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라라 딘의 기고글인 ‘2026년이 디지털을 벗어나 아날로그 삶으로 돌아가는 해가 될까?’(Is 2026 the year to go analoque?)를 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라라 딘은 2025년 ‘비잉 휴먼(Being Human)’ 프로그램의 졸업생으로서 복음주의 연맹(Evangelical Alliance)에 합류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창작 산업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미디어를 통해 삶의 중요한 질문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재능을 사용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요즘 필자의 소셜미디어 피드를 보면 같은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친구들이 하나같이 ‘아날로그 삶(analogue life)’을 실천하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SNS 계정을 잠시 닫고 디지털 세계 대신 물리적인 활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읽고, 스마트폰 메모 앱 대신 공책을 사서 글을 쓰며, 화면을 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취미 활동에 투자한다.
사실 이런 흐름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셜미디어의 즐거움과 흥분뿐 아니라 그 어두운 면까지 처음으로 경험한 세대인 우리는 이제 어느 순간 그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화면을 스크롤하며 수동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더 적극적으로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다. 진짜 중요한 것들과 연결된 삶을 원한다. 필자의 친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하고 있지만, 필자는 소셜미디어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세계와 아날로그 삶 사이의 이 긴장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
소셜미디어에서 로그아웃하는 것은 분명 여러 이점을 가져온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불안감이 줄어들며, 머릿속이 더 맑아지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의지력만으로 갑자기 SNS를 끊는다고 해서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조지타운대학교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칼 뉴포트(Cal Newport)는 그의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Digital Minimalism)』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한다. 그는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 30일간 소셜미디어를 완전히 끊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람들은 단순히 SNS를 끊은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다른 활동으로 채웠다. 친구들과 직접 만나 시간을 보내고, 예전에 즐기던 취미를 다시 시작하며, 하루의 생활 구조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피드에는 요즘 콘텐츠 창작자들이 ‘아날로그 활동’을 장려하는 영상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시에스 캠벨(Siece Campbell) 같은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소셜미디어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다양한 아날로그 활동을 권한다. 퍼즐이나 잡지, 뜨개질 도구 등을 담은 ‘아날로그 가방’을 만들기도 하고, 레고를 조립하거나 낙서를 하거나 일기를 쓰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이런 활동들을 좋아한다. 잠시 휴대폰에서 벗어나 이런 일들을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퍼즐이나 공예를 아무리 좋아해도 결국 어느 순간 다시 휴대폰으로 돌아가게 된다. 필자에게는 그보다 더 깊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세상에 물든 정체성과 피로함
필자의 정체성은 점점 세상에 물들어 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마음은 지쳐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소셜미디어를 완전히 끊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필자는 약 12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왔다. 처음에는 블로그로 시작했고, 이후 여러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작업 포트폴리오를 쌓아 갔다. 처음에는 매우 재미있고 실험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창작 산업에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생산성 경쟁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두 배로 열심히 일해도 결과는 절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모든 것의 기반에는 자신을 증명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자의 정체성은 점점 세상의 기준에 물들어 갔고, 결국 완전히 지쳐 버렸다. 그래서 SNS를 끊어 버리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을 통해 필자의 마음을 다시 다루기 시작하셨다.
소셜미디어가 만들어 준 공동체
아이러니하게도 소셜미디어는 필자에게 공동체를 만들어 준 공간이기도 했다.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기도 모임에 참여했고,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가 되었다. 또 서로의 기쁨을 축하하고 어려움을 격려하는 관계도 생겼다.
소셜미디어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복음 전도의 가능성이다. 오늘날 많은 Z세대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기독교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그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검색하고 탐색하며, 무엇인가 더 깊은 것을 찾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현대판 아고라(agora)와 같다. 이는 사도행전 17장 16–17절에서 바울이 경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바울은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고, 시장에서 철학자들과 유대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토론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곳은 사람들이 삶과 죽음, 인간의 운명에 대해 논쟁하던 지적 토론의 중심지였다.
오늘날의 소셜미디어도 때때로 그런 공간처럼 느껴진다. 단 1분 사이에 전 세계 뉴스, AI 이미지, 고양이 영상, 뉴에이지 영성, 로봇 신앙, 생산성 전문가의 조언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 모두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온라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혼란을 가르고 평안과 새로운 소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사명은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온라인 공간에서 사용하시고, 어떤 사람은 이웃과 친구를 직접 만나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신다. 때로는 두 방식이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와 부르심을 주셔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 ‘좋은 소식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새로운 시각
필자는 여러 번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했고,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 보았다. 심지어 소셜미디어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불안과 우울, 상실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항상 온라인 상태로 살아야 하는 삶의 피로함을 보면서 “왜 내가 이런 어두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판매하는 삶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필자의 마음을 바꾸셨다. 로마서 12장 15절 말씀처럼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마음을 배우게 하셨다. 그리고 필자가 어둠을 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빛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신 분이다. 그분은 우리의 팔로워 수나 참여율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우리가 휴대폰을 사용할 때도, 그것을 내려놓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불완전한 삶을 살아갈 때에도 온전히 사랑하신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소셜미디어 자체는 본질적으로 선도 악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놀라운 방식으로 사용하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도구일 뿐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앱을 삭제했다가 다시 설치하는 일을 반복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께 질문해 보라: “하나님, 저는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 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민감하게 살펴보라.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책임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국 문제는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다. 소셜미디어에 완전히 몰입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아날로그 삶을 시도하다 다시 휴대폰을 잡았다고 스스로를 실망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한다. 실패할 때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기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2026년이 아날로그 삶으로 돌아가는 해가 될지 여부를 고민할 때, 무엇보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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