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통해 관객 스스로 자신들의 지난 삶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이달 1일 시작해 18일까지 공연하는 국립극단의 연극 ‘상주국수집’의 독특한 캐릭터인 치매 할머니 역할을 맡아 관객들의 각광을 받고 있는 연극인 김문희(사진·42)씨가 강조한 말이다. 서울 용산구 ‘소극장 판’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극단과 극단 ‘동’이 공동 기획·제작한 ‘상주국수집(연출 강량원)’의 시대적 배경은 2000년 초. 그로부터 20년 전(80년 군부독재 시절인 듯) 군대에서 탈영한 막내 아들이 집으로 오던, 오직 하루만을 기억하며, 자살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치매 할머니와 그의 딸의 애절하고 처절한 삶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이미 탈영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쓰라리고 잔인한 삶의 사건 속 한복판에서 기억이 멈춰져 있다. 어떻게든 어머니의 기억을 되돌리려고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딸이 있다. 딸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 속에서 삶의 슬픔을 메고 산다.

▲ 연극 '상주국수집'에서 치매 할머니 역을 훌륭히 소화해 낸 배우 김문희씨(우) © 김철관 기자
▲ 상주국수집의 무대 © 김철관 기자

‘상주국수집’은 경상도 상주에서 길쭉한 면을 뽑고, 말리고 ,자르고, 포장해서 파는 소규모 평범한 국수집이다. 하지만 이 집의 내력을 내밀하게 살피면 평범한 국수집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애절한 집이다.

▲ 배우 김문희씨 © 김철관 기자

여기서 김문희 씨가 맡은 치매 할머니(어머니) 역은 공연의 맥을 잡는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다. 군대를 탈영해 목숨을 잃은 아들을 잊지 못해, 오직 살아 있을 때의 아들 모습만을 기억하는 할머니의 삶에서 모든 시골 어머니들의 지난 과거의 삶에 대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8일 저녁. 공연이 끝나고 국립극단이 있는 서울역(서부역) 주변 한 카페에서 연극인 김문희씨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는 먼저 할머니 역을 통보받고, 할머니의 몸의 특성과 제스처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할머니 제스처 연구에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예를 들어 밥 먹는 모습을 관찰할 때도 노인과 아이들의 몸의 중심이 달라요. 특히 노인 몸의 중심연구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요. 연극이 없는 월요일을 선택해 극단 동료들이 만든 ‘월요연극연구실’로 나가 연습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노인 제스처 연구에 몰두했어요. 특히 노인들을 지근거리에서 보면서 몸의 특성과 제스처 등을 면밀하게 관찰해 연기에 접목했습니다.”

극단 내 공연에 대한 연습과 연구를 할 수 있는 ‘월요연극연구실’은 엄격한 원칙과 벌칙을 적용해 운영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어 그는 연기자가 지나치게 역에 대한 몰입보다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제 역인 치매 할머니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이 나와요. 또 국수를 먹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이런 역할들은 온갖 몰입을 하면서 물을 마시고 국수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연기에 몰입하기보다 관객 스스로가 과거의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게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연기를 한 것입니다. 관객들이 자유스럽고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를 넘나들면서 인생의 지평을 되돌아보게 했다고나 할까요.”

맡은 역할에 대한 어려움도 털어 놓았다.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경상도 상주 사투리(지역 방언)를 씁니다. 관객들이 눈치를 챘는지 모르지만 내 역인 할머니는 깨끗한 표준어를 씁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서울에서 시집온 할머니 등으로 연상할 수 있게 했지요. 딸과 함께 상주 사투리를 사용했다면 아마 딸과 엄마의 소소한 사건 및 갈등으로 그려질 수 있기 때문에 경계했어요. 깔끔한 표준어로 가려고 해도 몸이 노인이니까 말도 노인처럼 나오려고 해 애를 먹었어요. 바로 이런 부분들을 신경 써 연기를 해야 하니,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홍보포스터 ©김철관 기자

‘상주국수집’을 두고 그는 역사를 통해 짓눌리고 억압된 과거의 집단무의식에 대한 경종과 의미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상주 국수집’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상주 지역의 방언(사투리)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연출자 님이 지역방언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몰두했다, 좀 더 살아있는 지역의 정서는 물론, 방언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는 연극적 언어로 살아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공연”이라고 피력했다.

김문희 씨는 극단 ‘동’ 소속 배우다. 1990년도 동국대 철학과 재학 중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갔다. 97년 모스크바 박탄고프극장 산하 슈킨연극대학교에서 연기학사를 받았다. 또 2004년 영국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공연예술학 석사를 받았다. 99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해 현재 13년째 맞고 있다.

세종대와 경기대에 출강했고, 경기대학교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기원에서 연기를 지도했다. 영어연극아카데미 TETSOL 강사로도 활동했다. 그가 출연한 대표작으로 ‘비밀경찰’,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샘플 054씨 외 3人’, ‘테레즈 라캥’, ‘외투’, ‘페드라’ 등 수많은 작품이 있다. 소속된 극단 ‘동’은 2008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무대미술상, 2008년 45회 동아연극상 새개념 연극상, 2008년 PAF 연출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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