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앤코글로벌한의원 이태훈 대표원장

인생의 발목지뢰, 중풍

인간이 만든 무기 중에 매우 잔인한 것 중 하나가 지뢰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희생당하기 십상이다. 중풍은 숨어 있는 지뢰와 같다. 중풍은 지뢰밭 안에 들어가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에 따라 발병률과 진행 상태가 완전히 달라진다.

초기에 나온 지뢰는 살상이 주목적이었기에 폭발력이 강했다. 전투 중에 지뢰를 밟은 전우가 폭사하면 마음은 아프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시신을 둔 채 떠나야 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심리적 충격은 받지만 육체적으로는 전투력을 상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발목지뢰라고 한다. 발목지뢰는 밟은 이의 다리만 희생시킨다. 쓰러진 전우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동료들은 고민한다. 그를 두고 가느냐, 남아서 곁을 지키느냐, 아니면 그를 업고 후퇴할 것인가.... 뭐를 하든 그 부대의 전투력은 상실된다.

인생의 발목지뢰가 바로 중풍이다.

모든 병은 발생하려면 어느 정도의 준비 기간을 갖는다. 이를 '잠복 기간'이라고도 한다. 잠복하고 있는 병은 검사를 하면 발견될 수 있는데, 때로는 검사의 한계 뒤에 숨어 정상 조직을 잠식해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발병을 한다.

위장병을 예로 들어보자. 급·만성 또는 신경성 소화불량이 진행되는 것은 잠복기이다. 이를 잡아내지 못하면 위염이 생기고, 위염이 심해져 위 점막에 깊은 염증이 생기면 위궤양이라고 한다. 발병을 한 것이다. 이러한 염증이 위장 근육까지 뚫어 혈관이 터지면 위출혈이라 하고, 더 심해지면 복막염이나 패혈증으로 나아간다.

위장병에 대한 이러한 상황 분석은 내시경과 조직 검사라는 과학이 빚어낸 걸출한 조합 덕분에 가능해졌다. 서서히 진행되는 위장병도 이러할진대, 급격히 진행되는 중풍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중풍이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필자에게는 술주정 같은 헛소리로 들린다. 중풍도 위장병처럼 잠복기와 진행기가 있다. 문제는 그 전조를 잡아내지 못하거나 잡아내지 않고 있다는 것뿐이다.

중풍에는 두통, 현기증, 수면 무호흡, 마비감, 기억력 저하, 복시(複視, 눈 근육의 마비로 사물이 둘 이상으로 보이는 것) 등 앞선 증상들이 많지만, 환자마다 조합이 다르기에 중풍 전조의 확진은 어려워 보인다. 20여 년 전 연구에 몰두해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혈관이 좁아지면 처음엔 혈액의 흐름이 빨라지지만 결국은 콜레스테롤과 혈전(血栓, 혈관 안에서 혈액이 엉겨서 굳은 덩어리) 등으로 막혀 속도가 줄어든다. 결과는 터지거나 막히거나 둘 중 하나다. 혈액 흐름의 병목현상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혈관의 병목구간과 그곳을 지나는 혈액의 속도 변화에 답이 있다....

중풍 발생 경로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다시 검토를 해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혈관에 병목구간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곳을 지나가는 혈액량과 속도의 변화를 측정해본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란 생각이 의사로서의 치료관(觀)을 바꾸었다. 병은 원인과 유발 인자가 만나야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뉴스에서 슬픈 소식이 흘러나온다. 가장이 도시가스의 밸브를 열어놓고 불을 붙여 집 안에 있던 가족이 모두 사망했다는 것이다. 생활고 때문이란다. 생계 문제는 모두가 겪고 있는데, 버티며 사는 이가 있고 비극을 맞는 이가 있다.

가스가 차 있는 실내에서 라이터를 켜면 폭발한다. 의사 입장에서 실내를 가득 채운 가스는 사고의 원인에 해당한다. 가장이 켠 라이터의 불은 사고 유발 인자인 '유인'이다. 아무 데서나 라이터를 켠다고 폭발하지 않는다. 인화물질이 폭발할 만큼의 농도로 모여 있는 곳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사람 몸도 그러하다. 병의 원인이 발병 직전까지 쌓인 상태, 즉 혈관이 막히기 바로 직전인 임계 상태에서 급체(急滯) 하거나 급격한 온도 변화, 과로, 분노, 불안, 불면, 열성약물(熱性藥物, 열을 내는 특징이 있는 약물), 튀긴 인스턴트식품 등의 유발 인자를 만나면 질병으로 폭발한다.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사람과 그 아래로 떨어진 사람은 한 발자국 차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한 발자국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결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살고 죽는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자살을 하려고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사람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으면 멀쩡해지는 경우가 많다. 밑으로 떨어진 사람은 수많은 의료진이 달라붙어 살려놓아도 그의 신체 어딘가는 망가져 있을 수밖에 없다. 저세상으로 갈 확률도, 떨어지지 않은 이보다 훨씬 높아진다.

그러한 그를 떨어지기 전처럼 만든다면 대박이다. 중풍 환자들이 원하는 치료의 목표치다. 차이는 발자국 하나 더 내디딘 것뿐인데.... 환자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통뇌법 혁명: 중풍 비염 꼭 걸려야 하나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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