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저를 고치기 위해서 질문합니다. 형벌의 본질과 목적과 종류를 간략히 요약해서 알려주십시오.

[답변]

죄와 벌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인간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원칙을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끝까지 완악하게 거부하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엄청나게 고통스런 형벌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를 즐기며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 상태로 두시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8,19)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롬1:28) 하십니다.

불신자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그 불의 추악 탐욕 악의대로 행동하게 둠으로써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등의 폐해가 스스로에게 그대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요컨대 불신자들은 스스로 죄의 삯인 심판을 자초한 것으로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던 이 땅의 상태가 죽은 후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신자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에 따라 택하심을 받아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바로 영생을 얻고 더 이상 심판을 받지 아니합니다. 진정으로 거듭나서 신자가 되었다면 하나님은 끝까지 그 믿음을 지켜주시고 결코 구원을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어서”(빌1:6)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간섭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난 후에는 성령님이 계속 내주해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요컨대 신자의 구원은 인간 쪽의 자격 조건 공로와는 전혀 무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도무지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반드시 받아야 할 진노의 심판을 면제 받았는데 이를 자비(mercy)라고 말합니다. 또 도무지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전혀 받을 수 없던 영생을 받았는데 이를 은혜(grace)라고 말합니다.

신자가 된 후에는 심판은 없으나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의 형벌은 따릅니다. 그러나 구원을 주실 때와 마찬가지로 그 죄의 종류와 세기에 따라 일일이 비례하여서 벌을 내리시지는 않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실현하신 죄에 대한 자비와 은혜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질과 양에 따라 분명한 벌이 따르면 율법주의적인 두려운 하나님이 됩니다. 신자와의 인격적이고도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이래로 신자로부터 자발적이고도 진심어린 찬양과 경배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신자가 죄를 지어도 바로바로 벌을 주시지 않고 스스로 깨달아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주님께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용서해주시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심지어 신자가 회개치 않고 무심하게 지나가면 성령님이 대신 간구해주십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신자가 죄를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고 나면 뭔가 영적으로 눌리는 기분이 드는 까닭입니다.

신자에게 주시는 형벌의 두 종류

신자가 받을 하나님의 형벌에 대해 가장 먼저 기억할 사항은 그 죄의 종류에 따라 형벌의 종류가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도 구체적으로 구분해 설명한 적이 없는데 굳이 나누자면 징계와 연단 둘입니다. 그것을 주시는 목적은 당연히 신자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거룩하게 자라게 하려는 것 하나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12:6)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며(8절),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려고(10절) 징계를 주십니다.

징계는 헬라어 파이듀오인데 책벌로 교육하고 훈련시킨다는 뜻입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곧바로 일일이 징계가 따르지는 않지만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을 때에 실제적으로 생기는 부정적인 일들이 징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이므로 아무래도 조금 비상한 모습을 띄기에 이번 불행은 뭔가 일상적인 것과 다르며 특별한 원인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신자가 만약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그분의 뜻을 알고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평상시에 말씀 묵상과 기도를 성실히 하고 있다면, 그런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겠지만, 어떤 죄와 연결되는 어떤 성격의 징계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선 신자더러 죄를 온전히 고치게 하고 또 당신께서 앞으로 신자를 이끌어 가실 계획을 최소한 그 방향을 알게 해주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자에게 꼭 그 사람에게 합당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징계하신다는 뜻입니다.

만약 말씀과 기도에 게을리 하여 영적으로 둔감하면 자신이 징계를 받았는지도 모르고 넘어갈 때도 많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또 기다려 주시다가 당신의 때와 방식에 따라서 또 다른 징계를 내리게 됩니다. 신자가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단이라고 번역된 원어는 시험과 재판(롬5:4, 벧전1:7), 활기차게 운동하다, 상징적으로 연단하다(히12:11), 태우다, 제련하다(계3:18)는 뜻으로 나뉩니다. 쉽게 말해서 죄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이 신자에게 생기는 부정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믿음을 성숙시키려고 능동적으로 테스트 해보거나 어려운 일을 주시는 경우와, 세상에서 받는 핍박과 사탄으로부터 오는 유혹을 하나님이 다 아시고도 허락하는 경우로 나뉩니다. 어느 경우가 되었던 반드시 신자의 인내가, 거기에는 죄 때문에 받은 징계를 감수하는 것도 포함, 따라야만 합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4)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

연단이 사실상은 죄와 무관한데도 징계와 같이 분류한 것은 현실적으로 신자에게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는 그 당시로선 그것이 징계인지 연단인지 쉽게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진실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는 자라야만 징계와 연단 중에 어느 것인지 분별이 가능합니다.

죄를 고치려고 형벌의 종류를 알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조금 잘못된 것입니다. 자칫 신앙이 형벌을 면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특정한 상을 받으려고 혹은 벌을 받지 않으려고 신자가 특정한 행동을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만의 자비와 은혜로만 신자를 대하십니다. 그분은 심지어 신자의 믿음 순종 헌신과도 상관없이 범사를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만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죄는 고치려 하거나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쉽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라는 것에 충성하면 자연히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게 됩니다. 악은 오직 선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 같은 사도는 자신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실현하는 데만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으며 그러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기에 죄를 지을 틈이 없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형벌은 전혀 신경 쓰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실 영광스런 열매만 소망하면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2021/5/18/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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