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양반(兩班)이 지배하는 계급 사회

아펜젤러가 조선에 들어온 지 9년째 되던 해인 1894년(고종 20) 갑오개혁(甲午改革)1)으로 공사노비제(公私奴婢制)가 완전히 혁파됨에 따라 차별적인 신분제의 폐지와 더불어 노비제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조선 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 사회였고, 신분에 따라 생업활동의 형태가 달랐던 사회였다. 조정(朝廷)의 고위관리로서 일하는 사대부(士大夫)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민, 공예품을 만드는 공장인(工匠人), 장사를 하는 상인(商人)이 있었다. 사대부계층 위에는 왕실이 있었고, 양반과 농민 사이에는 중인(中人)계층이 있었고, 상인계층 아래에는 천민(賤民)이 있었다.

중인계층에는 의료(醫療)를 담당하는 의관(醫官)과 통역을 하는 역관(譯官), 천문(天文)을 담당하는 일관(日官), 그림을 그리는 화원(畵員) 등이 있다. 천민계층은 푸줏간의 백정(白丁)과 놀이패의 광대, 사형장의 망나니, 생존권이 없는 노비(奴婢) 등이 있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촬영한 시골의 나뭇짐 지게를 진 소년들
아펜젤러 선교사가 촬영한 시골의 나뭇짐 지게를 진 소년들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대부(士大夫)들은 양반들 중에서도 과거(科擧)를 통해 조정의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들이거나 왕실의 친척, 인척, 외척으로서 최고위 계층이었다. 양반은 과거(科擧)를 통해 문관(文官)이나 무관(武官)으로 배출된 집안의 사람으로서, 농사를 짓고 살기도 하였다. 그래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선비들 가운데 원래 양반이었던 사람이 많다. 공장인(工匠人) 계층은 대장간의 대장(冶匠), 놋그릇을 만드는 유기장(鍮器匠),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小木匠), 매듭을 만드는 매듭장,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 등 70여 종을 헤아릴 수 있다2). 노블의 아내는 이처럼 이제껏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신기한 사회구조를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신분제가 존재한다. 내가 아는 두 개의 뚜렷한 계급은 쿨리 곧 노동 계급과 양반이다. 양반들은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어떤 육체노동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양반들에게 미국에서는 노동이 고위층 사람들에게도 명예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계급이 다르면 쓰는 말도 달라서, 계급마다 다른 식으로 말을 해야 한다. 우리 집에는 돈을 많이 모은 하인이 한 명 있는데 그는 이제 양반이 됐다. 그는 물품을 사 오고 식사 시중을 들고 문지기 일도 맡아 한다. 조선인들은 자기가 맡은 일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부자가 짐이 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사람들과 당나귀들은 무거운 돈을 등에 지고 나른다. 둥근 동전에는 가운데 구멍이 나 있어 밧줄이나 끈으로 꿸 수가 있다. 금화 1달러를 사려면 3350전(錢)이 있어야 한다3).”

아펜젤러 선교사가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아펜젤러 선교사가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아펜젤러기념사업회

그 시대에 있었던 이와 같은 사회계급, 혹은 계층은 같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무수한 선(線)을 긋고 칸을 막았다. 사람들은 양반, 중인, 상인, 천민 등 네 계급으로 나누어졌고, 직업에도 높고 낮음과 연령이 많고 적음에 있어서 차별이 심했으며, 본처(本妻)의 자손과 첩(妾)의 자손을 구별하여 첩의 자손들은 벼슬을 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더욱이 남편이 죽은 후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면 그 여자의 자손에게는 벼슬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차별이 심한 중에 가장 억울한 계층의 사람들은 천민들이었다. 관청에서 부리는 종이나 집에서 부리는 종이 있었고, 광대, 무당(巫堂), 사당, 백정 등은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로, 일종의 재물과 같이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였고, 다른 집으로 보내기도 하고 부모가 자손에게 상속(相續)하기도 하였다.

나라에는 종(從)의 문서를 맡아보는 관청이 있어서, 한번 종으로 적(籍)이 오르면 대대(代代)로 종의 자리를 면하지 못하였고, 부모들 중 어느 한 편이 종의 자손이면 그 자손은 또한 종을 면하지 못하였다. 종들은 경제력, 생산력과 관련이 있기에 권세가들은 종을 다량 생산하는 주의로 종은 종끼리 결혼하게 했다. 이러한 네 계급은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에 있어서도 각양각색의 차별적인 규례가 있고, 옷을 지어 입는 것이나, 집을 짓고 사는 것이나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까지 차별을 지어 인간을 차별의 밧줄로 얽어매었다4).

상민과 천민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하여 학덕이 높을지라도 상민은 상민대로 천민은 천민대로 그 천한 신분을 면(免)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천대(賤待)하였고,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도 멸시하고, 유교(儒敎) 이외의 다른 종교도 배척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이 조선의 문화와 문명의 발전에 저해를 준 중대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계속>

[미주]
1) 조선 말기, 1894(고종 31)년 7월부터 1896(고종 33)년 2월 사이에 개화파 내각에 의해 추진된 근대적 제도 개혁 운동을 이르던 말. 개화당(開化黨)이 정권을 잡은 이후, 총 세 차례에 걸쳐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문물제도를 근대식으로 고쳤다. ‘갑오경장(甲午更張)’을 고친 이름이다.
2) Internet Daum 지식 Site. 〈사회계급의 변천〉
3) 매티 윌콕스 노블, 『노블일지 1892-1934』, (서울, 이마고, 2010), p. 39. 1892년 11월 14일 일기
4) 김세환, 배재 80년사 (서울, 배재출판사, 1965), p. 40.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아펜젤러 #조선 #김낙환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