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어린 시절 공개 처벌과 잔혹한 폭력을 목격한 뒤 가족과 함께 탈출한 이란계 미국인이 최근 중동 갈등 상황 속에서도 이란의 지하교회와 연대하며 희망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아르민 아사디(Armin Assadi)는 현재 아내 애슐리 아사디와 함께 미국 미네소타주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1988년,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이란을 떠났다. 현지 언론 KMSP-TV 보도에 따르면 아사디 가족은 공개 채찍질과 정권에 의해 불태워진 남성을 목격하는 등 “수많은 잔혹 행위”를 경험한 뒤 탈출을 결심했다. 이들은 먼저 파키스탄으로 이동한 뒤 미국으로 이주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사디는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 충돌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 갈등은 지난 2월 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이란을 상대로 군사 공격을 단행하면서 촉발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여러 지도자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디는 지역 방송 인터뷰에서 “두려움과 슬픔, 애도와 상실감이 있지만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희망도 느낀다”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이란이 47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를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네소타에 있는 이란계 기독교 공동체가 이번 충돌 이전부터 이란 주민들을 위해 기도해 왔다고 전했다.
아사디는 “이 절박함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 문화는 이슬람 정권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 지하교회를 기리기 위해 우리는 그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군사 공격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하메네이가 “수백 명, 심지어 수천 명의 미국인의 피를 손에 묻힌 인물이며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지난 밤 이란 전역에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환호하고 축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밝혔다.
이후 갈등은 더욱 확대돼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스라엘과 걸프 지역 아랍 국가들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디 부부의 발언은 지난 2월 28일 애슐리 아사디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기도 요청 글이 확산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 우리 군대를 보호하시고 전쟁의 희생으로부터 이란 국민을 지켜달라.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슬픔에 잠긴 이들을 위로해 달라”고 적었다.
또 “지하교회를 강하게 하시고 전 세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룩한 부르짖음이 일어나게 하소서”라며 기도를 요청했다.
애슐리는 이란 국민들이 오랜 세월 사실상 전쟁 같은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란인들의 무기는 기도와 금식이었다”며 1970년대 후반 집권한 이슬람 정권이 시민들을 투옥하고 살해하는 등 수많은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목숨을 잃은 무고한 이들과 전쟁의 교차 속에 놓일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전쟁은 결코 가볍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슬픔 아래에서 또 다른 감정이 올라오고 있다”며 그것이 바로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애슐리는 남편의 어린 시절 경험도 추가로 공개했다. 그는 남편이 네 살 때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전했다.
애슐리는 “그는 나중에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 장면을 보았다”며 “군중의 혼란과 잔혹함을 목격했고 눈물을 닦는 사이 피가 튀는 상황 속에서 어린아이가 말 한마디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또 아사디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정권에 의해 불태워진 남성을 살리려 했던 경험도 있다고 한다. 애슐리는 공개 처벌과 이웃의 갑작스러운 실종이 많은 이란 가정에서 ‘일상적인 삶’의 일부였다고 전했다.
그는 “이란 국민들이 자유를 외친다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이 수십 년에 걸친 집단적 트라우마 위에 쌓인 절규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아들을 묻은 어머니들의 외침이자 침묵을 강요당한 아버지들의 외침이며 너무 빨리 성장해야 했던 아이들의 외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는 우리에게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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