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적 갈등을 통해 그 이면에 도사려 있는 인간의 탐욕을 조명하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 사회봉사관 소극장에서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영화로 읽는 기독교 역사 Ⅰ'>로 킹덤 오브 헤븐(2005, 리들리 스콧)이 상영됐다. 이날 강의는 고재백 서울대학교 강사(서양 사학자)가 맡았다.

'킹덤 오브 헤븐'은 한국에서는 지난 2005년 5월 4일 개봉했다. '글래디에이터'의 거장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은 '종교의 진정한 의미와 인류의 평화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영화 곳곳에서 주요 인물들의 대사로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역사 영화와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9·11 사태 이래로 '문명 충돌'과 '문명 공존'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작품이라 할 만하다.

스콧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서 오늘날의 중동 지역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십자군 전쟁을 자기 반성적 성찰을 통해서 해석하면서, 종교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캔버스에 휴먼드라마를 채색하듯이 감독은 십자군 원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진정한 평화의 개념을 되짚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또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 종교, 그리고 국가주의와 같은 거대한 담론 앞에서, 개인의 소박한 삶에 계속해서 점수를 매기고자 했던 리들리 스콧 감독 자신의 영적 탐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킹덤 오브 헤븐'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비천한 신분의 젊은 대장장이가 뛰어난 용맹함으로 신분과 운명을 넘어 십자군 전쟁의 전설적인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린 사랑과 명예의 대서사극이다. 그 속에 십자군 전쟁의 모순과 종교간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한 인간의 신의 섭리에 관한 영적 탐구도 영화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184년 프랑스 시골 마을의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에게 덕망 높고 신뢰받는 영주 고드프리(리암 니슨)가 찾아온다. 고드프리는 "나는 네 아버지다(I'm your father)"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무언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그의 정체는 바로 발리안의 아버지였던 것. 병으로 죽은 아들과 자살한 아내. 지탱하기 조차 버거운 삶의 무게 속에서 그는 반갑지 않은 금시초문의 생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아버지가 죽기 전 기사작위를 받은 발리안은 신화에서 영웅이 겪을 법한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동기는 도피를 위한 것이었지만, 내면에는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와 신앙의 의미에 관한 무거운 영적인 갈등을 담고 있다.

예루살렘의 왕(에드워드 노턴)에게서 신임을 얻은 발리안. 그러나 기독교 십자군과 이슬람 세력 간의 6년 평화를 깨뜨리려는 프랑스 귀족 기욤의 음모로 양 진영은 결투를 벌이고, 결국 십자군은 참패한다. 발리안은 남은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결전을 준비한다.

발리안은 이렇게 해서 영웅이 된다. 그는 힘없는 백성의 안위와 평화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다. 평범한 대장장이였던 그는 아무런 훈련도 없이 훌륭한 전사가 되고, 수십만 대군 앞에서 침착하게 기묘한 전술을 구사하는 군사(軍師)로 돌변한다.

'킹덤 오브 헤븐'은 뿌리 깊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적 갈등을 통해 그 이면에 도사려 있는 인간의 탐욕을 조명했다.

영화에서 성공적으로 예루살렘을 지킨 발리안에게 살라딘이 성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항복을 제안하자 발리안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발리안이 묻는다. "당신들에게 예루살렘은 무엇이냐"라고. 살라딘은 웃으며 대답한다. "아무 것도 아니지. 혹은 모든 것일 수도."

리들리 스콧은 영화 속 예루살렘을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로 부글부글 끓어대는 현재의 공간으로 은유한다. 그는 "신의 뜻은 저 먼 곳이 아닌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 있다"며 어리석은 종교 전쟁을 그만 하자고 역설한다.

4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소극장에서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영화로 읽는 기독교 역사 Ⅰ'>로 킹덤 오브 헤븐이 상영됐다.   ©박성민 기자

영화가 시작되기 전 고재백 강사는 "800년 전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십자군 전쟁과 중세 기독교에 대해 감독과 원작자는 어떤 해석을 내놓았을까, 그리고 영화는 문화 매체인데 어떻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 시대를 해석하고 묘사했을까, 또한 산업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며 영화를 보자"고 말했다.

또 그는 제작 연도가 2005년인 시대 상황을 언급하며 "이 전·후로 일어났던 일들, 2001년에 벌어진 9·11 테러 사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십자군 전쟁이다라는 얘기가 많이 들려질 때, 감독이 800년 전 십자군 전쟁을 꺼내어 영화로 제작한 것"이라며 "이와 같은 점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있는 역사 영화이며 이 점을 염두해 영화를 보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영화가 끝난 후 그는 영화를 보고 혹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너무 기독교를 욕하는 영화가 아닌지, 살라딘을 너무 멋있게 묘사해서 너무 이슬람을 띄우고 기독교를 좀 무시하는 것 아닐까란 감정이 혹시라도 들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염려였다.

고 강사는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 "개종하자. 나중에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겠지라고 한 장면이었다"면서 "당시 기독교의 모습을 나름대로 감독이 비판적으로 그려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성벽을 두고 마지막 공성전을 벌이고 그리고 성벽이 무너져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감독은 '전쟁은 이런 것이다. 이런 전쟁을 원하느냐'라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장면을) 넣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전쟁의 장면에서 카메라의 시선이 위로 올라가서 멈춰 있는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물으며 "구도, 장면 처리가 굉장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라며 "제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시선'이 아닐까, 기독교인의 하나님이든, 이슬람의 알라 신이든 저 위에서 신이 내려다 보면 이런 전쟁을 원할까란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라고 했다.

고 강사는 "그런데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이 전쟁을 다 '신의 뜻'이라고 불렀다"며 "정작 신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이 전쟁을 원하고 있을까? 이것을 생각하라고 시선 처리를 한 것 같다. 대사, 장면 하나 하나가 굉장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마지막 장면인 예루살렘 전투에 대해서는 "굉장히 멋있게 처리 됐지만, 그러나 실제 역사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문화·산업적으로 재미를 주기 위해 넣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연 후 청중들로부터 '십자군 전쟁'을 어떻게 보면 좋을 것인가란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질문은 한국인으로서 유럽적 시각과 이슬람의 시각 중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고 강사는 "서로가 침략을 당했고 복수를 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전쟁은 실제 어떤 전쟁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유럽 식으로 역사를 배워와 교과서에서 십자군 원정, 이슬람 침략에 맞선 방어 전쟁이라고 나와 있는데, 실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오랫동안 이슬람이 지배하고 예루살렘을 개방해서 기독교인이든, 유대인이든, 이슬람인이든, 누구든 함께 공존하고 성지 순례를 하도록 해줬다"며 "갑자기 교황 우르반 2세가 예루살렘을 되찾자하고 십자군을 보낸 것 아니냐고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객관적으로, 역사를 통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 강사는 2001년에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를 언급하며 "그 때 교황이 굉장히 훌륭한 일을 한 가지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가 역사에 많은 공헌을 했지만, 잘못한 일도 있었다며 그 잘못을 고백하고 사죄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 중 첫번 째가 십자군 전쟁이었다"고 했다. 교황이 "그 동안 기독교권에서는 성전으로 알아왔는데 실제 전쟁은 성전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욕심을 위해 약탈한 것"이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으로는 유대인 학살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히틀러의 나치 시대에는 600만명의 유대인이 무참히 학살 당했다. 그는 "이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때 기독교가 뭐 했나. 침묵하거나 동조했다"라고 말하며 "용서를 구하자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고 강사는 이어 "연장선상에서 반성해 보자"며 "너무 맹목적으로, 비이성적으로 신앙하지 않았는지. 또는 하나님을 내세우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는 의도에서 이 영화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4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소극장에서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영화로 읽는 기독교 역사 Ⅰ'>로 킹덤 오브 헤븐이 상영됐다. 강의를 맡은 고재백 강사가 영화와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박성민 기자

고 강사는 이 영화의 교훈에 대해 먼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그는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둘러대면 신앙일까"라고 반문했다. 다음으로는 "종교가 구원의 중요한 길이기는 하나 종교가 너무 정치에 이용당하고 세속화 되면 잘못된 길로 우리를 이끌지 않을까. 바른 신앙이 뭘까를 생각하는 계기를 준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좋은 지도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말해 준다라고 했다. 그는 "영화에 보면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는 지도자도 있고 또 백성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평화를 추구하는 지도자가 있다. 또 비록 소수의 기사이지만 수 많은 이슬람에 둘러쌓여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전투하는 기사도를 보이는 발리안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 교회, 사회에 훌륭한 리더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리더의 본보기일까 생각해보자"고 전했다.

이어 한 참여자는 "종교 간 평화와 공존이라고 나오는데, 종교다원주의에 입각한 내용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종교다원주의라는 건 구원의 길이 여러 가지가 있고 구원을 이루는 방법이 여러 종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 인정하자는, 그런 의미의 종교 간 평화와 공존은 아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과 신앙을 훼손하면서 까지 종교를 인정하자는 것은 아니"라면서 "종교가 다르니 제압해 없애버리자라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종교일지라도 복음으로 감화하고 모범을 보여서 감동을 주자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종교의 명목으로 일으켰던 지금까지의 전쟁이었다"고 답했다.

한편 다른 참여자의 질문을 통해 삭제판과 무삭제판에 관한 질문이 있기도 했다. 이날 본 영화는 삭제판이었다. 무삭제판으로는 감독판이 있는데 삭제판 보다 45분이 길다. 때문에 삭제판의 경우 스토리가 너무 빨리 전개 돼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삭제판은 극장 상영용으로, 너무 지루할까봐 45분을 자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 강사는 한 참여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십자군 전쟁의 양상과 관련한 참고 도서로 토마스 매든의 '십자군'을 권했다. "짧으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꽤 잘 썼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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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오브헤븐 #100주년기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