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당국이 지난달 30일 75세 이상 고령층에게 접종 중인 화이자 백신에 대한 추가 예약을 일시 중단하라고 일선 접종 기관에 지시를 내리면서 백신 고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홍남기 국무총리 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일각에서 제기되는 ‘화이자 백신 고갈’ 우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불안감 조성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방역 당국이 화이자 백신 2차 접종을 위해 신규 1차 접종 추가 예약을 중단한 것은 백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다. 백신 부족이 아니고는 이미 부산·세종·전남 등이 4월 30일부로 접종 예약을 끝내고, 서울은 8일까지만 접종 예약을 받도록 한 것을 다른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중단에 이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거의 소진돼가고 있는 상태에서 추가 도입도 확실하지 않아 이러다가 5월부터 백신 고갈사태가 한꺼번에 닥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정부가 1차 접종률을 늘리기 위해 아랫돌을 빼서 윗돌 괴듯 2차 분량을 끌어쓰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결국 백신을 선구매하지 못한 게 일파만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국내에 들여온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100만 명분, 화이자 106만 명분이 전부다. 전문가들은 방역 당국이 이것을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접종하다가 따가운 여론을 의식해 4월 들어 300만명 목표 달성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결국 며칠 만에 바닥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미 예견했던 바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1차 접종에 집중하는 시기와 2차 접종이 많아지는 때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화이자 백신이 바닥났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홍 총리대행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백신 접종은 당초 방역 당국이 계획하고 구상한 범주와 일정에 준거해 이뤄지고 있다”면서 지난달 26일 발표한 화이자 백신 4000만회분 추가계약 사실을 상기시켰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국민들은 앞으로 백신이 떨어질까봐 불안해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전혀 없고, 오히려 일부 언론이 가짜뉴스로 현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고 해야 맞다. 그러나 방역 당국이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 예약을 중단한 것을 단순히 접종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일시적인 문제로 다 덮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정부의 말대로 지금 백신 물량이 충분하고 앞으로 추가 도입도 원활하게 이뤄진다면야 무슨 걱정을 하겠는가.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무조건 밝은 전망을 기대할만큼 희망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지금 전 세계적인 백신 품귀현상은 아무리 백신 제조사들과 구체적인 계약을 맺고 도입 일정까지 마쳤다고 해도 백신이 국내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라고 할 만큼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게다가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작용 의심 사례 등 일부 백신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미국조차 정책적으로 백신 자국 우선주의로 기울고 있는 것도 우리에겐 부정적인 요소다.

백신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근거가 없다는 정부의 설명이 설득력이 없다고 보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화이자 백신이 계획대로 차질없이 도입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와중에 여권 일각에서 뜬금없이 러시아 백신 도입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무슨 말로 설명할 건가.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산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안전성만 검증된다면 러시아산 백신이라고 제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 혼자 이런 주장을 했다면 그가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서 다분히 정치적인 화두를 던진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뒤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러시아산 백신 ‘스푸트니크V’의 도입 가능성에 대해 점검을 지시하고, 이어 지난주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까지 러시아산 백신 도입 문제가 구체적으로 검토된 사실이 21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백신 문제가 정부의 말과는 다르게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홍 총리대행은 온 국민이 다 맞고도 남을 정도의 백신이 곧 들어올 테니 불안해하지 말라,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말라 하고, 대통령은 난데없이 러시아 백신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니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가. 도대체 국민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홍 총리대행은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600명대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데 대해 “더 긴장되고 비상한 각오로 5월을 맞이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가족 또는 지인 간의 접촉 자제를 또 다시 요청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발생한 이래 정부는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에도, 추석에도 똑같이 터널의 끝이 보인다며 국민에게 “조금만 더” 희생을 요구했다.

그러나 방역은 정부가 국민에게 반복적이고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해서는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정부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가정의 달’ 5월에 들어서자마자 7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 중단사태를 초래한 것은 그 어떤 이유를 대도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정부는 매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하지만 국민, 특히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효도 선물인 백신을 제때에 못 드려 차질이 생겼다면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기 전에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 하는 게 도리다. 그것이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의 기본자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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