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월드컵은 '공격수'들의 축제였다.

세계 축구팬들은 브라질의 펠레(1958스웨덴)·가린샤(1962칠레)·호나우두(2002한일)·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1970멕시코)·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1974서독)·이탈리아의 파울로 로시(1982스페인)·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1986멕시코) 등 불세출의 공격수들이 쏘아올리는 화려한 골 폭죽에 열광했다.

'골든슈(득점왕)'가 첫 월드컵인 1930우루과이월드컵 때부터 등장한 것과 달리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로브'가 러시아의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1929~1990년)의 이름을 딴 '야신상'이라는 이름으로 1994미국월드컵이었던 것을 봐도 월드컵은 공격수를 위한 무대였다.

독일의 '수호신' 올리버 칸(45·은퇴)이 2002한일월드컵에서 골든슈 수상자이자 우승국 브라질의 주포 호나우두(38·은퇴)를 '실버볼'로 밀어내고 골든볼과 야신상을 함께 받아 2관왕에 오른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볼은 골키퍼가 가져가지 못했으나 국제축구연맹(FIFA)이 조별리그부터 매 경기 뽑은 경기 최우수선수(MOM)에 골키퍼가 무려 12경기에서 선정됐다는 것은 더 이상 골키퍼가 월드컵의 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것도 남아공월드컵 골든글로브 수상자로 그간 세계 최고의 수문장으로 군림해온 스페인의 이케르 카시야스(33·레알 마드리드)가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B조 1차전(1-5 패)에서 무려 5골을 내주는 굴욕을 당하면서 '골키퍼 수난시대'를 예고한 이후 펼쳐진 골키퍼들의 선방쇼여서 더욱 그러했다.

A조 2차전 브라질-멕시코전(0-0 무)의 기예르모 오초아(멕시코)·G조 미국-포르투갈전(2-2 무)의 팀 하워드(미국)·D조 코스타리카-잉글랜드전(0-0 무)의 케일러 나바스(코스타리카)·우루과이-이탈리아전(1-0 우루과이 승)의 잔루이지 부폰(이탈리아)·E조 프랑스-에콰도르전(0-0 무)의 알렉산더 도밍게스(에콰도르) 등이 조별리그에서 공격수들을 제치고 FIFA MOM에 선정됐다.

지면 바로 짐을 싸야 하는 16강 토너먼트에서 골키퍼들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졌다.

16강 브라질-칠레전(1-1 PK 3-2 브라질 승)의 줄리우 세자르(브라질)·네덜란드-멕시코전(2-1 네덜란드 승)의 오초아·코스타리카-그리스전(1-1 PK 5-3 코스타리카 승)의 나바스·독일-알제리전(2-1 독일 승)의 라이스 음보리(알제리)·벨기에-미국전(2-1 벨기에 승)의 하워드·8강 네덜란드-코스타리카전(0-0 PK 4-3 네덜란드 승)의 나바스·4강 아르헨티나-네덜란드전(0-0 PK 4-2 아르헨티나 승)의 세르히오 로메로(아르헨티나) 등이 FIFA MOM의 주인공이 됐다.

이들 중 나바스는 3경기, 오초아·하워드는 2경기에서 각각 FIFA MOM에 선정됐고, 부폰·나바스·오초아·하워드는 패배를 막지 못했지만 이례적으로 FIFA MOM에 뽑혔다.

그러나 그 많은 특급 골키퍼들 중 군계일학은 역시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28)다.

리우 데 자네이루(브라질)=AP/뉴시스】독일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28·바이에른 뮌헨·왼쪽)가 14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에스타지우 마라카낭에서 펼쳐진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선방쇼를 펼치며 독일의 우승을 지켰다.   ©뉴시스

노이어는 14일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에스타지우 마라카낭에서 펼쳐진 브라질월드컵 결승전(1-0 승)에서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27·FC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아르헨티나의 가공할 공격진을 최종적으로 봉쇄함으로써 팀의 우승을 지켰다.

이로써 노이어는 맞대결을 펼친 아르헨티나의 로메로(27·AS모나코)와 나바스(28레반테) 등 최종 경쟁자 2명을 모두 제치고 칸에 이어 12년 만에 골든글로브를 낀 독일 골키퍼가 됐다.

신체조건·반사신경·예측력·판단력·위치선정 능력·킥력과 멀리 던지기 능력 등 골키퍼에게 요구되는 모든 덕목을 바탕으로 독일 분데스리가의 최강 바이에른 뮌헨의 '수호신'이자 유럽 무대 최고 골키퍼로 군림해온 노이어이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오히려 FIFA MOM을 한 번도 받지 못해 속앓이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활약이 미흡해서도, 무능해서도 아니었다.

독일에 워낙 출중한 공격수들이 많은 탓에 FIFA가 MOM을 독일 공격수 또는 그 파상공세를 막아낸 상대 팀 골키퍼에게 줘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한 탓이다.

그러나 노이오는 골든글로브를 차지하며 그간 조별리그와 16강·8강·4강 등 6경기에서 느낀 설움을 모두 날리면서 앞으로 4년간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할 자격과 그간 어느 골키퍼도 이루지 못한 2개 대회 연속 골든글로브 획득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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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골든글로브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