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한경직 목사가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후 후학들이 63빌딩에서 수상 축하 연회를 마련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한 말씀 해달라는 간청에 단상에 선 한경직 목사는 “나는 일제 때 신차참배를 한 죄인입니다.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조금은 들뜬 분위기 속에서 마련된 자리였지만 한 목사의 그 말 한마디로 모두가 숙연해졌다.

한경직 목사는 왜 이런 뜻 깊은 시간에 자신의 폐부 깊숙이 간직하던 과거의 부끄러운 행적을 스스로 끄집어냈을까. 이미 하나님 앞에 열두 번도 더 눈물로 회개했을 죄책 고백을 오랜 세월이 흘러 망각했거나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굳이 드러내 밝혀야 했을까.

‘회개’는 하나님께 드리는 죄책 고백이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사람은 그 죄에서 떠나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회개를 통해 죄로부터 자유로워져도 인간관계에서 져야할 책임까지 벗을 순 없다. 그래서 ‘사과’와 ‘용서’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인들을 흔히 독설가라고 한다. 독설이란 혀에 독이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취재하던 기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민주당 차원의 대응 방안을 묻자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라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러고 나서 그 기자를 노려보며 “나쁜 놈의 자식 같으니라고…”라고 했다. 아무리 여당 대표라도 기자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욕설을 할 권리는 없다.

이해찬 대표는 세종시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의 시대’ 주제의 토크콘서트에서 “서울은 천박한 도시”라는 투로 말해 서울시민의 공분을 샀다. 이 대표는 그 전에는 부산에 올 때마다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해 소위 ‘부초서천’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이는 물론 여당이 느닷없이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옮기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이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한강변의 평 당 얼마짜리 아파트의 단가가 현 정부들어 얼마나 급등했는지, 이로 인한 무주택 서민들의 절망과 박탈감이 어떤지 여당 대표로서 조금이라도 그 책임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면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낼 표현은 아니었다고 본다.

현 정부 들어 무려 22번이나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하다 할 정도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적 혼란과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데도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부동산 급등의 책임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전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 연설에서 “앞으로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벌 사람은 벌만큼 다 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는데 대통령이 이런 절박함에 대한 현실인식이 뒤떨어진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가하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사위에서 아들의 군 휴가 규정 위반 의혹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소설 쓰시네”라며 조롱섞인 답변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이 집권 3년동안 자신들의 과오나 잘못,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입만 열면 적폐세력 때문이요, 이래서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뇔 뿐이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는 참여연대 경실련 등 진보 색깔의 시민 단체들마저 정부 여당의 오만과 독선에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여당이 총선에서 180석에 이르는 압승을 거두었을 때 그들 스스로도 국민이 두렵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 여당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 내가 가는 길이 진리이고 나만 옳다는 독선에 빠져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야당을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무력화시키고 실로 위험한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오만과 독선은 오래 갈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런 독초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 온 밭을 망치게 된다는 것을 아는 선순환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따라서 돌이키지 않으면 국민의 발등을 찧고 제 발등도 찧게 될 것이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실수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옛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천냥 빚을 대신 갚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진솔한 사과로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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