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다니엘 9장, 갈라디아서 4:4)
다니엘서 9장은 거대한 제국의 교체기 속에서 시작된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에…”(단 9:1). 바벨론은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러나 바벨론 궁정의 고위 관리였던 다니엘의 시선은 정치 권력의 이동이나 자신의 안위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펼쳐들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읽어냈다.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끝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렘 25:11).
하나님의 때를 깨달은 다니엘은 시대 변화에 맞추어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의 기도는 개인의 경건에 머무는 기도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한 사람의 죄만이 아니라 민족의 죄를 함께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였고 패역하였으며…”(단 9:5). 다니엘의 기도는 공동체의 죄를 대신 자백하는 통렬한 중보의 기도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런 기도에서 시작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 왕 고레스(Cyrus the Great)는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라는 칙령을 내린다(스 1:1-4).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제국의 정책 변화요 국제 질서의 재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단순한 정치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때의 성취로 해석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미 두 세기 전에 고레스의 이름을 언급하며 하나님이 그를 자신의 “목자”로 사용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44:28, 45:1-4).
그런데 다니엘 9장에서 하나님의 응답은 단지 포로 귀환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멈추지 않는다. 천사 가브리엘은 “칠십 이레”의 예언을 통해 더 크고 깊은 구속의 시간을 보여 준다(단 9:24-26).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70이레 곧 더 긴 구속사의 시간표를 여신다. 그리고 그 끝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나며, 결국 “끊어질 것”이라는 말씀이 놓여 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말씀을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하여 이해한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붙들었던 70년의 예언은 단지 유대 민족의 귀환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메시아의 오심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시간표였던 셈이다. 이것이 바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갈 4:4)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역사를 단지 정치 권력의 흥망성쇠 속에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구속 계획을 따라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세상의 나라는 일어나고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세대를 넘어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정치적 사건 너머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읽어야 한다. 참된 신앙은 시대를 외면하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시대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영적 통찰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3·1운동 역시 단순한 정치적 독립운동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오랜 회개와 기도, 신앙적 각성과 맞물려 이 민족의 역사에 하나님이 개입하신 사건이다. 특히 1907년 평양 대각성운동은 민족적 회개와 영적 각성을 불러일으켰고, 훗날 민족의 자유를 향한 의식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다니엘이 민족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자비를 구했던 모습과도 너무나도 닮았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단순히 정치적 해방만을 꿈꾼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강대해 보이던 제국의 몰락 속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세우는 때를 여신 것이다.
다니엘서 9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역사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보는가. 정치 권력의 움직임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때인가. 다니엘은 제국의 고위 관리였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있었다. 그는 바쁜 공무 속에서도,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는 위협 앞에서도,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고 기도했다(단 6:10). 그는 말씀으로 시대를 해석했고, 기도로 하나님의 때를 준비했다.
가이사의 법은 세상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역사의 궁극적 목적을 향해 인간을 이끈다. 다니엘서 9장이 보여주는 진실은 분명하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정한 변화를 준비하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때를 기도로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70년의 끝에서 70이레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긴 시간의 끝에서 메시아가 오셨다(갈 4:4). 인간이 세운 제도와 법은 사라져도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진정으로 준비하는 사람은 세상의 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시대를 분별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다니엘처럼 국가와 민족의 회복뿐 아니라, 죄와 악한 권세 아래 묶인 모든 사람의 참된 해방을 가져올 메시아의 때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 가운데 더욱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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