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31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연민, 하나님의 플레로마에의 참여’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최 교수는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장이었던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종교를 도덕성이나 윤리성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강했다”며 “기독교 초기에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로마인은 봉사나 구제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봉사나 구제는 신을 섬기는 일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했다.
이어 “당시 로마인은 종교와 윤리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기며 신을 섬겼다. 인간이 신의 심기를 건드릴 때는 신에게 무관심하거나 의례 기준을 어겼을 때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초기 기독교는 도덕성과 사회적 윤리 강령을 종교와 결부시켰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분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행의 대상은 단지 믿는 가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었다”고 했다.
또한 “이는 기독교의 세계화에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며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영적이고 종교적인 실천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일상의 삶, 즉 인류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은 오이코스, 즉 집과 공동체에 대한 그레코-로만적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며 “당시 그레코-로만 사회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심했다. 로마 사회에서 오이코스의 주인은 가부장, 가장, 가산 전체의 소유자만이 가능했다. 집안의 식구인 노예, 여성, 어린이와 임차인, 일꾼, 상공업의 조수들은 모두가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부자유한 것으로 정의되었다. 재산의 유무에 따라 인간의 위계질서와 인권의 가치가 결정되는 사회였다. 그레코-로만식 오이코스의 위계질서는 바로 그 정의 자체 속에 지배와 종속을 수반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운동 또는 선교는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 장소로서 사람들의 삶 자체에 초점을 두고 오이코스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다”며 “특히 예수님이 세 집단, 즉 궁핍한 빈자들, 병자들과 장애인들, 세리와 죄인과 창녀들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더불어 “그리스도교 운동은 지배적인 종교적·사회적 에토스 안으로 침투하여 인간의 평등성을 위한 새로운 집을 창조했다”며 “기독교는 하나님의 인자함과 선함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재산의 유무와 관계없이 예수님의 제자와 가족으로 함께 모이며, 새로운 집안을 형성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깊은 차원에서 교회가 영적으로 깊이가 있지만 도덕적으로 빈곤하다는 표현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그러한 표현은 영성과 도덕성 간의 치명적인 분리의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라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비례관계이기 때문에 영성과 도덕성의 분리는 양쪽 모두에게 위험하고 자기 파괴적이다. 이러한 분리는 복음을 빈약하게 만들고, 복음이 지닌 보편적 경험의 기초를 축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하나님도 우리 없이는 우리 삶 가운데서 일하지 않으신다고 한 고백은 우리에게 깊은 의미를 준다”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우리의 행동과 실천을 강화하는 것이지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정직하고 책임을 지려는 노력에 힘을 부어 줌으로써 우리 안에 존엄성과 성실성을 심어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한 연민을 경험할 때 고통 받는 이웃을 향한 연민은 강화된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 복음은 영적 차원뿐 아니라 윤리적 또는 도덕적 차원을 포함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회적이고 참여적이므로 비사회적 또는 비윤리적 신앙과 신학은 바른 것이 아니”라며 “비사회적 복음은 있을 수 없다. 복음에 충실한 개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윤리적 의무로써 하나님 나라의 정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의 질서를 위한 것”이라며 “따라서 교회의 사회적 관심, 특히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은 기독교 신앙과 실천의 부산물이 아니라 필수 요소이다. 그러므로 교회나 그리스도인이 시대를 초월하고 하나님과 영혼만을 말하며, 사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복음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독교가 시대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의 문제는 중요하다”며 “세상을 등지고, 이별하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자 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은 깊은 차원에서 세상의 자기 파괴를 이미 용납한 것이며 그 불충분함으로 인해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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