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기 박사
송병기 박사(뉴욕장로회신학대 전 학장)

6. 이승만 박사의 예언자적 세계관

그의 (일본 군국주의 실상, 역 이종덕)의 책이 1941년 7월1일에 출간됬다. 일본은 반드시 미국을 침략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이 조선 반도를 집어 삼켰으니 그 다음은 만주를 먹고 중국을 침략하고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나서 그리고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쳐들어올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할 것이니 일본의 팽창을 막고 일본을 다시 일본 본토로 돌아가게 하려면 조선을 독립 시켜라. 그러자 미국 학자들과 정치인들은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당시 일본과 미국은 좋은 관계였고 그 넓은 태평양을 넘어 일본이 공격 하리라고는 꿈 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출간 된 지 반 년이 못되어서 1941.12.7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이 일어난다. 리승만의 책 은 단숨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미국의 학자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 했다. 리승만의 혜안에 미국인들은 놀랐고 조선인 리승만은 조선인 리승만이 아니라 예언가 정치인 리승만박사였다.수 십 년에 걸쳐 일본의 침략을 예언한 인물을 못 알아보았구나..리승만을 하나님이 그 시대에 세운 선지자로 알고 존경했다.

일본에 당시 600만의 훈련된 군인이 있고 천왕에게 맹종하는 것을 전통으로 전 세계를 일본화하기 위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그 책에서 예언했다. 집필하면서도 일본이 미국을 침략하는 것이 먼저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급히 써야 했다. 타이프 치는데 도운 프렌체스카가 너무 힘들어 어깨가 아파서 고통스러워 할 때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포토맥 강가에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아리랑이 었다. 그는 가사를 지어서 2절을 불렀는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오 다- 가다가 만난 님이지만 살아서나 죽어서나 못 잊겠네”라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지금 아리랑은 캐나다와 미국 Bible Belt 지역에 찬송가로 채택되어 부른다. (아리랑 - ''Christ, You Are the Fullness' 제목으로 불려지고 있다. 미국 찬송가 229장 : Christ, You Are the Fullness. (주여, 당신은 충만하십니다) (아리랑곡) 그 후 태평양 전쟁에서 리승만의 절친 더글라스 맥아더가 지휘하는 미군은 일본군을 몰아냈고 일본은 패망했다. 우리나라는 큰 피흘리는 전쟁 없이 독립을 얻었다.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이되었다.

한국동란 휴전 직후 미국의 국빈으로 방문하여 사상 유래없는 퍼레이드를 받고 1954년 7월28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할 때 국회의사당에 입추의 여지없이 몰려든 인파에게 40분간 연설하면서 33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1954년 8월2일 뉴욕에서 영웅환영식을 갖는다. 월돌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시작하여 뉴욕 시청까지 100만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퍼레이드를 가졌다. 그를 전쟁 광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연설을 마치고 비공식 석상에서 우리나라 군대가 강하다고 하나 우리나라 만으로는 휘발류를 3일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미국의 위대한 어머니들이 있었고 그들의 아들들을 잃으면서도 우리를 도와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하고 그런 뜨거운 기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길 수 없었다고 해서 우뢰와 같은 갈채를 받았다. 연설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한말이 “나는 우리나라를 지켜준 미국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딸들을 아낌없이 죽음의 한국전선에 보내준 미국의 어머니들에게 특히 감사한다” My special thanks to all American mothers. 이때 모든 청중들이 울었다.

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후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하기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원조를 끌어와 경제 개발과 잉여농산물 원조로 밀가루, 우유가루, 등 많은 식량으로 기근과 토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중국에서 활동하던 조선족 부대를 앞세운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3년 간의 혈전 끝에 휴전협정이 맺어지려 할 때 리승만은 휴전을 반대했고 북진통일을 외쳤다. 미군도 소모전에 지쳐갔고 미국 내 여론도 휴전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을 때 유독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승만이 내놓은 휴전의 조건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다. 1953년 10월 1일 조인하고 1954년 11월 18일 발효됬다. 휴전을 무조건 하자는 것에 반대하여 미국 앞에 요구한 것은 너무 어의가 없었다. 미국이 들어주지 않자 그는 반공포로를 석방할 것을 계획을 세운다. 거제도와 각지에 흩어져 수감되있던 반공 포로를 맥아더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석방시킨 사건을 듣고 맥아더는 친구 리승만을 “오~ 나의 십자가”라고 불렀다.

당시 이승만이 미국에 내놓은 휴전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경제 지원해달라.

당시 한국의 1년 수출액의 34배 되는 돈을 받았다. 그래서 전쟁 후 잿더미 위에서 굶어죽지 않고 다시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다.

2. In and around Korea(한국 안과 주변)에 미군을 주둔 시킨다고 약속해라.

그래서 오늘까지 미군이 이 나라를 지켜준다. 한반도에 미군 주둔은 북한 인민군 복무 기간이 10년에 비해 내 아들 군 복무기간 1년 6개월! 이를 가능케 했고 한국 경제발전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만약 한국 군대 의무복무 기간이 5년이라면 이 나라 경제는 결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3. “너희 미국이 침략을 받으면 그 때는 우리가 가서 싸워주겠다”

(태평양 건너갈 배 한 척도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우리나라에서 미국을 돕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이다. 미국이 외국에게 당한 최초이자 마지막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 약속을 이행해 주면 휴전할 때 내가 큰 입 다물고 있겠다”며 우리나라에 참전해서 4만 여명이 죽은 미군과 10여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미국에게 더 내놓으라고 큰소리친 이 나라의 아버지였다.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이승만 그 날강도에게 또 당했어! 도대체 한국이 무슨 힘이 있다고 미국에 전쟁이 나면 한국이 도와줄 테니 한반도에 전쟁 나면 한국 병력의 9배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내야 하는 거야? ​또 우리 청년들을 북한이 내려오는 길목에 박아 놓고 공격 받으면 미국이 자동 참전해야 된다니. 그리고 한국이 제자리 잡을 때까지 한국 국방비를 미국이 전액 대라는데 아무리 스탈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이런 조약에 사인을 한 거지”라고 했다.
이러한 미국을 끌어들인 리승만의 혜안을 보면 우리의 힘으로 남하하는 소련을 막을 수 없고 우리의 힘으로 못 지키는 우리나라를 지켜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음을 확신했다고 본다.

만일 미군이 없었으면, 김구가 김원봉이 지휘하는 300여명(제일 많았을 때) 광복군 이끌고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수 백 만 일본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 당시 일본군의 규모는 600만 이상이 되었다. 일본의 병력은 중국 본토에 관동군으로 약 125만, 만주국군 약 40만, 일본 본토에 200만 이상이 되며 필리핀, 버마, 베트남, 태평양에 주둔해 있었고 어마어마한 일본군 항공모함 십 여 척과 항공기, 탱크, 대포 등으로 무장해 있었다.

1940년에 창설된 우리 독립을 위한 광복군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군과 단 한차례의 전면전의 전투도 치르지 못했다.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 군대에 예속되어 국민당에서 군복도 주고 국민당에서 총도 주고 국민당 군대가 훈련도 시켜주고 밥 먹여주고 월급 주고 지휘권은 당연히 장개석에게 있었고 독자적인 작전권한은 없었다.

만일 미군이 없었으면, 그 큰 나라 소련과 그 큰 중국을 등에 없고 소련제 탱크와 공산주의로 물든 조선족 중공군 앞세워 김일성과 공산당의 선전포고 없이 기습남침으로 쳐들어 온 6.25라는 그 피 눈물 나는 전쟁을 막아내고 이만한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이룰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미군이 없었으면, 북한군이 10년 넘게 군 생활을 할 때, 대한민국에서 전에는 복무기간이 24-36개월로 있었고 지금은 18개월로 병역을 마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미군 없었으면, 북한의 김일성 왕조 일가 치하에서 굶어 죽었든지 살아도 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이 부끄러운 역사의 부끄러운 현실이 우리 민족의 사실이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우리는 북한의 김가 왕조 치하에서 위대하신 수령 찬양하다 밥 굶어 죽었든지 영양실조로 빌빌거리며 살고 있을 것 같다. 현대자동차, 삼성 스마트 폰 등은 꿈속에 나타날 수나 있었을까? 뭐 교회 다녀? 예수 믿어? 공개 총살당했을 것이다. 선지자 같은 이승만 대통령 덕에 이만큼 살고 있는 줄 알고 감사해야 한다.

*본 칼럼은 송병기 박사가 지난 8월 18일 열린 한국교회정론 제6차 포럼에서 '세기의 대통령 한국의 이승만 그리고 그의 신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발제문입니다. 본지는 송 박사의 허락을 받고 해당 발제문을 여러 차례 칼럼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송병기 박사(전 뉴욕장로회신학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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