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무어
마크 무어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무어의 기고글인 ‘자주 틀리는 것이 오히려 축복인 이유’(Being wrong often is a blessing. Here's why)를 최근 게재했다.

마크 무어는 저자이자 2012년부터 애리조나 피오리아에 있는 크라이스트처치 오브 더 밸리(CCV)의 교육 목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대부분의 사람들은 틀리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는 그것을 실패, 당혹감, 약함과 연결한다. 그러나 성경은 ‘틀림’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다룬다. 패배의 표시가 아니라, 지혜의 출발점으로 본다.

잠언은 이렇게 말한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가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 12:15). 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지가 아니라 오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 그것을 인정할 만큼 겸손한 사람이다.

회개란 바로 그것이다. 부끄러움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다. 잘못된 길로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도 돌이킬 수 있는 용기다.

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까?

오늘날 문화는 확신과 자기 확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잘못을 고백하는 일은 매우 불편하다. 소셜미디어는 겸손한 학습자보다 자신감 넘치는 단언자를 보상한다. 우리는 빗나간 것을 알면서도 후퇴하기보다는 더 강하게 밀어붙이려 한다.

그러나 교정을 거부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살릴 지혜와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셈이다. 솔로몬은 말한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 12:1). 강한 표현이지만 꼭 필요한 말이다. 교정은 아프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가시는 가장 큰 도구 중 하나다.

영적 삶에서 겸손은 선택이 아니다. 진리는 공동체, 권면, 성경, 기도, 그리고 때로는 책망을 통해 발견되도록 하나님이 설계하셨다. 그래서 복음의 중심에는 자기 방어가 아니라 회개가 있다.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하신 첫 말씀도 “더 강하게 믿어라”가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였다. 회개는 틀렸다는 형벌이 아니라, 다시 바른 길로 초대받는 선물이다.

교정 속에 숨겨진 축복

우리가 잘못을 인정할 때, 거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하나님께서 그 겸손한 자리에서 은혜로 우리를 만나 주신다.

다윗 왕이 죄로 인해 나단에게 책망을 받았을 때, 그는 선지자를 침묵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라고 고백했다. 그 고백은 고통스러웠지만 회복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

다윗의 위대함은 그가 결코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되돌아올 줄 알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진실한 고백은 믿음의 행위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하기보다 변화시키기를 원하신다는 믿음이다. 우리가 교정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 자존심보다 하나님의 진리가 더 안전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복음은 가장 밝게 빛난다.

회개를 ‘선물’로 보는 법

회개는 자기혐오가 아니다.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회개는 신뢰의 행위이다. 하나님의 자비가 실제이며 충분하다는 신뢰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이니라”(롬 2:4) 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교정은 우리를 굴욕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회개는 일종의 ‘하나님이 주시는 U턴’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방식이다: “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올바른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성경의 가장 거룩한 인물들조차 잘못된 길로 간 적이 있다.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했고, 모세는 분노했다. 요나는 정반대로 도망쳤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서 회개는 다시 목적의 길을 열었다. 틀리는 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종종 다음 장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가르침을 받는 마음’이라는 영적 훈련

지혜 안에서 자라기 원한다면, 배우는 마음을 연습하라. 교정을 받을 때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잠언은 말한다.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잠 9:8). 정말 문화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겸손히 교정을 받을 때 사랑이 오히려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크게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은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열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이미 도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듣고, 배우고, 조정한다.

배우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속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관점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혜는 방어심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된다.

회개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회개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회개가 종종 공동체적이었다. 도시, 나라, 가족 전체가 함께 회개했다. 신앙이 공동체적인 이유는 죄도 공동체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고립시키는 교만은 함께 치유되는 것을 방해한다.

초대교회가 성장하던 때, 고백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의 리듬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죄를 고백”(약 5:16)했는데, 서로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완벽한 척하는 것을 멈추고 회개를 실천하기 시작한다면, 교회는 훨씬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부끄럼 없이 ‘틀림’을 받아들이는 법

방어하기 전에 멈춰라: 교정을 받을 때 본능은 설명하려는 것이다. 대신 들어라. “하나님이 여기서 무엇을 가르치려 하시는가?”라고 물어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교정은 사랑에서 나온다. 당신을 망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다.

은혜가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게 하라: 틀림은 실패가 아니라 형성이다. 잘못을 인정할 때마다 은혜가 일할 공간이 생긴다.

공동체 안에 머물라: 성장은 함께할 때 일어난다. 친구, 멘토, 성경이 당신을 다듬게 하라. 혼자 가는 영성은 자기기만으로 이어진다.

겸손의 자유

겸손의 역설은 그것이 우리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한다. 항상 옳아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가볍고 자유롭고 기쁨이 넘친다.

겸손은 자기 의심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뿌리내린 자기 인식이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얼마나 옳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틀릴 자유는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머물게 한다. 실수를 인정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다. 회개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 자비를 발견한다.

그것이 참된 지혜이다.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를 때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

마지막 생각

세상은 ‘옳음’을 보상한다. 그러나 하늘은 ‘겸손’을 기뻐한다. 성경, 성령,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를 통해 교정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은혜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 중 하나인 틀릴 수 있는 선물에 참여하게 된다.

틀린다고 해서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런 마음에 참된 지혜를 맡기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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