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께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확인 한 제자들은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따라서 부활 신앙을 가진 제자들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0-12)라는 말씀을 심령에 깊이 새겼다. 그래서 제자들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박해당함은 물론이고, 기꺼이 순교의 잔까지도 받아들였다. 오늘은 주의 복음을 위해서 박해를 당하고 죽음을 당한 순교자들의 신앙을 돌아보면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자.
1.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
안니발레 카라치의 '성 스테파노의 순교' 1603년~1604년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면서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에 구제 문제로 갈등이 생겼다. 사도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일곱 사람을 택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이름이 언급된 인물이 바로 스데반이다.
스데반은 단순히 행정적인 봉사를 넘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백성들 가운데서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스데반의 사역이 활발해지자, 유대교 회당의 반대파들이 일어나 그와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스데반의 지혜와 성령을 당해내지 못한 그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 그를 신성모독 죄로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했다. 억울한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스데반의 얼굴은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이 평안하고 빛났다.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된 스데반의 설교는 성경에서 가장 명쾌한 구약 요약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아브라함부터 요셉, 모세,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짚으며, 유대인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배척해 왔는지 날카롭게 지적했다. 참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며,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경이 예언한 의인임을 담대히 선포했다.
스데반의 찔림이 있는 설교를 들은 무리는 회개하는 대신 격분하여 그를 성 밖으로 끌고 가 돌로 쳤다. 돌에 맞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목격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2. 사도 베드로 순교
카라바조의 베드로의 십자가형 Caravaggio, The Crucifixion of Saint Peter, 1600, Oil on canvas,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베드로는 제자들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었다. 극심한 박해가 찾아왔다. 제자들은 하나 둘 잡혀가서 순교를 당하고 성도들도 굶주린 사자들에게 던져져 죽게 되었다. 베드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다른 제자들이 "당신은 죽어서는 안 된다"라고 로마를 떠나도록 종용했다. 도피하도록 권했다. 베드로는 마침내 위협을 느껴 새벽 미명에 변장을 하고 조용히 로마를 떠났다. 베드로가 막 로마성을 벗어났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로마로 들어오고 계셨다. 스쳐가다가 베드로가 그분이 예수님인 것을 발견하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하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다시 달리려고 로마로 간다”라고 하셨다. 그 순간 베드로의 눈이 번쩍 뜨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길로 다시 로마로 들어가서 끝내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였다.
로마의 박해 앞에서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베드로가 죽기 위해 십자가 앞에 섰을 때 그렇게 고백하였다. “오 십자가의 이름, 숨겨진 신비여 십자가의 이름으로 표현된 형언할 수 없는 자비여, 지상의 경력을 끝내는 자리에서 나는 당신을 붙잡습니다, 사형집행자들이여 나의 머리를 아래로 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시오." 그리고 베드로가 죽어갈 때 찬송하며 기쁨으로 순교했다.
3. 사도 바울 순교
한스 스페카르트(Hans Speckaert)의 '사도 바울의 참수' 1570년경,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사 박물관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환난은 물론 생명조차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라고 단언했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
사도 바울은 67-68년경 이태리의 로마 남문 밖에서 순교했다. 사도가 참수당할 때 잘린 머리가 세 번을 튀었고, 그 각각의 장소에 샘물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장소에 지은 교회가 사도 바울 순교 교회<세 분수의 성당>(Chiesa di Tre Fontane)이다.
4. 이그나티우스 감독 순교
체사레 프라칸차노(Cesare Francanzano)의 '성 이그나티우스의 순교' 17세기경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제자로 주후 70년부터 107년까지 37년 동안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제3대 감독으로 사역하였다. ‘이그나티우스 데오포로스(Ignatius Theophoros)’ 즉 헬라어로 ‘하나님을 전하는 자’라고도 불렸던 신실한 교회지도자였다.
이그나티우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전설에 의하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말씀하시며 무릎에 앉히고 축복하셨던 바로 그 어린아이가 이그나티우스였다고 한다.
로마 도미티안 황제 때 이그나티우스는 짐승에 물려 몸이 찢기면서 순교당했다(107년). 그는 로마로 잡혀가면서 소아시아 여러 교회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요 동역자인 친구 폴리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타협하지 말라. 내가 놓이기를 바라지 말라. 나는 한 알의 밀씨가 되고 짐승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하나님의 깨끗한 빵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형벌당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다면 십자가에서 짐승의 이빨에 뼈가 가루 되고 손과 발이 잘리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는 말씀을 믿고, 한 알의 복음의 씨앗이 되고자 각오했기 때문이다.
5. 폴리캅 감독 순교
레이몽 페레의 '성 폴리캅의 순교' 튀르키예 이즈미르, 폴리캅 기념교회 황제 트라얀 시기에 순교한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 그가 섬겼던 교회는 서머나 교회였고 그곳의 감독이었다. 약 168년에 순교했다. 순교를 당하기 3일 전, 기도하다가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그는 자신의 머리 곁에 있는 기둥을 보았는데 불에 타서 사라져 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폴리캅은 생각하기를 자신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화형을 당할 것으로 여겼다.”
“검거된 폴리캅은 암피트리테 (amphitrite) 사형장에 들어서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오, 폴리캅! 남자답게 강하고 담대하라! 고통에서 담대하라!’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에게 들려진 음성을 들었다. 곁에 서있는 총독은 그에게 물었다. ‘나이를 고려하여 봐줄테니.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황제에게 희생제를 드리는 것이 어때?’ 이 말을 듣자 폴리캅은 ‘나는 86년 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나를 한 번이라도 부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모든 사악한 것에서 나를 보존하시고 나를 구원하실 나의 왕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화가 난 총독은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폴리캅은 담대하게 말하기를, ‘저의 뜻은 불변합니다. 환난을 받는다고 해서 선이 악으로 변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총독은 화가 치밀어서 그를 화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폴리캅은 ‘당신은 나에게 불로 위협합니다. 아쉽지만 그 불은 단지 얼마동안만 저를 불태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심판의 불은 영원토록 불경건한 자들을 불태울 것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지체하지 마십시오. 원하시는 대로 야생동물이나 불을 지피십시오. 무엇을 명하시든지 저는 결코 저의 주님이신 구세주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을 피우기 위해 건초들을 놓는 것을 보자 폴리캅은 옷을 벗고 신발을 벗었다. 장작더미에 세워둔 기둥에 그의 손에 못을 박으려 하자 저항하지 않고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에 사형관들도 감동을 받고 못을 박지 못하고, 줄로만 그의 손을 뒤로 묶었다. 그리고 불을 지피고 화염이 치솟자, 폴리캅은 외쳤다. ‘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아들의 아버지시여!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나신 당신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영원하신 제사장, 사랑하신 성자, 그리고 성령님께 영광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이 기도가 끝나자 화염은 그를 삽시간에 불태웠다. 이때가 약 168년이었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두 번째가 수도인 앙카라, 세 번째가 이즈미르인데, 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가 바로 이즈미르이다. 이즈미르에 폴리캅 기념 교회가 있다. 교회 내부에는 폴리캅의 생애와 관계된 성화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19세기말에 교회를 수리할 때 프랑스의 화가 레이몽 페레(Raymond Pere)가 그린 그림들이다.
벽화 중에는 폴리캅의 순교 장면을 그린 그림도 있다. 불길에 싸인 폴리캅을 향해 칼을 든 사람이 다가서고 있고, 그런 중에도 폴리캅은 평온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그림 한쪽 구석에는 손이 묶인 사람도 있다. 폴리캅에 이어 처형될 사람이다. 폴리캅의 순교는 실제 상황이지만 폴리캅에 이어 다음 사람이 차례를 기다린 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렸느냐 하면, 그린 사람 마음이다. 그 사람은 레이몽 페레 자신이다. 레이몽 페레가 자신을 폴리캅에 이어 순교할 사람으로 그렸다고 한다. 만일 내가 '레이몽 페레'처럼 화가가 되어 당시 '폴리캅의 순교 장면'을 그렸다면, 나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결론. 순교의 신앙 따라서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No Cross, No Crown”(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이라는 격언이 있다. 누가 고난을 즐겨 하랴마는 죽음의 고통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얻는 것이 기독교적 역설이요 신비이다.
-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
♬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에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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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