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국내에서 처음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북한 내 구금시설에서 북한 당국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검찰과 법원에 구한 건데 북한의 반인권 범죄 책임을 규명하는 첫 판례가 나오게 될지 주목된다.
북한 당국을 상대로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민사소장을,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에 형사고소장을 각각 제출한 곳은 ‘NKDB인권침해지원센터’라는 곳이다. 북한 인권침해 피해 구제와 권리 회복을 위해 활동해온 공익변호사 전문가 그룹이 북한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최민경 씨의 법적 대리인으로 소송에 뛰어든 거다.
소송 당사자인 최민경 대표는 1997년 첫 탈북 후 중국에서 체류 중 2008년 강제 북송됐다. 이후 함경북도 온성군 보위부, 함경북도 도 집결소,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구역 보안서 등 북한 각 구금시설에서 약 5개월간 구금 상태로 비인간적인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최 씨는 자신이 중국에서 강제 북송 당한 후 △구금시설 입소 과정에서의 성적 가혹행위 △주먹과 발로 얼굴·하체를 폭행당하는 등 심각한 물리적 폭력 △하루 15시간 이상 ‘올방좌’ 및 ‘비둘기’ 자세 강요 등 비인도적 고문 △기초적 치료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노역과 영양실조 등의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자신이 “대한민국에 정착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약물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김정은과 그 수하가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의 책임을 반드시 묻고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북한 김정은 집단이 강제 북송된 탈북 주민에게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 온건 국내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 내 구금 시설에서 최 대표와 같은 고문과 성적 착취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UN 등에서 증언한 탈북민이 여럿 나왔다.
지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탈북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 인권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한 바 있다. 보고서는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반인도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며 “지금도 이러한 실상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자유와 인권을 유린당하며 북한 당국의 반인도 범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고 기록했다.
소송의 법적 대리인인 NKDB 측은 북한 당국의 인권 침해 사건 관련 소송을 대한민국 법원 및 검찰에 제기하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북한 당국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국내 사법기관을 통해 최초로 규명하고자 함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의 탈북민 보호 의무를 환기시키기 위함이란 거다.
북한 당국은 북한을 탈출하려다 강제 북송된 주민들을 북한 내 각종 구금 시설에 가두고 온갖 구금, 폭행, 고문·성폭력 등 반인도적 인권침해 범죄를 저질러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소송의 법적 책임 주체가 북한 당국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탈북민을 난민이 아닌 불법 이주민으로 간주해 강제송환을 단행한 중국 정부와 헌법 상 국민이 강제 송환을 당하는 현실에서 실질적인 보호조치를 하지 못한 우리 정부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NKDB가 국내 검찰과 법원에 이 문제를 정식 제기하게 된 것도 이런 현실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당장은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권리회복을 구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지만, 향후 유엔 인권기구 및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등을 통해 반인권 범죄에 대한 인식을 국제적으로 환기시키려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다.
이들이 소송 송달지를 미국 뉴욕 북한 유엔대표부로 지정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려는 것도 국제적 외교 채널을 통해 송달 효력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현실적으로 직접 송달이 불가능한 북한 평양이 아닌 뉴욕의 북한 유엔대표부로 바꿈으로써 향후 북한을 상대로 한 국제적 법적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소송은 북한 태생의 탈북자가 북한 정권을 상대로 법적 조치에 나선 첫 번째 사례라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포로로 끌려가 착취당한 남성 3명에게 지난 2023년 법원이 북한 당국에 각각 5,000만원을 지불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지난 2024년엔 재일조선인 탈북자 5명에게 북한 당국이 각각 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 법원이 어떤 판결을 해도 북한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북한에 소송 서류를 송달하는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우리 법원의 재판 결과가 북한에게까지 법적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적인 장벽이 있다.
그렇지만 이번 소송은 판결의 실질적인 효력과 상관없이 판결 자체만으로 주는 의미가 크다. 북한 주민이 북한 당국에 당한 인권 침해 행위를 대한민국 사법부가 인정한 만큼 그 사실이 역사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북한에서 태어나 성장한 우리 국민이 탈북해 법원과 검찰에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첫 사례라는 데 있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지닌 소송을 계기로 유엔 국제형사재판소 법에 규정된 반 인도범죄 피해자에 대한 국내 권리 회복과 국제 책임 규명을 위한 판례가 마련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탈북민 최민경 씨는 “이번 소송을 계기로 더 이상 무고한 북한 주민이 잔혹한 북한 체제 하에서 고통받지 않는, 이 작은 시작이 자유와 인권 회복의 초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의 말대로 이번 소송이 북한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정의가 실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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