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마침내! 하나님이 때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Finally! A satisfying answer to why God sometimes seems absent)을 4월 1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삶의 기쁨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이 쉽게 털어놓지 않는 더 조용하고 불편한 현실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오히려 하나님이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이다.
이런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 역시 그렇다. 첫째 딸이 선천성 횡격막 탈장이라는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던 밤, 필자는 그 감정을 깊이 경험했다. 몇 달 동안 안전하고 건강한 출산을 위해 기도했지만, 아이의 생명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필자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딸을 뒤로하고 텅 빈 아기 방에 서서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첫 번째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어린 딸과 아버지를 남겨둔 채 하나님이 떠나신 것처럼 보이는 순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두 번째 아내가 유방암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다시 같은 감정이 밀려왔다. “정말 또입니까?” 이것은 추상적인 신학적 질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실제 삶의 경험이다.
C.S 루이스(C. S. Lewis)는 기도에 관한 한 에세이에서 이러한 긴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가장 충실히 섬기는 사람들을 버리시는가? 하나님을 가장 완전하게 섬기신 분께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을 때, 그분은 가장 큰 필요의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위로를 받지 못한 분이었다. 여기에는 하나의 신비가 있으며, 설령 탐구할 능력이 있다 해도 그것을 탐구할 용기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신비”는 흔히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이라는 표현으로 불린다. 이 표현은 John of the Cross 의 시에서 유래했으며, 혼란과 영적 메마름, 그리고 하나님이 떠나신 것처럼 느껴지는 깊은 고독의 시기를 설명한다.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역시 이러한 경험을 겪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 영혼 속에서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다. 내 안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고통이 너무 커서 계속 하나님을 갈망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다. 천국, 영혼… 이런 것들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내 삶 전체가 모순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영적 약함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피하려 하는 깊은 정직함의 표현이다. 이러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때때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이다.
선의를 가진 신자들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며 시편 37편 25절이나 마태복음 28장 20절과 같은 말씀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때로 이렇게 들릴 수 있다. 하나님이 멀게 느껴진다면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는 의미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처받은 영혼 위에 또 다른 죄책감을 얹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떨까?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라면 어떨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두 번째 단계 — 믿음이 성숙해지는 과정
찬송가 ‘Amazing Grace’를 작곡한 목회자 존 뉴턴(John Newton)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 단계로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가복음 4장 28절 말씀인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라”를 바탕으로 이를 A, B, C 단계로 구분했다.
A단계는 영적 유아기다. 모든 것이 생생하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시기다. 기도는 즉각 응답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은 매우 가까이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 뉴턴은 이 시기를 목자의 팔에 안겨 있는 상태에 비유했다. 안전하고 따뜻하며 끊임없이 위로받는 상태다.
그러나 B단계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뉴턴은 A단계에서 시작된 믿음이 더 강해지면서 더 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A단계의 특징을 ‘갈망’이라고 표현했고, B단계의 특징을 ‘갈등’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기에는 더 깊은 시험과 더 강한 도전이 찾아온다. A단계의 신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경험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믿음은 점점 단단해지지만, 감정적인 기쁨은 줄어든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순간은 간헐적이 되고 때로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팀 켈러(Tim Keller)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린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손을 잡고 길을 건너게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모는 한 걸음 물러서며 말한다. “이제는 네가 스스로 건너야 한다.” 켈러는 하나님이 자신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하실 때, 그것은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걸어갈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버림이 아니라 성장이다. 영적 유아는 끊임없는 확신을 필요로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은 그렇지 않다.
뉴턴과 켈러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사실은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하나님을 항상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영적 성장의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이다.
B단계는 영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법을 배우는 시기다. 하나님의 임재가 언제나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믿음으로 붙들어야 하는 대상임을 배우는 과정이다.
결국 뉴턴은 C단계가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이 단계에서는 삶이 더 쉬워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감정에 의존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믿음이 안정된다. 침묵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사도 요한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자들”(요한일서 2장 13절)이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런 상태다. 따라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고 기도가 천장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일 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믿음이 자라고 있는 과정일 수 있다. “우리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모든 일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에베소서 4:14-15).
다시 말해,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믿음이 자리 잡도록 감정에 대한 의존을 내려놓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다. 다만 잠시 동안 손을 잡지 않고 걸어가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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