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다문화센터 대표, 대림중국교포교회 이선규 목사
대림다문화센터 대표, 대림중국교포교회 이선규 목사

현재는 어느 때 보다 종교 개혁, 나아가 교회 개혁의 목소리가 고조 되고 있다.

20세기를 가리켜 문명의 시대라 말하지만 이와는 달리 문명의 쇠퇴 정신적 암흑기라는 지적의 소리가 더 실감나게 들리는 현실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도 옛말이 되어 지금은 누가 땅을 사고 집을 샀는지조차 관심이 없는 시대이다.

그저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내게 손해와 간섭이 되는 일들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물, 불, 안 가리고 덤비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져있다.

죄와 불의에 대한 무감각 중에는 이미 치료의 정도를 넘어서는 느낌이 든다.

이런 세대 속에 그리스도인에게 개혁의 외침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도 되지만 예수님 당시의 교회 상황을 통하여 개혁의 의미를 새기고자 한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시니 그 곳에선 소, 양, 비둘기를 파는 장사가 한창이었고 돈 바꾸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성행하고 있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분노를 발하시며 성전 안에서의 장사치를 내 쫒고 제물 매 매 자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그들은 세속적 이익을 그들의 신앙의 목적과 방법으로 삼아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예식만 갖추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의 공생애의 첫 번째로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 하셨다. 당시 성전의 지도자 들은 성전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상업화 되었으며 세속주의에 빠져 있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과감하게 성전의 상인들과 환전상을 내어 쫒으신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교회 지도자들과 제자들 까지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예수님의 개혁 운동은 바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또한 성전은 찬양하는 곳이며 구원이 선포되는 곳임을 천명하신 것이다. 당시 유대교는 이러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앞서 말한 대로 상업주의가 만연해 버렸고, 유월절은 상업상의 대목 경기로 바꾸어 졌다.

그렇다고 성전 안에 들어온 상업상들을 막을 장사는 없었다.

교회는 속성은 무엇인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주님의 지체이다.

이것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길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를 돌아보자. 황금의 신뿐만 아니라. 권력의 신에게 미혹 당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서 권력은 찬양을 받았고 진리와 정의의 소수는 무시 아니면 버림을 받았다.

이렇게 권력과 타협한 교회는 그 권력과 함께 찬란한 옷을 입고 으스대며 ‘고난 받는 것은 약자의 운명이요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웃는다.

이것은 올바른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라 할 수 없다.

교회는 오직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하는 살림 공동체여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있으며, 그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 하라고 맡겨진 사명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골 1:24-25)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 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우기 위해서,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소속해 있는 기관을 위해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들의 구주가 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너희에게 크기 때문이다.”(마5:11-12)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은 지상의 차원을 넘어 하늘과 관련 된다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희망이 가득 찬 고난이다. 겪을수록 완전해 지고 성숙해 진다. 오늘의 교회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을까? 하는데 골몰 한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사회의 약자 들을 위한 고난을 나누어 질 수 있을까를 고민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

또한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전하지 않으면 듣지 못할 것이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강조한다.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의 전파, 그것이 교회의 사활을 좌우 한다.

그러면 교회의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나부터 해야 한다. 바른 예배자가 되어보자.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변화되고 고치고 수선해 나가야 한다. 나 하나 개혁하지 못하면서 무슨 개혁을 말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백팔십도 변해야 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롬12:1)

우리의 중심이 변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개혁은 기대할 수 없다. 인간성이 달라지지 않고 죄 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결국 개혁은 성립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가만히 놔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밑으로 추락한다. 저절로 타락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위로 올라가는 삶을 살아가려면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고칠 것은 고쳐 나가야 한다.

주님을 예배하라.

진정한 개혁을 하려면 예배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는 아버지의 집이다. 우리의 집이 아니다. 돈 많은 자의 것이 아니다. 교회건축 하는데 공로가 많은 중직자가 아니다. 결코 사람이 주인 아니란 말이다. 성전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다. 이 대목에서 한국교회의 ‘소란스러움’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를 깊이 생각게 한다.

새 성전을 지어야 한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려면 새 성전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중심에 모셔야 한다.

본문 19절을 보자.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

여기서 말하는 성전이란 46년 동안 사람들이 피땀흘려가며 돌로 지은 성전이다.

눈에 보이는 성전일 뿐이다. 반면에 주님께서 ‘헐라’는 말은 파괴한다는 뜻이다. 다시 일으킬 성전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마음에 새겨 질 영적인 성전. 다시 말하면 제사 드리는 시대는 이미 지나 갔으며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 성전의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또한 헐라는 말은 기초까지 정리 하라는 뜻이다. 돌로 지은 성전과 새 성전의 차이는 무엇인가? 돌은 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돌로 지은 성전은 아무리 아름답고 정교하고 웅장해도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우리의 죄를 씻지 못한다.

더욱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져다 줄 수 없다. 예배의 공간은 될 수는 있으나, 예배 자체를 가능케 하지는 못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우신 새 성전은 이런 문제들을 말끔히 해결 하고도 남는다.

새 성전이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그를 통해서 단번에 주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죄 용서 함을 받으며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은총이란 말인가? 우리를 구원치 못하는 성전에 연연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성전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이었던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의 몸이었다.

이 성전에서 우리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그가 이루실 속죄를 고백하며 제사를 드린다. 예수님이 성전에 가셨을 때는 유월절 이었다. 최초의 유월절에서 유대인 들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구속을 확실하게 실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표하는 어린양의 고기를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는 성전은 형식만 남았다.

유월절에 대한 깨달음과 고백이 없었다. 그 유월절의 양이신 그리스도가 성전에 그 모습을 드러내셨지만 아무도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유월절을 준비하고 제사는 그대로 드려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형식이요, 의식일 뿐이다. 자신의 몸인 성전이 훼손 되고 있는 것을 보신 주님은 이를 방치 할 수 없었으므로 청결케 하신 것이다.

이에 성전의 지도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말았다(마24:2).

오늘의 한국 교회를 보실 때 주님은 무어라고 하실까? 이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한국교회 여 깨어나라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이선규목사 #이선규 #요한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