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하나님의 계획, ‘‘나를 향한 창조주의 위대한 설계도’
들어가기(서론): DESTINY(테스티니): ‘인생의 길을 묻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서 살고 있는가?” “인간은 왜 사는가?” “나는 지금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혹시 대답이 막연하거나 망설여진다면 당신은 이 서평을 끝까지 읽으시기를 강권하고 싶다. 모든 해외 선교교사들, 목회자들, 신학교 교수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
“내 인생에 대한 평가, 내 생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그 기준과 정의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창조주가 계신 것을 기억하라. 저자는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하얀 캔버스 위에 누가 더 화려한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창조주가 디자인한 설계도에 더 가까운 인생을 살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나를 유일하고 독특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 만을 위해 디자인하신 ‘데스티니의 길’에 들어서도록 촉구한다”. (책 앞날개) 출판사는 본서의 저자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너의 성공은 네가 성공시킨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는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 내가 성공하기보다 너를 성공시키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 사람이다. 자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선포하고, 그 데스티니를 이루어 가도록 돕는 데스티니 메이커로 사역하고 있다. 이렇듯 그는 연합의 비밀을 아는 자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서로에게 요나단이 되어 줌으로 다윗의 데스티니를 축복하는 자가 되는 것,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함께 ‘하나의 데스티니’를 이루어가는 것이라는 데스티니의 비밀을 풀어낸다” (앞날개)
<데스티니그: 하나님의 계획>(고성준, 규장, 2021, 초판 16쇄). 고성준 목사는 서울대 수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했다.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어 미국 UC버클리 수학박사(Ph.D). 대전침례신학교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M. Div). 수원하나교회 담임, 컴미션(Come Mission)국제이사. 시대적 통찰과 선교 전략적 혜안을 가진 선교사이기도 하다.
본서 목차는 1부: ‘데스티니란 무엇인가?’ 2부: ‘데스티니를 이루려면?’ 3부: ‘데스티니 모델링’이다. 서평자는 먼저 데스티니란 무엇인가를 요약하며 본서에서 소개하는 데스티니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 성경의 데스티니의 멋진 모델링을 중심으로 간단히 서평 할 것이다.
1. 나의 ‘데스티니’는 무엇일까? “나를 향한 창조주가 디자인한 위대한 설계도”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명확한 설계도와 목적이 있다. 따라서 자신의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이루어 갈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하다. 그렇다면 ‘나의 데스티니’가 궁금해진다. 데스티니(destiny)란 무엇일까? ‘DESTNY’는 ‘운명/소명/부르심/목적’으로 번역된다. 불교와 유교 문화 속에서 형성된 한글에서 꼭 맞는 단어가 마땅치 않다. 서구 기독교 문화속에서 destiny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뜻이다. 에베소서는 이에 대해서 선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데스티니가 있다. 에베소서 1장 11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향해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특별한, 아주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우리 삶에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명확한 설계도가 있고 목적이 있다. 우리의 삶에는 우연의 연속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연의 산물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우리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의 잔인한 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넘치는 계획이다” (p. 34, 데스티니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디자인하신 인생설계도).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데스티니를 알지 못한 사람은 인생이 공허하고 허전하다. 돈을 많이 벌고 명성을 큰 성공을 거두어도 “이게 다가 아닌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뼈저리게 경험하며 자신의 데스티니를 발견하였다. 서울대학교(수학과) 졸업하면서 영적 침체가 찾아왔다. 그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어려서 부터 꿈꾸었던 미국 유학(버클리 박사과정 입학)도 성공적이었다. 국비유학생이라 재정적 부담도 덜었다. 군대문제도 석사장교 6개월복무로 해결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완벽해 보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2% 부족을 느꼈다. 대학입학 후에 찾아왔던 깊은 허무를 경험하였는데 그것과 같은 종류의 목마름이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닌데… 뭔 가가 내 인생에 빠져 있는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쟁이가 되어도 자신의 데스티니를 알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 형통하고 순탄한 듯하여도 여전히 2프로 부족함을 느낀다. 나를 향한 창조주의 설계도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어 갈 때 비로소 진정한 만족과 행복감을 맛보게 된다.
- ‘데스티니는 사람마다 다르며 당신의 생각보다 더 크다’
모세는 나이가 80이 되었을 때 떨기나무 사이에서 창조주의 계획을 들었다. 이집트 노예생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케하는 것이 그의 데스티니였다. 모세의 반응을 우리는 안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압제 아래서 좁디좁은 포도주 틀에서 밀타작을 하고 있을 때, “큰 용사여!” 소리를 들었다. 성경의 인물들 아브라함/다윗/예례미아/이사야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데스티니를 깨닫고 나서 첫번째 반응은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이었다.
데스티니의 특징은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자기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대는 항상 비현실적(?)으로 크다. 내 아이는 뭔가 특별한 것 같고 특별한 인생을 살기를 기대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육신의 부모님의 기대보다 더 선명하고 크다. 황당해하는 모세와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3:12)
“여화와께서 그(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삿6:16)
모세와 기드온을 부르신 하나님은 저들에게 데스티니를 주셨고 그들과 친히 함께 하심으로온전히 그 데스티니 이루셨다. 당신의 데스티가 너무 크다고 당황하지 말라. 당신의 데스티니는 하나님의 의지 때문에 반드시 이루신다.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서평을 읽고 있는 당신의 데스티니는 무엇인가?” 언제 한번이라도 하나님께 물어보았는가?
“불행한 것은 이 데스티니를 충만하게 살아간 사람이 생각보다 소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데스티니를 보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인생을 다른 곳에서 낭비하며 산다. 사회가 정해 놓은 규격을 따라 ‘규격품 인생’이 되려고 애쓰는 사이에 데스티니는 지나가 버린다. 사실은 이것이 우리 인생이 불행한 진짜 이유다”. (pp. 45-46)
- 데스티니에는 돌파의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데스티니는 ‘나의 비전’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어떤 장벽도 하나님 앞에 장벽일 수 없다. 누구든지 데스티니의 길에 들어서면 장벽은 무너진다. 여기서 저자(고성준 목사)의 개인 간증은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하다.
저자는 한 번도 목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려서 부터 말을 심하게 더듬었기 때문이다. 수학교수가 되기를 원한 것도 최대한 말을 안 하고 살 수 있는 직업이 수학자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소원과 교수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모순된 두 감정이 늘 공존하였다.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하는 것이 어려서 부터 가장 큰 기도 제목이었다.
저자는 미국 유학중에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수학박사를 취득한 후 귀국. 국비유학 규정 때문에 3년 동안 한국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평신도 집사에게 개척한지 1년 도 안 된 교회를 3년간 교회를 섬겨 달라는 당황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기도원에 오르며 초자연적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말씀해 주시면 순종하겠다고 다짐하였다. 3일째 되는 날 하나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선명하고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를 향한 나의 계획(데스티니)은 네가 선교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남아 새로운 세대인 다음 세대 청년들을 준비시켜 선교지로 들여보내는 것이다”(p. 53)
“데스티니에는 돌파의 능력이 있다. 나는 교회를 맡기로 결정하고 기도원을 내려왔다. 급하게 신학교에 입학하고, 전도사로 개척교회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3년간의 복무 의무 때문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까지 병행하면서 말이다” (pp. 53-54)
첫 설교를 하기 전날 불안한 마음으로 밤새 씨름기도를 했다. 날이 밝으면서 애원기도를 올렸다.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섰을 때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35년간 기도했던 기도제목 말더듬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이후 지금까지 16년 동안 수없이 강단에 서면서 한 번도 말더듬는 것 때문에 방해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치유하신 것이다”
2. 데스티니를 이루려면? ‘데스티니는 분명 계시의 영역’이다
‘우리를 만드신 분을 만나라’/’순종, 장벽을 부수다’/’거룩함을 지켜라’/’하나님께 들으라’/’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이 5가지지 꼭지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를 만드신 분을 만나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인생을 디자인하신 분의 설계도를 따라 사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아무도 복제 불가능한 존재로 만드셨다. 사탄은 계속 하나님의 심어 놓으신 놀라운 축복의 비밀들을 보지 못하게 훼방한다. 그것은 ‘팔자야’ 하며 불평/원망하게 하며 고통이 쌓여가게 한다. 데스티니는 계시의 영역이다. 주어진 환경·여건·불행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 뜻이 있음을 깨닫기까지 계속 기도와 말씀의 자리, 성령님을 깊이 만나는 자리로 나아가라. 이것이 핵심이다.
요한복음 9장은 날부터 맹인인 긴(41절) 스토리다. 그 주인공이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순종, 장벽을 부수다: 데스티니를 가로막는 장벽은 반드시 기도와 순종으로 깨부수어야 한다. 그 비결은 ‘순종’이다. ‘오로지 순종’. 하나님의 계획을 막는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 한국(교회)의 데스티니는 기도다. “주여!” 삼창하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오직 한국뿐이다. 새벽기도/산기도/철야기도/통성기도/수요기도 수많은 기도의 문화가 한국교회의 데스티니다.
서평자는 전 세계 선교현장을 둘러보았다. 통성기도, ‘Korean style prayer’하는 민족은 한국뿐이다. 6,70년, 80년대 대한민국의 맹렬한 기도운동은 가난의 장벽이 무너졌다. 절망의 홍해바다가 갈라졌다. 일부 신학자들 ‘기복신앙’이란 성급한 비판은 옳지 않다.
거룩함을 지켜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데스티니를 100% 다 이루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 외에는 없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엄청 크기 때문이다10%, 20%...사람마다 어디까지 데스티니를 이룰 것인지는 다 다르다. 그것을 거룩함에 달려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고 곧 이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들어간다. 곧 하나님과 친밀함이 열쇠이다. 왜 예수쟁이가 힘이 없는가? 능력이 없는가? 거룩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다.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흰옷 입은 주의 백성이 되라.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들어가는 열쇠이다.
하나님께 들으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데스티니를 알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을 결코 ‘기계적인 청음(聽音)’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청취(聽取)’이다. 설교자/간증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할 때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데스티니를 ‘알게 되는 것’과 그것을 ‘살게 되는 것’은 다르다. “나의 데스티니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해도 선택과 헌신, 순종과 도전, 믿음과 안내,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이 없다면 데스티니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p. 94) 삶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 성경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열정, 삶의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열망과 겸손이 있으면 우리(나)의 데스티니는 이루어진다. 서평자도 최근에 이런 체험을 생생히 경험하였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이성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말씀하실 수 있다. 우리의 신학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2005-6년 겨울에 안식월을 맞아 미국의 한 도시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귀로 듣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말씀하셨다.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 이 들을 섬기라는 말씀! “마치 중동 땅 한 가운데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언했던 다니엘처럼, 하나님은 중동이 내게 주신 유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내게 ‘다니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다니엘이라 부르시는 신기한 경험을 한 것이다!” (p. 105, “여호와와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taste and see)” 체험해야 안다)
3. 데스티니의 모델링: 요셉; 믿음, 인내 그리고 총리 본능
성경의 인물들 중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데스티니의 여정을 모델링해보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3-4, 티스티니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인내의 역할 주목하라)
환난(어려움/고통/원치 않는 상황)·인내(믿음/견딤/충성)·연단(검증된 인격)· 소망(꿈/비전/데스티니) 요셉의 데스티니는 정확하게 이 공식에 따라 사는 인생이었다.
“하나님 안에 우연은 없다. 절대로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서는 것. 태어나고 죽는 것, 웃고 우는 것,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이끄시는 분이시다. 당신이 태어난 환경, 불우한 사건들, 정말 우연일까? 재수 없던 일일까? 아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재수가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애굽의 총리 요셉’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다. 데스티니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믿음이다. 하나님 안에 우연은 없다. 그분은 내 인생을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붙잡고 계신다”. (p. 122, 하나님 안에서는 ‘필연’만 있다)
요셉은 어디에 있든지 그의 영적 DNA, 데스티니가 발현되었다. ‘요셉의 총리 본능’. 그는 어디에 가든지 총리였다. 주인에게 전권을 위임 받아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야곱의 집집 있을 때/보디발의 집에서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서도… 요셉은 뼛속까지 총리였다. 환경 때문에 막힌다면 데스티니가 아니다. 요셉의 ‘총리질’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우리의 데스티니는 ‘하나님나라의 총리다’
모든 예수쟁이에게 요셉의 총리 본능, DNA가 각인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먼저, 주인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충성되어야 한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고전4:2).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탁월함이 필수이다. 탁월함은 좋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충성됨에서 나온다. 충성된 자는 좀더 잘 섬기기 위해 그 일을 연구한다. 진력하여 노력한다.
하나님은 그 위에 축복하신다. 충성하는 요셉을 범사에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창39: 3, 5, 21, 23) 하나님의 총애(favor)가 부어진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favor다. 이것이 있으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나가는 말(결론): “’나의 데스티니’를 ‘알게 되는 것’과 ‘살게 되는 것’은 다르다”(고성준)
“창조주께서 ‘나’만을 위해 다자인하신 길이 있다! 경쟁의 길에서 벗어나 안식하고 자유 할 수 있는 길! 삶의 의미와 행복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길!” 나의 데스티니의 길을 걸아가자!
“경쟁에서 이기지 않아도 괜찮은 나만을 위한 길,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을 위한 길이 있다.” 한국인은 엄청난 ‘경쟁 전쟁터’에서 산다. ‘나의 데스티니’를 바로 알고/살자!
데스티니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맞물려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이 시대의 무대의 주인공 자리에 올리신다. 하나님이 쓰시는 자는 His story가 자기 인생(my story)인 사람 곧, 하나님의 나라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인 자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시대를 이해하는 자를 찾으신다. 데스티니는 개인적이면서 아울러 공동체적이요 시대적이기 때문이다.
“데스티니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훈련하고 준비했을 때 이루어진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운이 아니었다. 양을 치면서 사자와 곰을 물리쳤던 그 부단한 훈련이 다윗을 왕의 데스티니로 이끌었다. 훈련하라. 바울도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다소에서 10(14)년의 준비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하나님은 준비된 만큼 바울을 사용하셨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훈련하고 준비했다. 심지어 예수님도 공생애 전 오랜 시간을 준비하셨다. 준비와 훈련을 간과하지 말라.” (<하나님의 마스터플랜>(고성준, 크리스챤임타스, 2026) p. 195)
서평후기
4년전 영국에 정착하면서 유튜브에서 고성준 목사님의 설교를 우연히(?) 들었다. 곧바로 열정 펜이 되었다. 아내는 벌써 수년째 새벽기도(6시) 가기 전부터 운동하며 고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둘째 아들 목사가 ‘제2의 고성준 목사님’이 되게 기도하고 있다. 그는 목사이자 시대적 통찰과 선교 전략적 혜안을 가진 선교사이기도 하다. 수원하나 교회는 5개 네트워크 교회와 10여 개국에 선교사를 공동 파송하고 있는 미셔널 처치이다.
2009년 다니엘과 같은 다음 세대를 키우는 대안학교인 ‘다니엘 아카데미’, 선교사를 훈련하는 ‘다니엘 훈련학교(Daniel School of Ministry)를 시작했으며 이슬람 사역, 연합과 네트워킹을 통한 영향력, 선교적 리더십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금년(2026) 봄 한국방문 중에 수원하나교회 금요기도모임에 참석하였다(3월 6일). 입추의 여지없이 수많은 젊은 청년들의 기도의 열기가 후끈하였다. 고성준 목사님, 사모님께 인사했을 때, 본서를 선물 받았다.
이 서평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곧바로 유튜브에서 ‘고성준 목사’ 설교를 듣기를 강추한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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