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중앙장로교회 담임 이재호 목사
휴스턴중앙장로교회 담임 이재호 목사 ©미주 기독일보

미주 기독일보는 텍사스 지사 창립을 맞아 휴스턴, 오스틴, 달라스 등 텍사스 지역 주요 한인목회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첫 번째 순서로 휴스턴중앙장로교회 담임이자 현재 NCKPC 총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재호 목사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이 목사는 1988년 휴스턴중앙장로교회 담임으로 위임받은 이후 33년째 교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텍사스 지역 장기목회의 비결에 대해 좋은 장로들과 교역자로 가장 먼저 꼽았다. 또 후배 목회자들에게는 ‘헌신된 희생과 섬김’, 그리고 ‘아버지와 같이 품는 마음’ 두 가지를 당부했다. PCUSA내 한인교회들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한인 목회자들이 속한 NCKPC를 행정기관인 코커스로 승격시켜 합법적이고도 중량감 있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는 것과, 한인 2세 목회자들을 적극적으로 주류 교계에 진출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휴스턴 교계의 원로급 목회자로서 휴스턴 한인교계 연합의 방향에 대해서 제언하기도 했다.

-현재 PCUSA 내 한인교회들의 수장으로서 어깨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다. 교단 내 동성결혼 관련 이슈가 이미 지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한인교회들은 결혼정의와 관련해 교단이 언제든 바른 결정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한인교회들의 역할과 방향을 제시해달라.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PCUSA가 결혼 정의를 바꿨다기 보다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결혼을 인정하면서, 여기에 ‘두 인격체의 결합’이라는 부분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결혼의 관한 정의 부분은 개교회의 결정에 우선권을 뒀다. 그래서 교단이 개교회의 결정에 간섭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만일 지역 교회가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개교회의 결정에 따라 동성결혼식 등을 거부해서 고소당하거나 하는 경우 총회에서 오히려 지역 교회를 위해 돕게 된다. 이런 총회적 지원은 다른 교단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교단의 올바른 방향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결혼정의에 대한 논란 당시 미디어에서 PCUSA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을 많이 냈는데, 이영향으로 많은 교회들이 교단을 떠났다. 약 5% 정도의 교회가 복음주의 교단인 ECO로 옮겨갔다. 옮겨 간 교회들도 대부분 영향력이 큰 교회들이었다. PCUSA에 속한 한인교회들 또한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도가 되면서 우리 교회 또한 안수집사 20가정 정도가 당시 교회를 옮기게 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교단이 비록 전통적인 결혼관은 인정하지만 첨부했던 부분은 동성결혼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결국 이러한 부분도 바로잡을 책임이 깨어있는 한인교회들에 있다고 보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이 있다. NCKPC에서 2년 전부터 표면적으로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 하나는 NCKPC를 친목단체로 두지 않고 코커스 단체로 격상하는 것이다. 코커스가 될 경우 반드시 교단이 우리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법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다. 친목단체의 발언과 법적 단체의 발언에는 큰 차이가 있다.

또 하나의 전략은 한인교회들이 언어노회를 통해서 안건을 적극적으로 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친목단체는 안건 상정에 대한 권한이 없다. 하지만 대서양 한미노회, 시카고 한미노회 등은 총회에 동성애에 대한 발언을 계속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1세대들이 아닌 2세대들에 의한 전략인데, 최근에 NCKPC가 50주년을 맞아서 덴버에서 희년심포지엄을 열었다. 거기에 한인들은 2세대들이 주로 참석했고 일본계 미국인은 3세까지, 중국계 미국인은 5세까지도 참석한 세대모임이었다.

사실 1세대는 영어를 사용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지만 한인 2세들은 언어적인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때문에 2세들을 가능한 주류영역으로 진출하게 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고 이번 심포지엄에서 여기에 대해서도 논의하기도 했다. 이번 덴버에서 한인은 2세가 1세대보다 훨씬 많이 참석했고 1세대는 또 듣는 입장이었다.

PCUSA 한인교회들, 교단 방향성 목소리 높일 수 있는 주변 여건 만들어야
무슬림식 기도하는 선교지의 자녀들 보고 2세 교육의 중요성 절실히 느껴
후배 목회자들에게 아버지와 같이 품는 마음과 희생과 헌신 조언하고파

-이번 희년 심포지엄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면.

이번 행사는 주로 갭(gap)에 대해 포커스를 두고 진행됐다. 어떻게 하면 세대가 잘 계승될 것인가를 이야기했는데, 다양한 세대들이 모여 세대 간의 갭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리더십을 가진 입장에서는 다음 세대들을 주류교단에 소개할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심포지엄이었다. 이번 행사는 2세들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맡아서 했는데 매우 준비를 잘 했다.

-30년 이상 휴스턴 지역의 한 교회를 맡아 장기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이것에 대해 제 동역자들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신비스러운 것이 목회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안됐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안 하는 목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저는 제가 특별히 한 것이 없이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고 생각한다. 저는 목회에 있어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후배들, 특히 30-40세대는 이미 저를 롤모델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일단은 보고 배우고 있다고 저에게 이야기를 했다. 자리가 자리인만큼 여러가지 좋은 본을 보이는 역할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사실 저는 이민 2세대 목회자라고 할 수 있다. 1세대 목회자인 우리 윗 세대 어르신들은 다 떠나가셨고, 우리 세대 중에 30년 이상 목회 하신 분이 잘 없다.

그 비결이 첫 째는 우리 교인들이고 둘째는 장로님이다. 우리교회 장로님이니까 저를 받아줬다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는 오랜 목회의 비결은 정말 이것이 전부다. 물론 목회자가 참고 인내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교인들도 많이 참고 인내해줬다. 저 같은 사람을 인내해줬기 때문에 이렇게 33년을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회자가 참을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도 참을 일이 생길 때도 있는데 이는 다른 여느 목회자들도 동일한 부분이기 때문에 저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목회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뒀나.

휴스턴중앙장로교회 사역의 요소를 꼽으라면 ‘자손’, 그리고 ‘선교’ 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교회가 선교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다. 해마다 예산의 20% 이상을 선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또 ‘자손’은 자녀교육을 의미하는데 프리스쿨 사역이 활발하고, 이것이 교회가 오래됐지만 굉장히 젊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또 제 목회 철학은 ‘설교 말씀’과 ‘기도’ 이 두 가지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휴스턴 지역 목회자들의 어린 자녀들 중 상당수가 휴스턴중앙장로교회 프리스쿨에 나오고 있는데, 자녀교육 부분에 있어 개교회 차원을 넘어서는 선교적 마인드가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제가 선교를 일부러라도 많이 다니는데 태국에 선교를 갔을 때 프리스쿨 사역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교회 건축과도 시기가 겹치는 2010년대 초반이었다. 그곳을 갔더니 부모들이 대부분 도시로 가고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 의해 키워지는데, 보통 사찰로 보내서 애들을 돌보고 있었다. 3-40명씩 사찰에서 자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에 젖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빨리 이 사역을 해야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또 하나의 학교사역의 동기부여가 됐던 계기는 2014년 말레이시아 선교사대회가 있을 때 목격한 장면이다. 현지의 한인 자녀들이 말레이시아 학교에 갔다 와서 밥을 먹는데 무슬림식 기도를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말레이시아에서는 무슬림들이 많은 돈을 갖고 있기에 학교를 최고의 시설로 갖춰서 무료로 모든 과정을 마치게 하고 또 최고로 좋은 음식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교회가 학교사역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이미 특화된 프리스쿨 사역을 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비전이 있는가.

휴스턴중앙장로교회 본당
휴스턴중앙장로교회 본당 ©휴스턴중앙장로교회

이제는 초등학교까지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공립학교 커리큘럼이 무방비로 세속적인 영역에 노출돼 있어서 크리스천 커리큘럼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성별과 상관없이 아무 화장실에나 들어갈 수 있고 화장실을 성별과 다르게 찾아왔을 때 오히려 소리지르고 화내는 사람이 경고를 받는 심각한 상황이 됐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적인 정체성에 혼돈이 오게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학교교육을 반드시 잘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2세들 교육을 선교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영어권 목회자들이 우리교회에 4-5명이 되는데 모두 한 영영씩 맡아서 사역을 하고 있는 것도 교육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리스쿨 사역이 단번에 자리잡지는 않았을 텐데 지난 발전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달라.

사실 프리스쿨 사역 하나만 해도 일이 정말 많다. 예전에는 우리 사모와 함께 밤에 잔디를 깎기도 했다. 외부에 맡기니까 5천불이라고 해서 둘이서 밤에 잔디 깎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감사한 것은 이 분야에 있어 헌신적인 사역자들이 있어 왔다는 점이다. 최근에도 디렉터를 잘 세웠다. 원래 이 분야에 백인들이 경험이 많아 그동안 면접을 몇 번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사람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우리 전도사님을 디렉터로 세웠다. 한국 사역자들은 실력과 함께 열정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사역자들을 잘 세우려고 하고 있다. 우리 프리스쿨을 이용하는 지역의 교역자들에게는 할인을 되도록 많이 해주고 있다. 이것이 주변 지역교회를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 일에 헌신하고 있는 부교역자들도 있는데, 저는 또 이 분들에게도 고맙다. 좋은 동역자로 그들을 잘 만나게 해주셨다. 장로들과 부교역자들이 나에게는 보배와 같다. 우리 교회 부교역자들을 보면 나중에 다 좋은 교회로 청빙을 받아서 갔다. 하나님께서 길을 주시는 것 같다.

-성인이 된 후에서 교회에 계속 남는 2세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교회를 떠나는 2세들을 위한특별한 해결책이 있었나.

보통 한인교회에서 2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교회를 안 나오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2세 목회자들에게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목회의 초점을 많이 맞추라고 했다. 우리는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영어권은 다 같이 하나로 예배를 드린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부로 새롭게 갈 때 아이들이 바뀐 부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회를 안 다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이 5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대학부 학생들이 중등부와 같이 예배드리는 것에 불만도 표했지만 지금은 서로 하나로 융화돼서 잘 가고 있다.

-교회가 해외선교 뿐만 아니라 지역선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역선교는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가.

먼저 노인평생교육기관인 상록대학을 운영하고 있고, 홈리스 사역과 요양원 사역, 그리고 지역사회 봉사 등을 성실히 해나가려고 하고 있다. 따뜻한 텍사스 지역의 특성상 노숙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많게는 50명 가량 이 교회 주변에 와서 물이 나오는 곳을 찾거나 충전할 곳을 찾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교회 시설을 쓰라고 했다. 너무 씻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어 샤워도 하도록 해주고 뒷정리를 제가 깨끗하게 하기도 한다. 그것이 노숙자사역이 교회의 선교에 있어 중요한 영역이 됐던 이유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으로 인해 텍사스지역도 목회에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가.

코로나 중에도 우리 교회는 예배는 계속 지켰다. 성도들이 아무도 안 올 때도 당회원과 교역자들은 기존과 동일한 시간에 예배를 드렸다. 그러면서 서바이벌이냐 리바이벌이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버틸 것인가 오히려 기회를 삼아 부흥으로 가야 할 것인가는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 팬데믹 상황은 하나님이 우리를 흔들어 놓는 시간일 수도 있고, 또 고의적으로 주신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맡기신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반응이 하나님께 합당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지금 현장예배에는 성도들의 20-30% 가량이 출석하고 있다. 방역원칙대로 거리를 유지하면 현재는 그 정도가 수용 한계다. 당회에서 앞으로 50%까지 개방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에는 교역자들이 적극적으로 최대한 성도들과 전화를 통해 상담하고 기도하는 방식으로 성도들을 돌보고 있다. 팬데믹 후 상황은 나름대로 각오하고 있다. 성도들이 돌아오지 않거나 변화가 오더라도 받아들이려 한다. 팬데믹 속에 맞았던 올해 새해 때 성도들에게 “이제 광야를 지나서 이제는 요단의 벽을 넘어 가야할 때”라고 말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스가랴 4장6절 말씀을 붙들고 ‘아멘’하며 나아가고 있다.

-텍사스 지역에서 오랫동안 한 교회를 섬겨왔고, 또 교계 연합활동에도 오래도록 몸담아 왔는데 다른 미주지역과 다른 특징적인 면이 있다면 설명해 달라.

우리 시대 목회자들이 서로 하는 가벼운 농담이 있는데 한국에 나가면 서울은 목사가 자기 가방을 자기가 들고, 대구는 장로의 가방을 목사가 들고, 광주는 장로들이 목사의 가방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별로 차이라는 것은 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는 평균적인 것 같다. 자기 것은 자기가 해결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연합이 잘 됐다. 여러 고비가 있어도 할렐루야대회 등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합을 해 왔고 이는 좋은 전통이라고 본다. LA는 워낙 여러 단체들이 있어서 분열이 많고 연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틀랜타는 그 중간 정도인 것 같다. 목회자에 대한 존중이 아직까지 있는 것을 봤고, 또 외부에서 계속 한인들이 오니까 부흥할 교회는 부흥하고 있다. 제가 볼 때는 시애틀 타코마 지역이 안정적이고 목회자와 성도간에 존중이 있었다. 윗 선에서 그런 분위기를 잘 만들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휴스턴 지역은 그런 점에 있어서 제가 미안하다. 제가 35년 전에 왔을 때 저는 30대였고 1세대 어른들은 60대였다. 그 분들 사이에서 긴장이 있었다. 교인들이 이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문제로 인해 서로 모이면 늘 하나가 안되고 회의를 하면 싸우는 분위기였고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 분들이 은퇴를 하시고 휴스턴 교계의 분위기가 좋아질 기회가 있었는데 또 한 차례 어려움이 발생해서 연합이 어려워졌었다. 나중에 한 분이 저에게 말하기를 두 번째 어려울 당시 제가 선배 목회자로서 후배들을 중재하고 그럴 수도 있었는데 왜 안 했느냐고 꾸중을 했다. 그래서 제가 연합에 있어 역할을 못한 점이 있다고 본다. 그 부분에서 늘 미안한 마음이다.

-휴스턴 지역의 대표적인 선배 목회자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이민이 활성화 된 것은 40년 전이고 저는 그 때 당시의 세대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이민교회의 시작은 70-80년 전으로 본다. 물론 LA의 가장 오래된 한인교회나 하와이 이민까지 생각할 경우 100년 이전으로 보기도 한다. 뉴욕은 김남수 목사님을 비롯해 지금은 돌아가신 장영춘 목사님, 한진관 목사님 등이 1세대 목회자다. 캘리포니아는 故 임동선 목사님, 故 김계용 목사님, 故 조천일 목사님 등이 이민 1세대의 목회자로서 이민교회, 또 이민사회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주셨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나 이 분들의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신앙적으로나 영적으로 확고했기에 한인교계와 한인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셨다. 저는 그 분들이 이민초기에 어떻게 희생했는지도 알고, 한인교회가 어떻게 안정되고 부흥됐는가도 지켜봤다. 저는 굉장히 감사한 점이 있는데, 존경하는 1세대 목회자 두 분의 간증을 모두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김계용 목사님이 목회자 세미나 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 분은 평소 늘 품어주시고 주변으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는 목회자였는데, 하시는 말씀이 이민교회 목회자는 아버지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목회를 거기서 배웠다. 이민자들 모두 특별한 상황이게 이 분들의 상황을 다 이해하고 아버지처럼 용서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장영춘 목사님은 휴스턴 지역에서 한번 목회자 세미나가 열렸을 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하시는 말씀이 언젠가 허리케인이 와서 당신이 사시던 지하 단칸방에 물이 가득 들어찼는데 그것을 교인들이 보고 이후에 집을 옮기자고 했다는 것이다. 교인들은 목사가 흘리는 눈물이나 피를 보고 나서야 이 사람이 진짜 목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 분의 말씀이었다. 그 두 분들의 이야기를 제가 많이 생각할 때가 있다. 저는 그 두 분의 목회 간증을 우연치 않게 다 듣게 됐고, 희생과 사랑을 1세대 목회자들로부터 배웠다. 그것이 정말 감사하다.

제가 볼 때도 이민 1세대는 정말 고생이 많았다. 당시는 한국 음식점도 없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는 한국 음식점들이 미주에 막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이민교회 성도들을 돌보는데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먼저는 헌신과 희생과 섬김이고 두 번째는 아버지와 같은 끝없는 사랑과 인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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