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제프 파운틴 작가의 기고글인 ‘발밑에서 만나는 놀라운 세계’(The wonder beneath our feet) 8월 2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제프 파운틴 작가는 슈만 유럽 연구 센터(Schuman Centre for European Studies)의 창립자이며 1990년부터 YWAM 유럽의 이사로 재직하며,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변화된 정치 환경에서 활동해왔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다음에 자연 속을 걷게 된다면 맨발로 흙을 밟아보라. 손으로 흙을 한 움큼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 안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아니면 그저 생명 없는 물질처럼 보이는가.
우리가 흙을 만질 때 사실은 매우 오래되고도 놀랍도록 생명력 넘치는 세계를 만지고 있다. 겉으로는 단단하고 무생물처럼 보이지만, 방금 손에 올린 한 줌의 흙 속에는 엄청난 수의 미생물이 살아간다. 조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건강한 토양 한 줌에는 지구 전체 인구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미생물들은 유기물을 분해하고 영양분의 순환을 돕고, 식물의 성장을 지원하며, 탄소를 저장하는 등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강한 토양이 없다면 식량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어렵고, 숲과 초원, 농작물과 꽃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 역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인간은 과도한 경작과 산림 벌채, 오염 등을 통해 토양을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살아 있는 생태계를 단순한 ‘먼지’나 ‘오물(dirt)’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결국 흙을 돌본다는 것은 지구를 돌보는 일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자체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구(Earth)’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주를 도는 행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 발밑에 있는 흙과 돌, 모래와 점토를 뜻하기도 한다. 또 그 위에 펼쳐진 숲과 산, 강과 계곡, 그리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생태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의미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중요하며, 모두 놀라운 현실이다.
우리는 그 위를 걷고, 거기서 양식을 얻으며, 그 위에 집과 도시를 세운다. 그러나 정작 ‘지구’라는 이 고요한 기적을 멈춰 바라보는 데는 인색하다. 지구는 우리 행성의 이름이자 발밑의 물질이고, 우리의 삶이 시작된 터전이며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하는 기반이다.
달의 표토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달의 흙에는 지구의 토양과 같은 풍부한 유기물과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이나 위성 역시 고도의 기술적 개입 없이 지금의 지구처럼 자연스럽게 농업과 식물 생장을 지속하기 어렵다. 액체 상태의 물과 대기, 적절한 온도 조건이 함께 존재하는 지구는 적어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범위에서 매우 특별한 행성이다.
중력(Gravity)
지구의 특징 가운데 가장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가장 필수적인 것 중 하나는 질량이 만들어내는 힘, 곧 중력이다. 중력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의미에서 어느 것도 제자리에 머물 수 없다. 바다의 물도 행성 표면에 머물기 어렵고, 대기를 붙잡아둘 수도 없으며, 우리가 걷고 뛰고 건물을 세우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중력은 우리에게 무게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안정성을 제공한다. 지표면에 몸을 붙잡아 두고, 건물의 기초가 제 역할을 하게 하며,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도록 돕는다. 지구와 달, 태양 사이의 중력 관계는 조수 현상과 천체의 궤도 운동을 형성하며, 일식과 같은 천문 현상 역시 이러한 정교한 운동의 결과로 나타난다.
지구의 질량은 약 5.97 × 10²⁴kg이다. 이 질량과 크기는 대기를 유지하고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성과 같은 더 작은 행성은 상대적으로 중력이 약해 대기를 장기간 붙잡아 두는 데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반대로 목성과 같은 거대 행성은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서 있을 수 있는 단단한 표면도 없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조건이 독특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 몸 역시 지구 중력에 맞춰 살아가도록 적응돼 있다. 걷고 뛰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모든 순간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힘과 상호작용한다. 중력은 근육과 뼈가 유지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기간 미세중력 환경에 머무르면 근육량과 골밀도가 감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몸이 지구 환경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공중을 자유롭게 떠다니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몸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대지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다.
흙의 사람들(Earthlings)
우리는 지구와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물질도 결국 이 지구에서 왔다. 많은 원주민 문화가 지구를 ‘어머니 대지(Mother Earth)’라고 부르는 것도 인간이 자연과 맺는 깊은 의존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지구는 신적인 존재로 숭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 세계를 향해 반복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선언한다. 그렇기에 땅은 단순히 인간이 마음껏 소비하고 버릴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 존중하고 돌봐야 할 창조 세계의 일부다.
지구의 지각은 지구 전체 크기에 비하면 매우 얇은 층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 문명의 대부분은 바로 이 얇은 표면 위에서 이루어졌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입는 옷, 사용하는 도구와 기계, 집과 도시를 이루는 재료까지 대부분 이 땅과 그 자원에서 비롯됐다. 우리의 몸 역시 물과 광물질, 유기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죽은 뒤에는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창세기에서 인간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아담(adam)’은 땅이나 흙을 뜻하는 ‘아다마(adamah)’와 언어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인간이 흙에서 지음 받았다는 창세기의 이미지는 우리가 얼마나 땅에 의존적인 존재인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문자 그대로 ‘어스링(earthlings)’, 곧 지구에 속한 사람들이자 흙의 사람들이다.
우주 비행이라는 극히 최근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사건은 지구 표면의 매우 좁은 범위 안에서 벌어졌다. 노동과 예배, 공부와 사랑, 출산과 여행, 전쟁과 글쓰기, 거래와 비즈니스까지 인간의 역사는 사실상 모두 이 땅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식탁에 앉을 때 잠시 멈춰 생각해 볼 만하다. 눈앞의 빵과 채소, 과일과 곡식 대부분은 결국 지구 표면의 얇고 비옥한 토양에서 비롯됐다. 히브리 전통의 식전 기도에는 이러한 감사가 담겨 있다.
“우주의 왕이신 주 우리 하나님, 땅에서 빵을 내어주시니 송축하나이다.”
우리가 먹는 한 끼의 식사는 그저 허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흙과 물, 햇빛과 생명, 그리고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수많은 조건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그 사실을 제대로 바라본다면 매 끼니는 우리 안에 감사뿐 아니라 깊은 경이로움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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