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존 스톤스트리트 회장의 기고글인 ‘부활절은 정말 이교적 기원을 가진 절기인가?'(Is Easter a pagan holiday?)를 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스톤스트리트 회장은 콜슨 기독교 세계관 센터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신앙과 문화, 신학, 세계관, 교육 및 변증법 분야에서 인기 있는 작가이자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거룩하고 기쁜 절기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부활절과 그에 따른 여러 전통이 고대 이교도의 봄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과연 부활절은 이교적 기원을 가진 절기일까.
이 논의의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8세기 영국의 수도사 베다(Bede)다. 그는 저서 『시간의 계산(On the Reckoning of Time)』에서 “Eosturmonath(에오스투르모나스)”라는 달의 이름이 ‘에오스트레(Eostre)’라는 여신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여신을 기리기 위한 축제가 그 달에 열렸다고 기록했다. 이후 일부 현대 이교주의자들은 이 주장에 근거해 에오스트레를 앵글로색슨의 봄과 다산의 여신으로 연결했고, 더 나아가 게르만 신화의 ‘오스타라(Ostara)’와 동일한 존재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이론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이교 신앙에서 돌이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독교 절기 중 하나가 이교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욱이 에오스트레라는 여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기록은 베다 외에는 발견되지 않으며, 오스타라라는 게르만 여신에 대한 역사적 증거도 없다. 또한 ‘Easter’라는 명칭은 영어권에서만 사용되며, 독일어의 ‘Ostern’ 정도가 유사한 형태를 보일 뿐이다.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등 다른 게르만 언어에서는 부활절을 의미하는 단어가 대부분 ‘파스카(Pascha)’ 혹은 유월절(Passover)에서 유래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가 앵글로색슨이나 게르만 민족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부활절이라는 이름이 이교적 기원을 가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베다가 민속적 어원에 근거해 추정했거나 단순히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부활절 명칭의 기원은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초기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기 전 충분한 교육을 받은 새 신자들이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이들은 세례 후 흰 옷을 입었기 때문에 부활절 주일은 ‘도미니카 인 알비스(Dominica in albis)’, 즉 ‘흰 옷의 주일’로 불렸다. 이때 사용된 ‘알비스(albis)’가 ‘새벽’을 뜻하는 ‘알바(alba)’의 복수형으로 오해되었고, 이후 고대 고지 독일어에서 ‘에오스타룸(eostarum)’으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오늘날의 Easter와 Ostern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활절이 이교적이라는 주장 가운데 또 하나 자주 언급되는 요소는 토끼와 달걀 같은 전통이다. 일부에서는 이것들이 고대 다산 숭배의 상징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역사적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오히려 이러한 전통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것이다.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에서 성도들은 부활절 이전의 사순절 기간 동안 금식을 했으며, 특히 달걀을 먹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닭은 계속 알을 낳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낳은 달걀은 특별하게 여겨졌고 ‘거룩한 달걀’로 불렸다. 달걀을 장식하는 관습은 13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유럽이 이미 오래전에 이교 신앙에서 벗어난 이후의 일이다. 달걀은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모습이 무덤을 깨고 나오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이해되었다.
토끼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중세 시대에 토끼는 순결하고 온순한 동물로 여겨졌으며, 때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토끼가 부활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토끼 전통을 고대 이교 풍습의 잔재로 보는 것은 역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부활절의 기원을 이교 신화와 연결하려는 또 다른 시도는 고대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탐무스(Tammuz)와 이슈타르(Ishtar)의 이야기를 근거로 삼는다. 이 신화는 겨울의 죽음과 봄의 생명을 설명하는 자연 순환 이야기로, 두 존재가 일정 기간 지하 세계에 머물다가 봄이 되면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수님은 단 한 번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 부활은 반복되는 자연 순환의 일부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고대 신화들은 기독교와 반대 방향의 관계를 가질 수도 있다.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하나님께서 이방 세계 속에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이야기들을 남겨 두셨다고 설명한다. 그는 여러 문화 속에 나타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 이야기가 인간에게 주어진 일종의 예고편과 같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신화가 부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부활 사건이 신화 속에 희미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부활절은 이교적 기원에서 비롯된 절기라기보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상징이나 신화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 사건이며, 그 의미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부활절은 단지 토끼와 달걀의 축제가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뻐하는 날이다. 할렐루야의 찬양과 감사, 그리고 기쁨으로 기념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