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감리교가 동성혼을 공식적으로 허용함에 따라 감리교는 영국에서 동성혼을 인정한 가장 큰 교파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 신문은 지난달 30일 버밍햄에서 열린 영국 감리교 총회에서 동성혼 허용 여부를 묻는 투표가 진행됐고, 동성혼 찬성표가 254표, 반대표가 46표로 집계돼 압도적인 차이로 동성혼이 인정됐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올 가을 영국 감리교 채플에서 첫 번째 동성혼이 열릴 예정이다.

특히 이날 감리교 총회에서는 결혼을 '두 사람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신체, 마음, 영혼의 평생의 결합'으로 재정의했다. 결혼을 정의함에 있어 생물학적인 성별을 제외시킨 것이다.

얼마 전 감리교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여성 총장으로 선출된 소니아 힉스 목사는 동성혼이 통과된 이 날을 "우리교회의 역사적인 날"이라며 서로의 차이점을 존중해줄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지난 2007년에는 영국 고용재판소가 영국 성공회가 동성애자를 특정한 성적 지향을 근거로 고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차별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결, 소송을 제기한 동성애자에게 한화 약 8,500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한 사건이 영국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는 2010년에 전면 개정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교회에 적용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 판결의 근거가 된 영국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자 채용과 관련해 종교단체에 대해서 만큼은 예외 조항을 규정하고 있었지만 정작 실제 재판에서 고용재판소는 '예외 조항을 적용하려면 심사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며 교회에 예외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장로교는 2015년 결혼을 '두 사람 사이의 계약'으로 간소화하여 재정의하면서 동성혼을 인정했다. 미국 성공회는 2018년 동성 커플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일대에서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교단법을 통과시켰으며, 미국 복음주의루터교회와 미국 그리스도연합교회도 동성혼을 인정했다.

소위 다양성과 세련됨으로 포장한 '시대정신'에 교회의 '성경정신'이 잠식돼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성혼만을 인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시대의 요구와 흐름에 따라 동성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정신'으로 위장한 궤변일 뿐이다.

우선 동성혼을 포함한 다양항 성적지향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는 전혀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시대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신자세나 태도'이다. 즉 교회 내 동성혼이 그 타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교회 내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교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이에 동의한다는 자료나 증거는 없다.

둘째, 동성혼을 금하는 성경 교리를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교회 내에서 동성혼을 강제하는 법안은 그보다 더 상위법인 자연법에서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교회는 특히 성경이라는 특정한 교리를 담은 역사적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데 동의한 사람들이 모인 독립적인 집합체로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동성혼을 강요하는 실정법의 한 종류인 특별법의 적용으로부터 자유롭다.

교회 내 동성혼 문제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특정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사회 모든 영역에 침투시켜 교리적 순결성을 훼손시키고자 하는 특정 집단의 압력에 교회가 스스로 순응하고 굴복한다는 점이다. 미셸 푸코가 언급한 '유순한 신체' 개념을 오늘날 서구 교회들이 그대로 받아들여 시대정신으로 포장한 인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자신들을 자발적으로 맞춤으로써 '유순한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진짜 문제다.

역설적이게도 서구 교회들이 차례로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국가나 법률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다. 시대와 장소에 상관없이 불변하는 진리를 져버리고, 인본주의적 사회 압력에 스스로 성문을 열어젖힌 채 함락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서구 교회가 직면한 냉혹한 현실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평등법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평등법(안)은 특히 동성애자들에 대한 고용차별금지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데 만약 법안이 통과된다면 교회 등의 종교기관이 특정 교리를 근거로 동성애자 고용을 거부한다면 평등법에 위배될 수 있다.
교회가 이 법의 독소성과 위험성을 빠르게 인지해서 국가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 동안 한국교회가 어렵게 지켜온 신앙적 전통과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는 한 순간에 재가 되버릴 수 있다. 평등법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꽃단장한 법 앞에서 교회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있다'는 하이데거의 의미심장한 말을 진지하게 곱씹어보아야 할 것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