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6:22-29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2. 시작 기도
아버지! 복음을 전하는 사도는 쫓기고 갇히고 죽음의 위협을 당합니다(행 23장).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 주의 고난을 피할 수 없나이다.
오늘도 공허와 무의미, 죄책감과 정죄의식의 비존재 세력이 나를 삼키려 합니다.
쫓기고 갇히고 위협받는 자 되는 것은 저에게 합당한 몫이옵니다.
낙망하는 내 영혼,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 가오니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소생시켜 주소서.
이미 심겨진 생명의 말씀이 밤낮 자라는 것은 오직 주의 열심으로 되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무리들은 급식 기적을 베푸신 예수를 메시아로 알고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피하셔서 산으로 갔다가 풍랑만난 제자들에게 가셨다.
물위를 걸어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셨고 그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한편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했던 무리들은 그를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있던 무리들은 거기 작은 배 한척만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타시지 않고 제자들만 배로 떠난 것을 알았다(22절).
곧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으로 가지 않고 자기들이 있는 그곳에 계신 줄 알았다.

그 즈음 티베리아로부터 온 작은 배 몇 척이 주께서 감사드리고 무리에게 떡을 먹이시던 곳에 가까이 닿았다(23절).
이들도 소문을 듣고 배를 타고 급식 기적을 베푼 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무리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 예수도 없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았다(24절).
그러자 배를 타고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으로 갔다(24절).
무리들이 가버나움에서 예수를 만나 반갑게 물었다. "선생님,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25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다"(26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권위의 인을 치셨기 때문이다"(27절).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28절).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29절).

무리들은 육신의 필요를 채워준 예수를 집요하게 찾는다.
그의 동선을 예리하게 추적하였다.
배는 한 척만 있었는데, 그가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밤에 물위를 걸어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갔다.

무리들은 예수를 찾지 못하자 결국 가버나움으로 갔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준 예수, 그래서 그들이 왕으로 삼으려했던 예수...
그러나 갑자기 사라진 예수...
그들이 그를 만나자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래서 반색하며 묻는다.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하지만 예수께서는 정색하며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진리를 말하건대, 그들이 예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것이 아니다.
다만 먹고 배부른 육신의 양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신의 양식을 먹고 배불렀으나 그것을 주시는 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가 바로 표적인데 말이다.

예수께서 어안이 벙벙한 무리들에게 말씀하신다.
썩을 양식, 곧 먹고 배부른 그것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하신다.
다만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신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이 바로 표적이다.
그것은 수가성 여인에게는 '솟아나는 샘물'이다(4:14).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의 생명이다.
아버지는 자기 속에 있는 이 생명을 아들에게 주셔서 아들 안에 있게 하셨다(5:26).
그리고 이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창세전 우리에게 약속하신 생명이다(딛 1:2).
영원한 생명은 항상 있고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주어진다(벧전 1:23; 요일 1:1).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은 아들 자신이며 그의 살과 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메시아적 행위로써 복음이다.

무리들은 하나님의 일, 곧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을 묻는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그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아들의 말을 듣고 그를 보내신 이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5:24).
하나님의 일은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아들과의 사귐으로 실재된다(17:3).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양식을 지고의 관심사로 알고 있다.
이생의 문제해결과 상황조정을 통해 보란듯하고 성공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꿈꾼다.
그것을 위해 예수를 따르며 예수를 추적하며 예수를 붙든다.
그래서 진리를 알고자 믿는 자보다 잘살기 위해 믿는 자가 다수이다.

기독교,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물론 교회는 세속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나 세속이 추구하는 바와 전혀 다르지 않는가!
교회는 '잘살아 보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잘 믿어 보세'를 외쳐야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무엇이 믿는 것인가? 잘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고 있다.

무리들은 '하나님의 일들(works)'에 대해 물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일(work)'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한 가지로 '단수형'이다(헬- 타 에르가, the work).
그 일은 이것이다: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보내신 이와 연합되는 것이다).
"The work is this: to believe in the one he has sent"(NIV).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일, 그것은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들 안에 거하게 하며 아버지 자신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17:23).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믿는 것은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는 아들의 살을 먹고 아들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아들의 죽음 안에 연합되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과 그 아들과 더불어 사귐을 갖게 되며 하늘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린다(요일 1:3-4).

4. 나의 묵상
필요를 위해 예수를 붙드는 무리들, 20여 년간 나의 모습이다.
사람은 자기 필요를 채워준 대상을 결코 놓지 않으며 그를 신으로 삼는다.
나는 결핍 속에 자랐고 그래서인지 무엇이든 목말라하였다.
20대 중반 믿게 된 예수는 나의 필요를 채우는 신적인 존재였다.

평신도시절 처음 시도한 금식기도에는 30여 가지 목록이 들어있었다.
당시 증권회사를 다니면서 진 빚을 청산하는 제목을 비롯하여 모두가 나의 필요였다.
절박한 필요에 주께서 응답하셨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주를 붙들었다. 그를 놓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곳곳의 기도원을 전전하였다.

신대원을 가고 목사가 되어서도 필요를 구하는 신앙이 중심이었다.
이제 나의 필요뿐 아니라, 성도들의 필요를 위해 부르짖는 자 되었다.
뜻도 내용도 모른 채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을 도용하여 부르짖는 자 되었다.
돌아보니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가증한 자였다(겔 8:14).
하나님의 일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일인데...
나는 이런 세속의 필요를 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로 착각한 것이었다.

필요는 상황과 시대를 따라 변천한다.
한 때 생존과 안정을 위해 부르짖었다면 후에는 마음의 문제를 위해 부르짖었다.
소위 치유사역을 하면서 얼마나 울부짖고 외쳤는지 모른다.
나의 상처뿐 아니라 내게 오는 이들의 상처를 끌어안고 말이다.
돌아보니 이것도 하나님의 그 일이 아닌데... 무지 속에서 행한 열심,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나님의 그 일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일이다.
보내신 이, 복음을 전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그 일이다.
공의로 심판을 받은 후에야 이것을 알게 되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자!
이전과 달리 분망하지 않다. 이는 여전히 필요를 중시하는 세태로 인해서이다.
필요를 채우는 일,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편만하다.
필요를 구하던 자,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자, 다들 어렵다고 하며 떠나갔다(60, 66절).
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고 한 가지 일만을 위해 산다.
복음을 전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그 일을 위해 산다.
주님이 가신 길, 충성된 사도들의 걸어간 길, 오늘 내가 간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이생의 필요를 위해 주를 찾던 자였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 죽도록 일하던 자였습니다.
무엇이 남았습니까? 결국 사라지고 없어지고 썩어질 것만 남았습니다.
티끌과 재 가운데 누운 비천한 자, 오직 주께서 기억하셨나이다.
비로소 썩지 아니할 양식,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주셨나이다.

아버지...
이 양식은 아들의 살과 피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입니다.
이는 생명의 떡이며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양식입니다.
하오나 사람들은 여전히 이 양식을 거절합니다.
당장 먹고 배부른 양식을 찾아다닙니다.
하나님의 일들, 수많은 이들이 널려 있습니다.
각자의 취향대로 믿는 시대입니다.

아버지...
공의로 심판하소서. 당신의 백성들을 심판하소서.
그리하여 아들의 죽음과 무덤으로 이끄소서.
하나님의 그 일, 아들의 살과 피를 먹는 그 역사를 이루소서.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일을 감당하게 하소서.
연약한 종을 붙드소서. 끝까지 이 일에 충성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말씀묵상 #말씀묵상선교회 #서형섭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