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준 목사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우리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원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은혜를 의지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복음의 원리는, 어려움 뒤에 놀라운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28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다.

우리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면 이삭처럼 대접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1)먼저 핍박을 예상해야 된다. 이삭이 자라자 그의 이복형제인 이스마엘에게 조롱을 받는다. “그러나 그때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29절).

왜 이스마엘 자손이 이삭의 자손을 핍박할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종교에 담을 쌓은 사람들보다 종교에 열심인 사람들에게 더 위협적이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신 앞에 인정을 받고, 신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졸이고 늘 초조해한다. 그런데 복음은 신 앞에 서기 위한 그들의 모든 열심과 선행은 다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이삭의 후손을 비웃고 복음에 대해 적대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는 핍박도 받지만, 또한 2) 유업을 받는다. 축복을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30절). 이삭이 이스마엘에게 조롱을 받았지만 결국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된 것은 이삭이었다.

복음은 자기 힘으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하갈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들을 위한 것이다. 자기 힘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하갈들은 하나님 없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혜의 복음을 거절한다. 주님 앞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사라처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능력으로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자격과 능력과 조건이 되지 못하는 자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또한, 사라는 실패한 사람들의 상징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여성의 가치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무익한 존재라고 평가받았다. 오늘날에도 사라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 존재가치가 직업과 돈과 권력과 평판을 통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고, 원하는 대학과 회사, 좋은 집안이 되지 못하면 실패자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복음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열매를 맺고 부요해 질 수 있다고 약속한다. 복음을 믿고 복음을 따라 살아가면 사라에게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온 인류가 복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에도 은혜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이다.

강정훈 목사님이 쓴 “내게 왜 이러세요?”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에 대해 욥기를 통해 묵상하며 정리한 글을 나누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리스의 비극작가 유리피데스(Eupides)의 희곡 “엘렉트라”에는 고대 국가 미케네의 아가멤논 왕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왕비는 남매를 낳고 정부와 눈이 맞아 남편을 살해한다. 공주 엘렉트라는 동생을 외국으로 피신시키고 어머니의 정부 밑에서 모진 박해를 받으며 버틴다. 괴롭고 힘들 때, 아버지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나올 때 공주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나간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엘렉트라 공주는 흐르는 눈물을 참고 악착같이 희망을 품는다. 결국, 공주는 아버지의 나라를 정부의 손에서 빼앗아 남동생 왕자에게 넘겨준다.

어제 흘렸던 눈물은 과거의 눈물이다. 그 슬픈 고통의 기억에 오늘의 눈물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사는게 힘들었어도, 앞으로 힘든 일이 기다려도, 살아 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삶은 남은 인생의 최고의 날을 위한 준비에 불과한 것이다.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말처럼, “아직도 가장 좋은 것은 남아있다”. 내 인생의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고난을 통해 우리를 빚으시고, 고난 뒤에 영광을 주실 하나님을 기대한다면, 오늘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우리는 다시 꿈꿀 수 있고 다시 찬송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좋은 날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길 바란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최철준 #나주글로벌교회 #복음의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