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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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랭커스터에 있는 웨스트사이드크리스천펠로우십(Westside Christian Fellowship) 교회의 창립자이자 담임인 셰인 아이들먼(Shane Idleman) 목사의 ‘기도는 취미가 아니다-당신의 생명줄이다’(Prayer is not a hobby — its your lifeline)는 제목의 글을 소개했다. 아래는 그 주요 내용.

언젠가는 모든 신자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전략도 통하지 않고, 어떤 인맥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바로 그때 우리의 신학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게 말만 하고 있는가? 위기가 닥칠 때 먼저 나오는 것은 기도인가, 아니면 통제하려는 시도인가?

사도행전 12장에는 이러한 긴장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있고, 교회는 그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교회는 결과를 알지 못하고,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거부한다.

이 본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이 우리를 직면하게 한다. 우리는 분석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을 선호한다. 분명한 해결책과 눈에 보이는 진전을 원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12장은 그런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베드로를 구출하려는 계획도 없고, 헤롯과 협상하려는 시도도 없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교회는 목사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다. 완전히 통제권이 없는 불편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기도였다. 그것은 마지막 수단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남는 유일하게 정직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삶이 통제되지 않을 때, 신자의 반응은 공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지속적인 기도다.

기도는 비상용 도구가 아니다

“비상시 깨시오”(In Case of Emergency, Break This)라는 표현은 기억에 남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기도는 삶이 무너질 때만 꺼내 쓰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는 꾸준한 심장박동과 같다. E. M. 바운즈는 “기도가 멈추면 믿음도 멈춘다”고 말했다. 기도는 단순한 영적 장식이 아니라, 고통과 문제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를 붙드는 생명줄이다.

사도행전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지속적인 기도’라는 표현은 중요하다. 성경은 기도를 가벼운 생각이나 공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씨름하고, 애쓰고, 간절히 구하는 것으로 말한다. 기도는 영적인 저항이다. 집중을 방해하는 것, 육체의 욕망,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 맞서는 싸움이다.

성경에서 기도는 한 번 하고 끝내는 행동으로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태도로 제시된다. 사도행전 12장의 교회는 가끔 기도한 것이 아니라,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모든 시간을 다스리신다면, 기도는 위기 때만 사용하는 탈출구가 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모든 순간이 이미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 기도는 어려운가

기도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독립적인 성향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자신의 힘에 의지하려 한다. 그러나 기도는 그 본능을 깨뜨린다. 우리의 필요를 인정하게 만들고, 우리의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영적 싸움일 뿐 아니라, 자기 의존성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기도는 단순히 조용한 몇 분을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저항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저항을 넘어서면 돌파가 있다. 육체의 게으름을 넘어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면 무언가가 바뀐다. 기도는 의무처럼 느껴지기보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필요하며 생명을 주는 것이 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더 종교적으로 되라는 뜻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과 자신 앞에서 더 솔직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의존적인 존재다. 삶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 자체도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기도는 그 사실을 다시 인식하게 해준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도를 막는 것들도 있다. 죄, 교만, 쓴 마음, 비판적인 태도 등은 마음을 굳게 만들고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멀어지게 한다. 병든 마음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피한다. 매튜 헨리는 “배교는 기도하는 자리에서 멀어질 때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찾는 삶을 길러야 한다.

세상이 우연에 의해 돌아간다면 기도는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인격적인 주권자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기도는 가장 합리적인 반응이다. 사도행전의 교회가 계속 기도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항상 계시고, 항상 일하시며, 항상 능력이 있으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끈질김은 불안이 아니라 신뢰였다.

기도를 무너뜨리는 것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부드러움 대신 냉소가 자리 잡고, 인내는 짧아지며, 기쁨이 사라진다. 마음은 불안하고 쉽게 짜증이 나며 영적으로 메마르게 된다. 기도를 잃어버리면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무언가를 잃게 된다.

이것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의도적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버리지 않는다. 칼을 갈지 않으면 무뎌지듯, 기도 생활도 방심과 타협 속에서 서서히 약해진다. 기도는 짧고 형식적으로 변하고, 성경 읽기는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는 일’로 일정을 가득 채우면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시간을 놓치게 된다. 겉으로는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내면에서는 하나님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회복될 수 있다. “주님, 다시 그것을 회복하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믿음으로 순종하기 시작하면 된다. E. M. 바운즈는 “사람은 더 잘 살면 더 잘 기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더 잘 기도하면 더 잘 살게 된다.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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