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이종전 교수 ©기독일보DB

지난 2일 언론사들이 전하는 특별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조차 무슨 소린가 할 만큼 요란스럽게 전해지기에 잠시 눈길을 멈췄다. 내용인 즉 교황의 교서에 관한 것이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낙태를 행한 사람들에게 한시적으로 용서한다는 내용의 교서라고 한다.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낙태를 한 여성들에게 한시적으로 용서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 교서의 내용이 전해진 다음에 한국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의 한 신부가 이 교서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부터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자비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실천적으로 전달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금년을)자비의 해를 선포했다. 그 일환으로 (이번) 교서를 발표했다." 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에 교황이 발표한 교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실천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서 교황이 베푼 특별한 은혜라는 것이다.

로마교회에서는 이 교황의 교서를 널리 알리기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모순을 쉽게 깨닫게 된다. 기본적인 상식과 사고력만 있다면 이 말이 얼마나 황당하게 들렸을지? 조금이라도 성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렸을지? 특별히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것은 매우 황당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이번 프란체스코의 교서를 통해서 로마교회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즉 교황과 신부들이 갖고 있는 속죄권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분배하는 권한을 사제가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죄권을 인간인 사제가 전권을 갖고 대행하는 것이다. 만일 교황의 교서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 속죄권이 교황이나 신부에게만 있다면,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속죄권이 행사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서 인간을 향한 은혜를 자유로이 적용하시는 권한을 갖고 계신다.

그렇다고 하면 교황을 비롯해서 사제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교황과 사제들 자신의 속죄권만 내려놓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바로 전달될 것이다. 그런데 그 권한을 교황과 사제들이 나눠가지고 마치 자신들이 주는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또한 하나님은 어떤 경로로도 교황의 교서에서 밝힌 것처럼 낙태를 행한 죄에 대해서 기간을 정해놓고 특별히 용서하겠다는 말씀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속죄의 전권을 갖고 있는 교황은 자비(?)를 베풀어서 한시적으로 낙태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하겠단다.

또한 이번 교서는 한시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낙태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한시적으로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역시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 결국 교황이 그 기간을 제한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시적이라고 했을 때 그러면 그 이전에 낙태한 사람과 용서기간이 지난 다음에 낙태를 한 사람들은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인데 한시적으로만 허용하겠다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강조되는 교황의 자비로운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자신이 속죄권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가로채고 있는 것을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자비심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가 한량이 없다고 할지라도 속죄권을 갖고 있다고 하는 사제의 자비심이 없이는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고유한 주권으로 허락하시는 은혜를 어떻게 자신의 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사제주의신앙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가톨릭교회의 신앙적 특징이고 핵심이다. 따라서 일찍이 이러한 비복음적인 신앙을 부정한 것이 종교개혁이었음을 이번 기회에 다시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더 확인하게 된 사실은 낙태에 대한 속죄권이 특정 신부나 특정 지역의 신부에게는 이미 주어져있다는 것이다. 즉 같은 신부라고 할지라도 지역과 신부의 권위에 따라서 속죄권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에 교서를 통해서 발표된 낙태죄에 대한 속죄권을 한시적으로 모든 신부들에게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의 교서는 교항의 자비인 셈이다. 교황의 교서를 통해서 모든 신부에게 낙태죄를 속죄할 수 있는 권한을 한시적으로 허락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감춰진 것이고 교황의 자비심만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언론사들이 해외 주요 뉴스로 전한 셈인데 얼마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왜곡, 제한하는 말인가? 결국 하나님은 없고 교황의 은혜와 자비만 전하는 뉴스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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