘하일’의 뜻이 똑같습니다. 둘 다 힘이 세고 재산도 많아서 그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현숙한에는 군대가 강력하다는 뜻마저 있습니다. 살펴본 대로 고대에는 여인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부부가 된 보아스와 룻의 성품과 자질이 똑같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구약성경은 남자와 여자를 능력 자질 덕목 성품 인격 등으로 전혀 차별하지 않으며 동등하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살펴본 여덟 덕목을 아버지와 남편도 똑같이 아니 더 크고 많이 실현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남성을 우대하지도 않고 여성을 천대하지도 않습니다. 당신께서 만드신 당신의 자녀인데 어떻게 차별할 수 있겠습니다. 열 손 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고 하듯이 인간 부모도 속으로는 자기 자식을 마음으로는 다 사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쪽 성만 갖고 있는데다 그 본성이 온전하게 거룩하지 못한지라 겉으로 실천하는 사랑은 아들과 딸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완전하게 선하신 유일한 분인데다 성(性)을 만들었기에 성에서 초월합니다. 따라서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잘못을 아예 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선 여성을 더 우대해야 하는 페미니즘이나 남성의 역차별을 막아야 한다는 반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설 자리라곤 아예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지 않게끔 돕는 배필로 이브를 만드셨습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것은 서로 똑같이 돕지 않으면 부부 관계가 온전히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쪽만 더 많이 돕고 다른 쪽은 훨씬 적게 돕는다면 벌써 그 관계에는 균열이 갑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에 남자나 여자나 오직 그분의 뜻을 온전히 순종할 때에만 서로에게 온전한 돕는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자 부부끼리도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정죄하기 바빴습니다. 타락 전에는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숨기고 싶은 잘못을 하나도 범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그 후 모든 인간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가장 먼저 민감하게 감정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나 룻이라고 해서 서로에게 감정이 상하고 싸우지 않았을 리는 없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을 동일하게 힘이 세다고 표현했습니다. 룻이 여성적 특성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힘이 똑같이 강력했기에 서로를 온전히 도울 수 있었고 그 결과 인간사회에서도 유력한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페미니즘

마침 얼마 전에 신자부부와 교제를 나누는 중에 남편분이 자신의 부부관계의 좌우명은 에베소서 5:22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물론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자칫 이 말씀만 보면 신약성경도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게 취급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은데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는 말씀이 따라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둘을 합치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미심쩍다면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복종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행하기 어렵겠습니까?

부부사이에도 모든 인간의 본성대로 자기를 최고로 높이려는 알량한 자존심을 앞세우기에 둘 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눈과 귀를 막으면 남편 말을 따르는 시늉은 할 수 있습니다. 자식들이 다 커서 독립할 때까지 이혼하지 않겠다는 부부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이미 없습니다. 진심이 따르지 않으면 절대 사랑하지 못합니다. 부부사이에도 행동으로 실천하기 전에는 사랑이 아닙니다. 혹시 부자 아내의 돈이 탐나거나 자식들 눈이 있어서 사이가 좋은 것처럼 위장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사랑이 아닙니다.

최대한 양보해서 둘 다 힘들다 쳐도 성경은 남편이 먼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명합니다. 처음 결혼 제도를 만들 때부터 남편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했습니다.(창2:24) 연합한다는 것은 우열을 정해서 차별하지 말고 동등한 자격으로 서로 힘을 합치라는 것입니다. 남자가 먼저 부모를 떠나서 여자와 연합해야 하므로 남자더러 먼저 여자를 사랑한 후에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룻과 보아스의 관계에서도 보아스가 룻에게 먼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룻이 현숙한 여인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고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을 종일 같이 있었던 종들이 확인해주었습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의 근족으로 단지 도덕적 양심과 종교적 의무감으로 룻을 선대해준 것이 아닙니다. 첫날부터 율법에 정한 것 이상으로 도와준 까닭은 이런 만남이 절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더러 최대한 사랑을 베풀어주라고 붙여주셨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나오미의 여성으로서의 현숙함은 물론이고 시어머니를 끝까지 진심으로 섬기는 믿음에 큰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이 간섭하여 하나님을 닮은 긍휼한 마음을 그에게 넘치도록 채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보아스가 룻에게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룻2:12)고 축복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오미도 보아스에게서 에로스를 뛰어넘는 아가페적인 진실된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의 현숙함으로 그의 말에 복종한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부부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말씀은 단순히 사랑하고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는 주께 하듯 복종하라고 했고,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교회 즉, 성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까지도 주셨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먼저 있었고 신자의 복종이 따랐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베푼 사랑에 비하면 신자들이 그분께 복종하는 일은 너무나 쉽습니다. 아니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을 먼저 베풀어야 하고 그러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복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역으로 남성만 손해라고 여겨선 안 됩니다. 남편이 생명을 주는 사랑을 하면 아내도 생명을 주는 복종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께 죽음으로 순종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페미니즘입니다.

종말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서로 돕는 배필로 만들었고 성경은 룻과 보아스를 똑같이 힘이 세다고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사라도 열국의 아비요 열국의 어미라고 칭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출애굽의 은혜도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구약시대 내내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 역사에서 여성이 맡은 역할은 엄청났습니다. 특별히 룻을 통해 엘리멜렉의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따지면 룻이 없었다면 예수님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물론 잠언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힘이 세다고 표현한 것부터 하나님이 여성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겠다는 뜻입니다.

룻기가 운 좋게 인생이 대박으로 역전되었다는 신데렐라 같은 동화가 결코 아닙니다. 다윗의 왕비가 된 밧세바도 익히 알고 있던 실화였습니다. 실화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아니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룻은 고향 땅에 남으면 편안히 지낼 수 있었으나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셨기에 아브라함처럼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입니다. 모압 여인으로 남편과 아들이 없는 가난한 과부라고 유대인들로부터 온갖 멸시를 받더라도 더 이상 흑암의 땅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잠깐의 세속적 쾌락과 풍요에 눈이 멀고 하나님을 멀리하면 기다리는 것은 처참한 실패이지만 아무리 힘든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면 신자 인생을 그분께서 거룩하게 역전시켜 주십니다.

물론 신자부부라도 앞에서 설명한 여덟 가지 덕목들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부 각자가 먼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의 삶과 부부관계와 둘이서 함께 평생토록 가꿔나갈 가정을 이끌 힘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뿐임을 절감해야 합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주님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곧바로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 모두가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를 사랑하고 순종하기 이전에 각자가 예수님부터 강력하게 사랑하고 온전히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럼 또 자연히 주님처럼 이웃을 먼저 찾아가서 사랑으로 섬기고 기도해주며 최소한 위로의 말은 해줄 수 있습니다. 자연스레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축복을 돌려받습니다. 예수님만 주인으로 모신 거룩한 신자의 가정은 이웃 가정들까지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작금의 세대가 종말로 치닫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룻과 보아스 같은 부부들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자 청년들도 결혼하기를 거의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지 않습니까? 경제적 여건이 첫째 원인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또 그래서 룻과 오벳처럼 부모와 조부모를 주님께 하듯이 섬기는 자녀들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럼 그 해결책도 하나뿐입니다. 그런 가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만들기 전에 가정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교회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 생겨진 것입니다. 그럼 교회가 행할 첫째 일도 하나님의 페미니즘을 정확히 가르쳐서 예수님만 주인으로 모시는 온전한 가정이 많이 생기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참 사랑으로 구원 얻는 지혜를 가르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룻기는 현숙한 여인 룻과 유력한 남자 보아스가 서로 온전히 사랑하여 예수님의 선조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의 삶의 배경에서 예수님이 그들로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 되게끔 이끌었는데 역으로 따지면 그들은 자기들 삶과 인생을 통해 예수님을 알기도 전에 십자가 복음의 스토리를 써내려간 셈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자세히 알게 된 신약 신자부부들은 자신의 가정에서 더더욱 자기들만의 룻기를 아름답게 써내려 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21/11/21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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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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